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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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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일(복음: 마태 13,2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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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7-13 08:50 조회15회 댓글0건

본문

 

가라지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


“그리하여 예언자를 시켜, ‘내가 말할 때에는 비유로 말하겠고 천지창조

때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마태 13,35).

 

오늘은 연중 제16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가라지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에 대한 말씀이다. 이 말씀 역시 하늘나라의 신비에 대한 비유이다. 하늘나라는 하느님께서 계시는 천상의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하느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하늘나라는 이 세상에 왔다. 그 나라는 주님과 함께 하느님의 자녀들이 살고 있는 교회 공동체이다. 따라서 오늘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살고 있는 지상의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이다. 먼저 가라지의 비유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어떤 사람이 밭에 좋은 씨를 뿌린 것에 비길 수 있다. 사람들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밀밭에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밀이 자라서 이삭이 팼을 때 가라지도 드러났다. 종들이 주인에게 와서 ‘주인님, 밭에 뿌리신 것은 좋은 씨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주인의 대답이 ‘원수가 그랬구나!’ 하였다.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을 뽑아 버릴까요?’ 하고 종들이 다시 묻자 주인은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으면 어떻게 하겠느냐?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일러서 가라지를 먼저 뽑아서 단으로 묶어 불에 태워버리게 하고 밀은 내 곳간에 거두어들이게 하겠다’고 대답하였다”(마태 13,24-30).

하늘나라는 좋은 씨를 뿌린 밀밭과 같은 나라이다. 그런데 그 밀밭에 악마가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고 말씀하신다. 따라서 하늘나라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면 밀밭에 뿌려진 가라지는 어떤 풀인가? 가라지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자. 가라지는 여러 가지 살갈퀴에 속한 풀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이다. 그러나 복음서에 나오는 가라지는 꺼끄러기가 있는 독보리를 가리킨다. 가라지는 이삭이 나오지 않았을 때는 모양이 밀과 비슷하나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도록 둔다면 모양이 분명히 구별되는 풀이다. 당시에 이 잡초를 골라내는 일은 여자들과 아이들이 맡아서 하였는데 뽑아낸 가라지는 태우거나 닭 모이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대에 보복하기 위해 밭에 가라지를 뿌리는 것을 로마법에 의해 범죄로 간주한 것을 보면 복수를 위해서 일반적으로 가라지를 뿌리는 일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지상의 하늘나라에 대해서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일상적인 가라지에 대한 비유로 말씀하셨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종과의 대화를 통하여 가라지가 드러났는데도 추수할 때까지 그냥 두라고 한다. 주인은 가라지를 뽑다가 혹시라도 밀이 뽑힐까 염려스러워하고 있다. 밀에 대한 주인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주인은 추수 때가 되면 밀과 가라지를 분명하게 가려내어 가라지는 먼저 뽑아 단으로 묶어 불에 태우고 밀은 곳간에 들이겠다고 하신다. 추수 때가 되면 밀과 가라지를 가려내겠다는 주인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 비유에서 물론 밀은 하늘나라의 자녀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자녀들이다. 따라서 이 세상의 하늘나라는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는 밭처럼 하늘나라의 자녀들과 악한 자의 자녀들이 함께 사는 나라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그들을 종말 때까지 공존시키는 깊은 뜻은 어디에 있을까? 예수님은 하늘나라의 자녀들이 뽑힐까 봐서 그러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에는 또다른 의미가 담겨 있다. 물론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 사람이라도 소중하게 아끼신다는 뜻이지만, 우리가 우리 형제들을 악한 자의 자녀들이라고 판단하고 뽑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늘나라의 자녀들과 악한 자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하느님만이 가리실 수 있다. 우리는 누가 하늘나라의 자녀인지 누가 악한 자의 자녀인지 판단할 수도 없으며, 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가라지를 뽑을 경우 “밀까지 뽑히면 어떻게 하겠느냐?” 하고 염려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또한 ‘겨자씨의 비유’로도 말씀하신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에 비길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겨자씨를 뿌렸다. 겨자씨는 모든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지만 싹이 트고 자라나면 어느 푸성귀보다도 커져서 공중의 새들이 날아와 그 가지에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마태 13,31-32).

