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0주일(복음: 마태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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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8-10 09:19 조회33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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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여자의 믿음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마태 15,28).
오늘은 연중 제20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가나안 여자의 믿음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자의 믿음을 보시고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일은 유다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특히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분노를 일으키게 하는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구원이 유다인들의 전유물처럼 자기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이방인인 가나안 여자에게도 주어진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복음을 살펴보자.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띠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다. 이때 그 지방에 와 사는 가나안 여자 하나가 나서서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제 딸이 마귀가 들려 몹시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고 계속 간청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때에 제자들이 가까이 와서 ‘저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따라 오고있으니 돌려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마태 15,21-23).
오늘 일어난 일은 팔레스티나(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띠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을 때 일어난 일이다. 신약성서에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단 한 번 팔레스티나를 떠나신 적이 있으셨는데 그곳이 바로 띠로와 시돈 지방이었다. 예수님께서 왜 띠로와 시돈 지방을 가셨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성서에 별다른 설명이 없다. 다만 오늘 복음 전 이야기로 추측할 따름이다.
배경을 보면 이렇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연중 제18주일)과 물 위를 걸으신 기적(연중 제19주일)을 행하신 뒤에 갈릴래아 호수를 건너 겐네사렛 땅에 가셨다. 그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많은 병자들을 데리고 왔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도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고 예수님께서는 그때마다 병자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이를 보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어떻게 하면 트집을 잡아 곤경에 빠뜨릴까 하고 궁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 몇이 트집을 잡으려고 멀리 예루살렘에서 갈릴래아로 와 있었다. 그때 마침 제자들이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이 예수님께 이스라엘의 전통을 어겼다고 따졌다. 예수님께서는 심기가 매우 불편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전통과 관습을 앞세우며 그들의 잘못된 신앙을 정당화하려는 것을 보시고 대단히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위선자들이라고 하시면서 크게 책망하셨다. 그들은 대단히 화가 나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적개심을 피하여 제자들을 데리고 거기를 떠나셨는데 그곳이 바로 ‘띠로’와 ‘시돈’ 지방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가나안 여자를 만나셨던 것이다.
그러면 성서에 자주 나오고 있는 ‘띠로’와 ‘시돈’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자. 띠로와 시돈은 유다인의 지역이 아닌 이방인의 지역이다. 띠로와 시돈은 지금의 레바논 땅인데 과거에는 페니키아라고 불렀다. 따라서 띠로와 시돈은 팔레스티나(이스라엘)와 접경해 있는 페니키아에 있는 도시였다. 그 당시 페니키아에는 지중해 연안에 있는 오래되고 번창한 도시들이 있었는데 띠로와 시돈도 그 도시들 중의 하나였다.
그러면 시돈은 어떤 도시인가? 시돈은 구약성서 중 창세기에 나오는 매우 오래된 도시(창세 10,19)이다. 당시에 페니키아 사람들이 지배하던 가장 중요한 네 개 항구 중의 하나였다. 그리고 고대 역사에도 나타나듯이 시돈은 지중해 동부 연안을 항해하며 약탈을 자행했던 페니키아 사람들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예수님 시대에도 시돈은 매우 번창하고 잘 알려진 큰 항구 도시였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님께서 회개하지 않는 코라진과 베싸이다를 띠로와 시돈과 비교하시면서 띠로와 시돈이 더욱 빨리 회개했을 것이라고도 말씀하셨다(마태 11,21-22).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 로마로 항해하던 중 난파당했을 때 잠시 머물렀던 항구가 바로 시돈이었다.
그리고 시돈과 함께 언급되고 있는 ‘띠로’는 원래 작은 섬이었다. 바위가 많은 작은 섬으로 시돈에서 남쪽으로 40킬로미터 지점에 있으며 이스라엘의 아셀 지파 지역에 접하고 있었다. 띠로는 당시에 페니키아의 가장 남단에 있는 중요한 도시로 항해자들과 상인들에게 유명한 곳이었다. 띠로는 현재 본토와 연결되어 있는데 처음으로 연결된 것은 B.C. 333년 알렉산더가 800미터의 방축을 건설해서 그 도시를 포위했을 때라고 전해진다. 띠로 역시 오래된 도시로서 세워진 연대는 알려지지 않으나 대략 B.C. 2800년대에 세워졌을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두 도시를 제자들과 함께 방문하셨다.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셨을 때 가나안 여자를 만나셨다.
그러면 가나안 여자는 누구인가? 성서에는 가나안 사람들의 조상은 노아의 작은 아들 ‘함’이라고 나온다. 창세기를 보면 가나안의 조상인 ‘함’이 아버지인 노아로부터 저주를 받아 형제인 ‘셈’의 종이 된다고 나오는데 그래서인지 가나안족은 페니키아 쪽으로 나가서 살았다. 창세기를 보면 이렇게 나온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형제들에게 천대받는 종이 되어라”(창세 9,25).
