주님 수난 성지 주일(복음: 마태 26,14-2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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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3-23 10:32 조회10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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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자 온 시민이 들떠서 ‘이분이 누구시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이분은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오신 예언자 예수요’ 하고
대답하였다”(마태 21,10-11).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다.
교회는 오늘부터 부활 주일까지 한 주간 동안 ‘성주간’을 지낸다. 성주간은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입성을 시작으로 하여 성토요일까지 이룩하신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고 경축하는 시기이다.
성주간 동안 읽혀지는 복음을 보면 이렇다. 월요일에는 예수님의 죽음, 즉 장례를 예고하신 말씀을 묵상하고, 화요일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읽는다. 수요일에는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장면과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나누시는 모습이다. 그리고 성목요일, 성금요일, 성토요일로 이어진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신비를 완성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주일이다. 예루살렘 입성은 곧 당신의 수난을 선포하시는 사건이기도 하다. 교회는 오늘 성지 축복과 성지 행렬의 전례를 기념하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려 나무와 올리브 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환영한 데서 비롯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유다인들의 과월절 분위기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과월절에 맞추어 성대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기 때문이다.
과월절은 이스라엘인들의 최고 명절이었다. 옛날 유다인 조상들이 하느님의 인도로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날이었다. 따라서 과월절은 유다인들이 하느님께서 특별히 자기 민족을 사랑하시고 선택하셨다는 최고의 자부심을 갖는 날이기도 하였다. 이날 유다인들은 이집트에서 해방되어 나오는 날 밤에 먹었던 하느님께서 주신 누룩 없는 빵을 먹는 관습이 있었다. 즉, 과월절 음식이었다. 그리고 유다인들은 이 거룩한 날을 지내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씻는 정결을 지켰는데 바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정결례였다. 모든 유다인들은 과월절을 앞두고 정결례를 지키기 위하여 미리 시골 각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몸을 씻고 속죄하였다. 그리고 과월절에는 유다인들이 다 모이는 날이기 때문에 각종 중요한 행사가 열렸다. 그중에 하나가 죄인들에 대한 재판이었는데 일 년에 한 번, 이날 죄인들에 대한 재판을 하였다. 이 재판을 위해서 로마 총독은 북쪽 해안가에 있는 가이사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왔다. 로마 총독이 재판관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해 과월절이 돌아오자 백성의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 때를 맞추어 예수님을 재판에 넘겨 죽일 음모를 꾸몄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음모를 잘 알고 계셨다. 또한 많은 사람들도 그러한 음모의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요한복음사가는 당시에 사람들의 동정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유다인들의 과월절이 다가 오자 많은 사람들이 명절 전에 몸을 정결하게 하려고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예수를 찾아다니다가 성전 뜰 안에 모여서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그가 명절에 참례할 것 같지는 않지요’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요한 11,55-56).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이러한 위험한 분위기에 과연 예루살렘에 오실지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그들의 음모를 알고 있으면서 예수님께 큰 기대를 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예언자나 혹은 메시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보고 싶어 했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 행하셨던 말씀과 행적은 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예언자로, 또는 메시아로 믿게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정치적인 억압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위선적인 폭정, 또한 종교적인 부패 속에서 예수님께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희망과 기대가 큰 만큼 예수님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불편한 표적이 되셨다.
예수님께서는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음모를 피하지 않으셨다. 성대한 예루살렘 입성을 통하여 당신의 모습을 그들에게 드러내시기로 결심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성대한 예루살렘 입성이 이루어졌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 가까이 오셔서 올리브 산 근처 벳파게에 이르렀을 때에 두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맞은편 마을로 가 보아라. 그러면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터인데 그 새끼도 곁에 있을 것이다. 그 나귀를 풀어 나에게로 끌고 오너라. 혹시 누가 무어라고 하거든 ‘주께서 쓰시겠답니다’ 하고 말하여라. 그러면 곧 내어줄 것이다”(마태 21,2-3).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일러주신 대로 가서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그 위에 겉옷을 얹어 놓았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올라 앉으시자 많은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펴 놓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아놓기도 하였다. 그리고 앞뒤에 따르는 사람들이 모두 환성을 올렸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지극히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마태 21,9)
사람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대단히 환호하였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실지, 안 오실지 반신반의하던 차에 예수님께서 결행하신 예루살렘 입성은 군중들을 열광케 하였다. 그러나 군중들의 이 환호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음모를 더욱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이렇게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예언자 이사야의 예언대로 이루어졌다.
“시온의 딸에게 알려라. 네 임금이 너에게 오신다. 그는 겸손하시어 암나귀를 타시고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마태 21,5).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예루살렘 입성으로 이렇게 시작되었다.
성주간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수난을 사실 그대로 전하면서 묵상하게 한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인 오늘, 교회는 주님 수난의 사건을 묵상하면서 복음으로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는 수난사를 성대하게 읽는다. 주님의 수난사는 예루살렘 입성으로 시작되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수난 사화를 있는 그대로 전하여 기억하게 한다. 따라서 복음사가들에게 있어서 복음의 핵심은 바로 이 ‘주님의 수난 사화’이다. ‘가해’인 오늘 읽고 있는 마태오 복음사가의 수난사 절정은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백부장의 말이다. 백부장은 자기 혼자 이렇게 독백처럼 중얼거린다.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마태 27,54).
이는 백부장의 신앙 고백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고백이기도 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수난사를 통하여 참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해야 한다. 그리고 백부장의 신앙 고백처럼 우리의 신앙을 고백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