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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일(복음: 요한 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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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4-20 08:57 조회55회 댓글0건

본문

 

목자와 양


“목자는 자기 양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양 떼를 불러낸 다음에 목자는 앞장서 간다. 양 떼는 그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뒤따라간다. 양들은 낯선 사람을 결코 따라가지 않는다”

(요한 10,3-5).

 

오늘은 부활 제4주일이며, ‘성소 주일’이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해 묵상하면서 특별히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힘이 되어주는 날이다. 사실 성직자나 수도자뿐만 아니라 평신도 모두는 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 각자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맡겨진 일과 사명을 성실하게 다해야 할 것을 다짐해야 한다. 오늘 복음은 ‘목자와 양 그리고 착한 목자’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딴 데로 넘어 들어가는 사람은 도둑이며 강도이다. 양치는 목자는 문으로 버젓이 들어간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주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 목자는 자기 양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양 떼는 그의 음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를 뒤따라간다. 양들은 낯선 사람을 결코 따라가지 않는다. 그 사람의 음성이 귀에 익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피하여 달아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해주셨지만 그들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0,1-6).

목자와 양 떼의 관계는 이스라엘 조상 대대로 목축 생활을 해왔던 그들 마음속에 잘 알려진 개념이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양 떼를 몰고 다니는 목자를 인간 사회에서 권위를 상징하는 비유로 표현하였다. 목자는 양 떼의 주인이며 동시에 동반자였다. 목자는 야수로부터 양 떼를 지키는 힘을 가진 강한 사람인가 하면, 양들에게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 그들의 사정을 숙지하고 온갖 조치를 다하여 약한 양들을 안아주고, 모든 양들을 자기 딸처럼 사랑하는 자였다. 따라서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같은 고대 근동 제국의 왕들은 신으로부터 양 떼를 모으고 돌보는 일을 위탁받은 목자로 자처하였다.

성서에서도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리자가 보여주는 목자상을 예시하면서 하느님과 당신 백성과의 관계를 설명하였다. 구약에 있어서 하느님 야훼께서는 양들의 인도자요, 보호자이셨다. 따라서 야훼 하느님과 당신의 백성과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비유로 설명하였다. 시편에 이집트 탈출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당신 백성을 양 떼처럼 이끌어내시어 가축 떼처럼 사막에서 인도하셨다”(시편 78,52).

시편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신 하느님 야훼를 목자로 그리고 그분의 백성들을 양 떼로 비유하였다. 

그리고 이사야 예언자는 야훼 하느님을 “목자처럼 당신의 양 떼에게 풀을 뜯기시며, 새끼 양들을 두 팔로 안아 가슴에 품으시고 젖먹이 딸린 어미 양을 곱게 몰고 오신다”(이사 40,11)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야훼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몸소 치시는 양들을 당신의 종들에게 맡기셨다. 시편은 야훼께서 ‘모세와 아론의 힘’을 빌어 당신 백성을 인도하셨음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양 떼처럼 당신 백성을 모세와 아론의 손을 빌어 인도하셨습니다”(시편 77,20).

또한 야훼께서는 모세 이후 이스라엘을 목자 없는 양 떼처럼 버려두지 않으시려고 여호수아를 뽑아 그의 후계자로 삼으셨고, 훗날에는 양 무리에서 다윗을 뽑아내어 당신 백성의 목자로 만드셨다. 이를 시편은 이렇게 말한다.

“양 우리에서 일하던 다윗을 뽑으시어 당신의 종으로 삼으셨으니 어미 양을 보살피던 그를 데려다가 당신의 백성, 야곱과 당신 소유인 이스라엘의 목자로 삼으셨다. 다윗은 이 백성을 한 마음으로 보살피며 슬기로운 손으로 인도하였다”(시편 78,70-72).