겨자가 1년생 식물이면서도 나무로 표현할 정도로 크게 자라는 것을 보면 그 성장 속도가 얼마나 빠르고 왕성한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겨자씨에 비길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에 의해서 세워진 하늘나라가 지금은 비록 보잘것없는 작은 씨앗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큰 나라가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늘나라는 제자들의 복음 전파로 세상 곳곳에 전파되고 겨자씨처럼 빠르게 성장되어갈 것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누룩의 비유’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예수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여자가 누룩을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온통 부풀어올랐다. 하늘나라는 이런 누룩에 비길 수 있다’”(마태 13,33).

누룩은 무엇인가? 누룩은 가루 반죽이나 액체를 발효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물질로 특히 빵을 굽거나 술을 만드는 민족에게는 잘 알려진 물질이다. 비유적으로는 어떤 것을 부풀게 하거나, 변화시키거나, 부패시키거나, 또는 점진적인 내적 작용을 통해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히브리인들의 생활에서는 누룩이 빵을 만드는 데 쓰였을 뿐만 아니라 율법과 의식, 종교적인 교훈에서 비유로 가르치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누룩은 경우에 따라서 그 의미를 좋게도 사용하고 나쁘게도 사용한다. 성서에서는 누룩의 사용을 금하고 있다. 왜냐하면 변질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근거는 누룩의 발효가 부패의 과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누룩이 반죽 덩어리를 발효시켜 썩게 하기 때문이다. 구약성서에는 하느님께 드리는 희생 제물에 누룩이 관련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금지하였다. 단순한 제물에도 누룩을 넣는 것을 금지하였다. 신약성서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위선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시고 누룩에 대한 말씀으로 책망하셨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누룩은 좋은 의미를 지니면서 하늘나라의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하늘나라가 세상에 스며들어 고요하고 꾸준히 변화해나가는 것으로 비유되고 있다. 하늘나라는 누룩이 전체를 변화시키듯이 세상 한가운데에서 세상을 점진적으로 변화시켜나갈 것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의 신비를 여러 가지 비유로 말씀해주시고 설명해주시는 것을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을 군중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예언자를 시켜 ‘내가 말할 때에는 비유로 말하겠고, 천지창조 때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마태 13,34-35).

시편 78장에 보면 ‘아삽의 시’에 이러한 예언이 나온다.

“내가 역사에서 교훈을 뽑아내어 그 숨은 뜻을 밝혀주리라. 선조들이 입으로 전해준 이야기, 우리 모두가 들어서 익히 아는 이야기, 야훼의 영예와 그 크신 능력, 그리고 위대한 일들을 우리는 다음 세대에 숨김없이 전하리라”(시편 78,2-4).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비유에 대해 강조하면서, 이는 천지창조 때부터 감추어진 하늘나라 신비가 다음 세대에 숨김없이 전해지리라는 예언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늘나라의 신비가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서 비로소 알아듣기 쉽게 우리 세대에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에서 제자들이 그 밀밭의 가라지 비유를 자세히 설명해달라고 예수님께 청한다.

“그뒤에 예수께서 군중을 떠나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와서 ‘그 밀밭의 가라지 비유를 자세히 설명해주십시오’ 하고 청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사람의 아들이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자녀를 말하는 것이다.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요 추수 때는 세상이 끝나는 날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다. 그러므로 추수 때에 가라지를 뽑아서 묶어 불에 태우듯이 세상 끝날에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남을 죄짓게 하는 자들과 악행을 일삼는 자들을 모조리 자기 나라에서 추려내어 불구덩이에 처넣을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서 그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그때에 의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마태 13,36-43).

제자들은 예수님의 비유에서 특히 가라지의 비유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진다. 아마도 하느님의 자녀들과 악한 자의 자녀들이 세상 종말까지 같이 살아야 한다는 데 의문을 가진 것 같다. 악한 자의 자녀들을 벌하시지 않으시고 왜 그들을 그냥 두어야 하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라지의 비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해주시면서 종말의 심판 날에는 엄격하게 가려질 것임을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하늘나라의 신비를 이처럼 비유를 통하여 설명해주신다는 것은 하늘나라의 주인이 아니시면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주인이신 메시아이시다.

끝으로 예수님께서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하시면서 끝을 맺으신다.

 

“그때에 의인들은 그들의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