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1주일(복음: 마태 2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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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10-26 08:53 조회3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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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에 대한 책망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 23,3).
오늘은 연중 제31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위선에 대해서 책망하시는 내용이다. 예수님께서는 군중과 제자들에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위선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올바른 삶을 살도록 가르치신다.
복음의 배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성전에서 하신 일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과의 대립은 매우 심각하였다.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학문과 율법의 지식을 가지고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또는 행하시는 일들에 대해서 따지고 트집을 잡으며 예수님을 괴롭혔다. 언젠가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세금에 대한 논쟁을 하셨고, 그 뒤에는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부활에 대한 토론’을 하셨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또 몰려왔다. 그들 중에 율법 교사가 율법서에 기록된 계명과 여러 가지 규범에 대해서 예수님께 묻고 따졌다. 그들 역시 예수님의 말씀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그들이 모두 물러간 뒤에 예수님께서는 군중들과 제자들에게 그들의 위선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오늘 복음이 바로 그 말씀이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그때에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말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말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마태 23,1-12).
당시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 있었고, 사실상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들의 영향력은 대단히 컸다.
그러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기원과 신원에 대해서 살펴보자. 원래 율법학자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아니었다. 율법학자들은 B.C. 538년 페르시아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 유배에서 돌아온 후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혹독한 유배 생활에서 풀려나온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말씀인 율법을 지키지 않았던 잘못을 깊이 반성하였다. 그리고 성전을 재건하면서 종교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때 ‘하느님의 말씀인 율법서’를 다시 정리하며, 율법과 윤리를 깊이 해석하고 가르쳤는데 이를 율법학자들이 전담하였다. 따라서 율법학자들의 기원은 B.C. 500년경부터 B.C. 200년까지로 본다. 이러한 의미로 이해되는 최초의 율법학자는 성서에 나오는 예언자 에즈라였다.
원래 율법학자들은 종교적인 지위가 전혀 없는 사람들로 성전을 관리하면서 모세의 자리에 앉아 율법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였다. 이들의 가장 큰 업적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모세오경인 율법서를 만든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성서 원문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이들 율법학자들이 B.C. 200년경에 갑자기 사라진다. 율법학자들이 사라진 이후 그들이 갖고 있던 성서적인 학문의 전통을 주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이어받았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본래 율법 정신을 고수하며 가르쳤던 율법학자들의 모습과는 크게 달랐다. 그들은 직업적이었다. 따라서 그들을 율법 박사나 율법사라고 불렀다. 신약성서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함께 나오는 율법학자들이란 율법 박사나 또는 법의 집행을 맡은 재판관에게 법적 충고를 해주는 율법사들을 말한다. 그러나 율법박사들과 율법사들도 과거 율법학자들의 학문을 소유하면서 그들의 역할을 다하였다. 그들 역시 모세의 자리에 앉아서 모세의 율법 아래 스스로 통제하며 사는 법을 가르쳤다. 따라서 그들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그리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제2 성전 시대(B.C. 515년~A.D. 70년) 후반기에 팔레스티나에서 유다교의 한 종교 분파로 등장하였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기원은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마카베오 반란 직후인 B.C. 165년부터 뚜렷한 한 종교적 집단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원래 정치적 집단이 아니라 주로 학자들과 경건한 신자들로 구성되었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일부 사제들과 율법학자들, 백성의 원로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이스라엘의 대중적 지지를 크게 받았다. 그리고 신약성서에서 많은 군중의 대변자로 등장하였다.
예수님 시대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수는 6천 명 정도였으며, 그 당시 바리사이파의 총 인원수(교파원 및 신봉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약 2만 5천 명으로 추산하며, 그중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자는 2만 명 정도에 이른 것으로 본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서의 원문에만 치중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과는 달리 율법서와 모세 이래 내려오는 전통과 관습까지도 하느님의 법으로 중요시하는 사람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서도 하느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스라엘의 전 지역 여러 곳에 회당을 만들고 회당을 발전시켰다.
이처럼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유다교를 이끄는 중심 인물들이었고, 유다교 신앙을 보존하면서 가르친 랍비(선생)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들이 누리는 지위와 화려한 생활을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끊임없이 반대하고 괴롭혔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학문과 율법에 대한 해석과 가르침에 대해서는 칭찬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이나 행실은 따르지 못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율법에 대한 지식과 학문으로 백성들에게만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워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있음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은 지키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만 지키라고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허세와 특권 의식 그리고 회당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으려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태도를 크게 책망하셨다. 이러한 것들은 하느님의 말씀인 사랑을 거스르는 것이었고, 신앙을 퇴색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종교의 부패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백성의 지도자들인 그들의 나쁜 행실에 대해서는 이미 구약에서도 충고하였다. 오늘 제1독서에 이렇게 나온다.
“너희는 바른 길을 떠났다. 법을 가르친다면서 도리어 많은 사람을 넘어뜨렸다. 레위와 맺은 나의 계약을 깨뜨렸다.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말라 2,8).
끝으로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그릇된 행실은 하느님의 법을 해치는 것이며, 하느님의 사랑에서 백성들을 멀리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참다운 행실에 대한 가르침을 주셨다.
먼저 스승 소리를 듣지 말라고 하신다. 스승이란 가르치는 사람이다. 스승이란 자기 학문이나 지식, 자기 생각들을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기들의 학문이나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이 아니라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증언하면서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파견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이라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고 하신다. 하느님 외에 다른 사람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오직 하느님만이 아버지이시며 유일한 분이시다. 따라서 주님의 제자들은 하느님 외에 어느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지도자라는 말을 듣지 말라고 하신다. 지도자는 백성을 이끄는 사람이다. 따라서 지도자는 오직 그리스도이신 주님뿐이시다. 그리스도이신 주님만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아버지께로 이끌어가시는 분이시다. 제자들은 결코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제자들은 오직 그리스도께서 이끌어가시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제자들에게 서로 섬기고 봉사하는 자세를 가르치신다. 서로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가르치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을 낮추어 서로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는 오늘날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세이며, 특히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에 새겨야 하는 가르침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