따라서 ‘함’의 후손들인 가나안 족은 주로 페니키아 그리고 시리아 팔레스티나에 정착해 살았다. 가나안 족에 대해서 다시 이렇게 나온다.
“가나안에게서 태어난 첫 아들은 시돈이었다. 또 그에게서 헷족과 여부스족, 아모리족, 기르갓족, 히위족, 아르키족, 신족, 아르왓족, 스말족, 하맛족이 나왔다. 가나안족은 뒤에 사방으로 흩어져 나갔다. 가나안 지방의 경계선은 시돈에서 시작하여 그랄 쪽으로 내려가다가 가자에 이르고, 거기서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 쪽으로 라사에 이르렀다”(창세 10,18-19).
가나안 족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그 지역에서 이미 살고 있던 토착민들과 어울려 살았고, 오랜 세월 동안 그들과 동화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유다인들과는 거리가 먼 이방인의 신앙을 갖고 살았다. 가나안 족은 토착민들과 어울려 엘 신을 주신으로 하는 광범위한 범신론을 숭배했다. 종교 행위를 통해 주로 섬기는 신은 바알(주인), 폭풍의 신 하닷과 다곤 등이었는데 이 신들은 우가리트와 그 밖의 여러 곳에 신전을 가지고 있었다. B.C. 2000년대에 가나안 족의 종교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쳤던 관습은 아직까지 어떤 확실성을 가지고 입증된 것은 아니나 가나안 족의 종교가 인간의 본성을 지닌 수성과 관능에 호소하는 것이었음이 밝혀져 있다. 가나안 족은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퇴폐한, 조잡하고 불순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결코 독특한 사명을 지니고 하느님을 믿는 유다인들과는 공존할 수 없는 족속들이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 만나시는 가나안 여자는 페니키아 토착민이기보다는 노아의 아들 ‘함’의 후손인 가나안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그 여자는 조상들이 믿었던 하느님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또한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에서 나온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이 여자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부르고 있고, 메시아이신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간청하고 있다. 마귀 들린 자기 딸을 고쳐주시기를 간절히 청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의 청을 들으시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때 제자들이 “저 여자가 소리를 지르며 따라오고 있으니 돌려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자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자에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나는 길 잃은 양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찾아 돌보라고 해서 왔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께 다가와서 꿇어 엎드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며 거절하셨다. 그러자 그 여자는 ‘주님, 그렇긴 합니다마는 강아지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주워 먹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예수께서는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바로 그 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마태 15,24-28).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애원을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인 유다인들과 불순한 신앙을 가지고 살고 있는 이방인들과의 큰 차이를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거룩하신 하느님과 잡신들인 그들의 신과는 비교될 수 없음을 말씀하셨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강아지로 표현하신 것은 유다인들이 가나안족을 무시하면서 대하는 일반적인 생각을 표현하신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가지고 있는 오만한 배타주의와 같은 태도를 보이시면서 말씀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가나안 족의 그릇된 우상숭배와 퇴폐한 생활과 삶을 크게 책망하시는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자에게 의식적으로 유다인의 유일하신 하느님과 유다인들만의 구원을 강조하셨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 정작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께서 오셨는데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고 그들의 아집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배척하고 트집만 잡으려 했다. 하느님의 구원은 유다인을 통해서 먼저 주어져야 하는데 유다인들이 이를 거부하고 있었다. ‘자녀들이 먹을 빵’이라 하심은 바로 이를 시사하시는 것이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가나안 여자는 유다인들의 구원에 대해서 인정하면서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을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다시 청하고 있다. 가나안 여자의 모습은 전통과 관습을 강조하면서 예수님께 트집을 잡아 대드는 유다인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이 여자의 믿음은 대단하였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구원에 대해서 굳은 신뢰심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청을 들어주신다. 그들의 종교와 생활하는 처지로는 도저히 주어질 수 없는 구원이지만, 그러나 메시아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그 여자는 구원을 받았다. 유다인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하느님의 구원이 예수님을 통하여 가나안 여자가 받고 있다. 유다인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제 하느님의 구원이 어떤 특권층과 특정된 지역에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주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는 누구에게나 하느님의 구원이 주어짐을 암시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의 구원과 유다인에 대해서 제2독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에 하느님께 순종하지 않았던 여러분이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의 불순종 때문에 하느님의 자비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은 순종하지 않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도 여러분이 받을 하느님의 자비를 보고 회개하여 마침내는 자비를 받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로마 11,30-31).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들이 믿을 수 있는 하느님이 되어주신다.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주어진다. 따라서 구원은 주님께 대한 믿음에서 오는 것이며 누구에게나 주어진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