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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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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복음: 마태 18,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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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8-31 08:57 조회261회 댓글0건

본문

 

형제가 죄를 지으면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 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주어라. 그가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다”(마태 18,15).

 

오늘은 연중 제23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형제가 죄를 지으면’과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대한 말씀이다. 이는 서로 연관을 가지면서 형제들과 함께 모여 기도하는 공동체를 강조하시는 가르침이며, 또한 오늘날 하느님 자녀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모습을 암시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면 먼저 ‘형제가 죄를 지으면’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자.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 둘이 만나서 그의 잘못을 타일러주어라. 그가 말을 들으면 너는 형제 하나를 얻는 셈이다. 그러나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 그리하여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을 들어 확정하라’는 말씀대로 모든 사실을 밝혀라. 그래도 그들의 말을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거든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 18,15-18).

형제는 누구인가? ‘형제’에 관한 성서적 개념에 대해서 알아보자. 성서에 나오는 형제라는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과는 그 깊이가 다르다. 성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가족들 안에 두셨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그리고 하느님의 선택된 거룩한 백성으로서 한 가족이었고, 한 형제였다. 말라기서에 이렇게 나온다.

“우리의 조상은 한 분이 아니시냐? 우리를 내신 하느님도 한 분이 아니시냐?”(말라 2,10)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형제라는 단어는 혈족과는 달리 ‘동족, 동료, 동맹자, 친구들’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으로서 형제의 의를 종족적으로 순수하게 지켜야 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형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마태 12,50).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주님을 따르는 이들은 남자든, 여자든, 제자들이든, 모두가 주님을 따르는 무리일 뿐만 아니라 ‘형제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제에 대한 성서적 개념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으로 선택하신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이며, 오늘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다. 지난주 복음에서처럼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모든 이들이 서로 형제들이다. 이처럼 성서상에서 형제들이란 피를 나눈 혈육의 형제들보다 그 의미가 깊고 심오하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형제를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가르침이다. 따라서 형제의 잘못을 덮어두는 것은 형제를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형제가 잘못을 저지르면 잘 타일러주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형제의 잘못에 대한 질책이 아니라 형제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에서 형제를 잃지 않기 위한 타이름이다. 타이름에 대한 가르침은 이미 구약성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한 죄인에게 ‘너는 사형이다’라고 유죄 판결을 내렸는데, 네가 그 죄인에게 버릇을 고치라고 타일러주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 죄인은 자기 죄값으로 죽겠지만 그 사람이 죽은 책임을 나는 너에게 지우리라”(에제 33,8).

구약성서는 형제의 잘못된 버릇을 잘 타일러주지 않아 형제가 죽었을 경우 그 책임을 묻고 있다. 이처럼 성서는 이미 구약에서부터 하느님 품안에서 같이 살고 있는 형제에 대한 소중함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형제의 잘못에 대한 타이름을 새롭게 강조하시면서 형제에 대한 사랑을 가르쳐주고 계신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형제에 대한 타이름에 있어서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계신다. 형제를 타이름에 있어서 방법이 좋지 못하면 오히려 형제를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어떤 형제가 너에게 잘못한 일이 있거든 단 둘이 만나서 잘못을 타일러주라고 하신다. 우선적으로 당사자들끼리 잘못에 대해서 서로 용서하고 화해를 하도록 하신다. 주님 안에서 형제들은 서로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적대관계로 함께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단 둘이서 타이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경우에는 다른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고 말씀하신다.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은 율법에도 규정하고 있다. 율법에 어떠한 범죄라도 죄를 확정 시키려면 적어도 둘 이상의 증인이 증언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보다 공정성을 가지기 위한 증인의 채택이었다. 따라서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라 하심은 잘못한 형제를 죄인으로 확정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잘못을 알아듣게 하기 위한 사랑의 배려였다. 

그런데도 말을 듣지 않거든 교회에 알리라고 하신다. 교회는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주님을 믿는 형제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요, 가족들이다. 교회는 법적인 판단과 행동의 기초와 정의를 주장하기보다는 용서와 화해를 우선적으로 하는 자비와 사랑이 있는 곳이다. 왜냐하면 주님이 계시는 곳이며, 하느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만일에도 그가 교회의 말조차 듣지 않는다면 그는 주님의 형제들과 함께 사는 형제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라고 하신다.

하느님의 자녀들이 모여 사는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형제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게 살면서 일치를 이루는 가정과 같은 곳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느님으로부터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생겨났기 때문이다. 모두는 한 형제들로서 서로 믿음과 성덕에 책임을 지고, 서로 타일러주고 타이름을 받아들이는 주님의 형제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끝으로 전에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서 주셨던 권한에 대한 말씀을 다시 한 번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풀어주는’ 권한에 대한 말씀을 전에는 베드로 개인에게 말씀하셨는데(연중 제21주일), 오늘은 ‘너희’라는 말씀으로 교회의 공동체를 암시하시면서 ‘풀어주라’고 말씀하신다. 형제를 서로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권한을 교회를 상징하는 우리 모두에게 주고 계신다. 우리가 우리 형제의 잘못이나 죄를 용서하면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서도 용서해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정리하는 뜻으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오늘날 우리 교회관이다. 하느님의 자녀들인 형제들이 서로 모여 아버지께 기도하고 청하는 모습을 가르치시는 것이며, 교회 안에서 형제들끼리 함께 마음을 모아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라시는 뜻이다.

우리는 한 형제들이다. 서로 잘못한 일이 있더라도 타일러주고 용서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형제가 잘못되는 일이 없도록 항상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야 한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다.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러한 의무를 다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로마 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