다윗은 하느님 야훼의 뜻에 따라 백성을 한 마음으로 보살피는 충실한 목자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다. 이후에 목자라는 칭호는 이스라엘의 판관들이나 백성의 지도자들, 왕들에게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 이스라엘 목자들은 자기들의 사명에 충실하지 않았다. 그들은 야훼 하느님을 찾기는커녕 오히려 그분께 반항하며 양들을 돌볼 생각은 않고 제 살찔 궁리만 하여 양 떼가 흩어져 헤매도 그것을 방치하였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양 떼들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민족들에게 침략당하여 멸망하였고 그들에게 끌려가 혹독한 유배 생활까지 하였다. 그들은 유배 이후에도 야훼 하느님의 기대에 어긋나는 짓을 많이 하였다.

야훼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은 참으로 백성을 위한 목자가 필요했다. 이에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버려두지 않으실 것임을 끊임없이 말하였다. 야훼께서는 예언자의 소원대로 양의 무리를 보살피시어 흩어진 백성들을 한데 모으시고, 돌아오게 하시고, 이를 지키실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참 목자를 보내주실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참 목자인 메시아에 대한 야훼의 말씀을 이렇게 전하였다.

“그들을 위하여 참 목자들을 세워주리라. 그러면 내 양 떼는 겁이 나서 무서워 떠는 일 없이 살 것이며,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리라”(예레 23,4).

이제 착한 목자에 대한 기다림과 희망은 예수님 안에서 완성되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강도와 도둑’을 구분하신다.

도둑과 강도는 양 우리에 들어갈 때에 무엇인가 다르다. 그들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딴 데로 넘어 들어간다. 그러나 착한 목자는 하느님의 양 떼를 위해서 문으로 버젓이 들어간다. 그리고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주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고 하신다. 당신과 당신 양 떼들과의 깊은 관계를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양 떼들을 위해서 떳떳하게 들어서시는 당당함을 말씀하신다. 참목자는 자기 양들을 위해 문으로 버젓이 들어간다는 말씀이시다. 이는 양 떼를 위한 희생과 고난의 문이며, 훗날 있을 그리스도의 고난과 수난을 암시하신 것이다. 그리고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는다고 말씀하신다.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양들의 모습! 이는 목자의 음성만을 알아듣고 따라가는 ‘새로운 공동체’, 즉 ‘교회’를 암시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착한 목자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백성을 양 떼로 비유하시면서 백성을 훔치고 죽이러왔던 사람들과 백성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착한 목자를 대조적으로 묘사하신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나는 양이 드나드는 문이다.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은 모두 다 도둑이며 강도이다. 그래서 양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안전할 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좋은 풀을 먹을 수 있다. 도둑은 다만 양을 훔쳐다가 죽여서 없애려고 오지만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 왔다”(요한 10,7-10).

예수님께서는 눈이 멀어 메시아의 징표를 보지 못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목자로 자처하는 그들을 모두 다 도둑이며 강도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 자리에서 하느님의 양들을 의식과 율법과 수많은 법령 안에 가두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목자라는 말을 들으면서 하느님께 반항하며 양 떼를 돌보지 않고 제 살찔 궁리만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나는 문이다” 하고 말씀하신다. 당신께서 하느님의 양들이 하느님께 갈 수 있는 진정한 문이심을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양들이 하느님께 갈 수 있도록 고통스러운 수난의 길을 택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거쳐서 들어오면 안전할 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풀을 먹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신다.

착한 목자는 자신의 희생과 죽음을 통하여 양들에게 생명을 얻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착한 목자’이시다. 착한 목자이신 그분은 하느님의 백성인 양 떼를 생명의 길로 이끄시고 상처 입은 양들을 지극히 보살피신다. 그리고 목자의 음성을 듣고 모여든 우리는 그분의 인도와 보살핌으로 생명을 얻고 또 얻게 될 것이다. 오늘 제2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러분이 전에는 길 잃은 양처럼 헤매었지만 

이제는 여러분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에게로 돌아왔습니다”(1베드 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