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일(마르 10,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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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10-07 09:05 조회37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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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재물로 영원한 집에 들어가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마르 10,21).
오늘은 연중 제28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부자 청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묻는다. 그는 성실한 사람으로 생명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는 길을 예수님께 물었다.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 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마르 10,17-18).
이 사람은 예수님을 '선하신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성서에서 선하심(Good; 좋은)은 매우 깊은 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의 선하심은 핵심적 계시의 하나로서 하느님을 '선하신 분'으로 표현하였다.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통해서 악의 쓰라림을 가장 통절히 체험한 이스라엘이기에 그들은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신 야훼께서 한없이 선하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또한 야훼께서 선하시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야훼께서 한결같이 그 위에 눈길을 주시는 좋은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셨다고 믿고 있었다. 역대기에 보면 야훼 하느님의 선하심을 '어지신 야훼께 고마움 아뢰어라. 그지없으신 그의 사랑 노래하여라'(1역대 16,34) 하고 찬양한다.
오늘 복음에서 그 사람은 예수님을 선하신 선생님이라고 부르면서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낸다. 그는 예수님을 영원한 생명을 지니신 분으로 믿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 당신께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남을 속이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고 한 계명을 너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선생님, 그 모든 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마르 10,19-20).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율법의 근본정신을 요약한 십계명의 둘째 부분인 이웃에 대한 사랑의 계명을 말씀하신다. 그가 십계명의 첫째 부분인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있음을 아시고 둘째 부분에 대한 실천 여부를 타진하신 것이다. 역시 그 사람은 이스라엘의 성실한 사람으로서 하느님께서 주신 둘째 계명도 잘 지키면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잘 지켜왔다고 한 그를 유심히 바라보시며 대견해 하신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마르 10,21).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가난한 이웃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간다. 그는 율법을 잘 지키고 있었지만 세속적인 재물에 대한 애착 때문에 그의 재산을 포기하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신다.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마르 10,23).
재물에 대한 애착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 크나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물 그 자체를 부정하시는 것은 아니다. 재물은 그 자체가 선이다.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는 모든 경건한 사람들이 재물, 즉 부를 얻었다는 것을 칭찬하면서 자랑하고 있다. 시련을 당한 욥의 부와, 다윗과 여호사밧, 그리고 히즈키야 같은 역대 왕들의 부가 그러했다. 호메로스 시대에 그리스에서와 같이, 이스라엘에서도 부는 귀족의 권리와 같은 것이었으며, 하느님께서도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 등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부유하게 하셨다. 그 후 이스라엘 부족들도 제각기 번영과 부를 높이 평가했으며, 야훼께서 당신 백성에게 약속하신 땅에는 아무것도 부족함이 없어야 했고 풍족해야 했다. 그러므로 성서에서 부는 아무리 물질적인 것일지라도 좋은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부가 이와 같이 좋은 것이라 해도 제일 좋은 것이라는 표현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부보다는 마음의 평화, 명성, 건강, 정의 등을 더욱 소중히 여기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사람들은 죽음과 사랑과 같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부의 한계를 깨닫고 지혜를 받아들였으며, 부보다 항상 부의 원천인 지혜를 선택해야 했고, 지혜야말로 모든 노력을 다해서 찾아야 할 귀중한 진주이며 보물임을 가르쳤다. 오늘 제1독서에서도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귀중한 보석이라도 지혜와 견줄 수 없었으며 온 세상의 금도 지혜에 비하면 한 줌의 모래에 불과하였고 은도 지혜에 비하면 진흙이나 마찬가지였다"(지혜 7,9).
부는 특히 선택된 자들에게 하느님의 너그러우심을 표현하는 하나의 표지이지만 지혜를 능가할 수는 없다. 지혜는 곧 신적 근원인 진리이며, 하느님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재물에 대한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란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신다.
"부자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마르 10,25).
부자들에게 있어서 구원은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니, 거의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제자들은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고 수군거렸다.
낙타에 대한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바빌론 탈무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라바는 '사람은 (꿈에서도) 황금의 종려나무나 코끼리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없다'고 했으며, 모하멧(Mohammed)은 그의 신탁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두고 그들은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간 후에야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부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왜 부자에 대한 하느님 나라의 입성, 즉 구원에 대해서 거의 불가능하게 말씀하시는 것인가! 확실히 재물, 부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한 것이지만 모든 부가 하느님 축복의 결실이라는 것은 아니다. 탐욕에서 오는 부정적인 부가 있다는 것이다. 옛날부터 전해 오는 지혜도 부정한 재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부정하게 얻은 재물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거듭거듭 지적하고 있다. 이사야서는 몇몇 특권을 누리는 자들이 백성에게 지상의 재물을 돌려주지 않고 독점하면서 모은 재물을 부정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레미야도 부정적인 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새장에 새를 가득히 채우듯이 남을 속여 약탈해 온 재산을 제 집에 채워 벼락부자가 되고 세력을 휘두른다. 피둥피둥 개기름이 도는 것들, 못하는 짓이 없구나. 남의 권리 같은 것은 아랑곳 없다는 듯 고아의 인권을 짓밟고 빈민들의 송사를 공정하게 재판해 주지도 않는다"(예레 5,27-28).
재물을 탐하면서 하느님을 도외시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자들은 모두가 불경건한 자들이다. 그들은 의지하여야 할 유일한 요새이신 하느님을 잊고, 재물에 의지하고 재물을 요새로 삼으려 한다. 성서는 결국 자기 재물에 탐하고 의지하는 자는 망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신약성서도 부에 대해서 함부로 칭찬하지 않는 구약성서의 사상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특히 야고보는 탐욕스러운 부자들과 그들의 썩은 재물에 대하여 예언자들을 방불케 하는 격한 규탄을 하고 있다. 그래서 복음서는 가혹할 정도로 부정직한 부에 대하여 가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모든 것을 받기 위해서는, 부정직한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요구가 따른다. 비할 데 없는 보물과 귀중한 진주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루가 14,33)는 법칙은 절대적이며 예외도 없고 정상참작도 없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이미 세상의 온갖 '복'과 '위로'를 받은 불경건한 부자는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도 이 부자들을 그렇게 보셨다.
재물을 포기한다는 것이 소유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복음은 사람들이 재물을 귀찮은 짐처럼 벗어 버리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 불의한 재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기를 원한다. 이 세상의 재물로서 불의에 물들지 않고 깨끗하게 모은 재물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 그러면 재물이 없어질 때에 너희는 영접을 받으며 영원한 집으로 들어 갈 것이다'(루가 16,9)라고 말씀하신다.
진정한 부는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증여하는 데서 발견된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이리하여 여러분은 언제나 부요하게 되어 아낌없이 남을 도울 수 있게 될 것이며 우리를 통해서 그 선물이 전달될 때 많은 사람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2고린 9,11).
바오로 사도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 것을 권장한다.
제자들이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며 수군거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똑바로 보시며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하실 수 있는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 하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성령에 의한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때 베드로가 나서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하고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축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마르 10,29-30).
주님을 생각하면서 자기의 부를 포기하고 베푸는 사람은 결국 하느님께로부터 큰 재물인 하느님 나라를 얻게 될 것이다. 이는 세속의 재물을 통하여 영적인 재물, 곧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