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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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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5주일(복음: 마태 1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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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7-06 08:47 조회18회 댓글0건

본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맺은 열매가 백 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삼십 배가 된 것도 있었다”(마태 13,8).

 

오늘은 연중 제15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한 말씀이다. 비유는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 랍비들이 보통 사용했던 방식이었다. 특히 동양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런 경향은 현자들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나타난다. 비유는 후대에 와서 유다교에서 랍비들이 교육학으로 택할 만큼 발전되었다.

구약성서에도 비유에 대한 많은 예를 보이고 있다. 예언자들은 윤리와 종교적 영역에서 위협할 때나 하느님의 약속을 표현할 때 비유들을 많이 사용하였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를 가르치면서 일상생활의 구체적인 사실들을 비유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신약에 와서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가르침을 더욱 분명하게 밝히시기 위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끌어들이셨는데 이를 예수님께서 쓰시던 비유들이라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좋아하셨다. 왜냐하면 비유는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의 윤곽을 쉽게 제시해주고, 또한 그 의미를 완전히 알아듣게 하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 쓰시던 비유는 주로 ‘하늘나라의 신비’였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 안에 최종적으로 완성되는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면 오늘 복음인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살펴보자. 복음은 크게 셋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먼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다음은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 그리고 비유의 설명이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해서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그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더니 사람들이 또 많이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군중은 그대로 모두 호숫가에 서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를 비유로 말씀해주셨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 먹었다.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싹은 곧 나왔지만 흙이 깊지 않아서 해가 뜨자 타버려 뿌리도 붙이지 못한 채 말랐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 가시나무들이 자라자 숨이 막혔다.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맺은 열매가 백 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삼십 배가 된 것도 있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마태 13,1-9).

이 비유에서 씨는 하느님의 말씀을 의미하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땅에 씨를 뿌리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하여 씨 뿌리기와 관련 지으시면서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 백성 사이에 이루어지는 종말론적인 만남을 말씀하고 계신다. 하느님의 말씀인 씨앗이 좋은 땅에 떨어져서 그 열매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가 된다는 것은 종말에 있어서 하느님과의 만남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씨가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좋은 땅에 떨어져야 한다. 이는 말씀을 알아듣고 깨닫고자 하는 좋은 심성 안에 떨어져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하느님의 말씀이 씨앗처럼 많은 열매를 맺는 효력 있는 작용에 대해서는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것처럼 이사야 예언자에 의해서 이미 예고되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내리는 눈이, 하늘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흠뻑 적시어, 싹이 돋아 자라게 하며, 씨 뿌린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내주듯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그 받은 사명을 이루어 나의 뜻을 성취하지 아니하고는 그냥 나에게 돌아오지는 않는다”(이사 55,10-11).

야훼 하느님의 뜻이 꼭 성취되리라는 예언이다. 여기에서 야훼의 뜻이 성취된다는 말은 메시아 시대에 이룰 하늘나라의 완성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통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계신다.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와서 “저 사람들에게는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이를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제자들이 예수께 가까이 와서 ‘저 사람들에게는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알 수 있는 특권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받지 못하였다. 가진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하게 되겠지만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사야가 일찌기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이 백성이 마음의 문을 닫고 귀를 막고 눈을 감은 탓이니, 그렇지만 않다면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서서 마침내 나한테 온전하게 고침을 받으리라’고 말하지 않았더냐?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많은 예언자들과 의인들이 너희가 지금 보는 것을 보려고 했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는 것을 들으려고 했으나 듣지 못하였다”(마태 13,10-17).

예수님께서는 왜 군중들에게만 비유로 말씀하셨을까?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에 대한 비유이다. 따라서 비유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는 비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늘나라의 주인이신 분과 함께 살고 있으니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제자들은 하늘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인용하셨다. 이는 당시에 마음의 문을 닫고, 귀를 막고, 눈을 감아 메시아이신 분을 알아보지 못하고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셨다. 만일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메시아이신 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볼 수만 있었다면 그들은 고침을 받아 하늘나라의 신비를 깨닫고 많은 열매를 맺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을 직접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제자들의 행복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사실 과거에 많은 예언자들과 의인들은 메시아이신 분을 보려 했으나 보지 못하였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 했으나 듣지 못하였다. 그러한 사실들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상기시켜주셨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곧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이심을 분명하게 하신 것이다.

복음은 마지막으로 비유의 설명에 대해서 이렇게 전한다.

“이제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내포한 뜻을 들어보아라. 누구든지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간다.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곧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마음속에 뿌리가 내리지 않아 오래가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사람은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닥쳐 오면 곧 넘어지고 만다. 또 가시덤불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억눌러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잘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사람은 백 배 혹은 육십 배 혹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마태 13,18-23).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해주신다. 하느님의 말씀이 세상에 뿌려져 열매를 맺는 모습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신다. 이는 하늘나라가 종말 때까지 세상에서 완성되어가는 모습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 결실이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에서 교회의 역사를 인식하게 된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곧 교회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이신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세상에 나아가 씨를 뿌려야 한다.

교회가 뿌린 씨가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는 역시 좋은 땅에 떨어져야 한다. 뿌려진 씨가 길바닥에 떨어진다든지, 가시덤불에 떨어진다든지, 흙이 깊지 않은 곳에 떨어진다든지 하면 그 씨앗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뿌려진 씨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종말에 가서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말씀하시는 비유의 진정한 뜻이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형제 여러분,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추어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