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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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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일(복음: 루카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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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12-02 09:06 조회3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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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요르단 강 부근의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며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하고 선포하였다”(루카 3,3).

 

오늘은 대림절 제2주일이다.

매년 대림 제2주일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 따라 회개하고 죄를 뉘우치면서 메시아의 탄생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오늘 복음은 메시아의 탄생을 선포하는 세례자 요한의 신원과 사막에서 외치는 그의 소리와 그의 사명을 전한다. 복음은 먼저 세례자 요한이 활동할 즈음에 팔레스티나(이스라엘) 지방의 정세와 주변 나라, 그리고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로마 황제 티베리오가 다스린 지 십오 년째 되던 해에 본티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있었다. 그리고 갈릴래아 지방의 영주는 헤로데였고 이두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는 헤로데의 동생 필립보였으며 아빌레네 지방의 영주는 리사니아였다. 그리고 당시의 대사제는 안나스와 가야파였다. 바로 그 무렵에 즈가리야의 아들 요한은 광야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루카 3,1-2).

당시 로마 황제는 티베리오였다. 티베리오(B.C. 42년-A.D. 37년)는 로마제국의 제2대 황제였으며, 아우구스토(B.C. 30년-A.D. 14년)의 후계자였다. 그는 티베리오 클라우디오와 리비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재위 기간은 A.D. 14년에서 A.D. 37년까지였다. 티베리오 황제의 본명은 티베리우스 클라우디우스 케사르 아우구스토(Tiberius Claudius Caesar Augustus)였다. A.D. 4년에는 아우구스토의 양자가 되었고 이에 로마의 원로원은 그에게 최고의 행정권과 총독의 권한을 부여하였다. A.D. 14년 9월 17일에 아우구스토가 죽자 그는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복음서에 또 한번 티베리오 황제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예수님께서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에게 세금에 대한 문제로 “데나리온 한 닢을 나에게 보여라. 그 돈에 누구의 초상과 글자가 새겨져 있느냐?”(루카 20,24) 하고 물으셨을 때였다. 아마도 복음서의 기록에 나타나는 데나리온이나 세금으로 바치는 동전에는 티베리오의 초상과 그의 이름인 ‘티베리오 케사르, 신성한 아우구스토의 아들, 아우구스토’(TI. CAESAR. DIVI. AUS. F. AUGUSTUS)가 새겨졌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의 활동은 티베리오가 다스린 지 15년이 되는 해였으며, 본티오 빌라도가 로마에서 유다 총독으로 와 있었던 때였다.

당시에 팔레스티나, 즉 이스라엘의 왕은 헤로데였다. 로마는 점령국의 정치와 종교, 문화를 인정하는 보호 정치를 하면서 헤로데 왕조(B.C. 37-A.D. 70; 로마 통치하에서 유다 팔레스티나 지역을 지배하던 왕조)로 하여금 팔레스티나를 통치하게 하였다. 헤로데는 팔레스티나의 왕으로 있으면서 갈릴래아 지방을 다스렸고, 이두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은 헤로데의 동생 필립보가 다스렸다. 이두래아는 팔레스티나 북쪽 지방에 있던 작은 지방으로 레바논 인접 호수 지역과 그 유역이었으며, 트라코니티스는 북부 트란스 요르단의 한 지방으로 거칠고 돌이 많은 고장이었다. 그리고 복음서에 나오는 아빌레네 지방은 역시 헤로데의 동생 리사니아가 다스렸다. 아빌레네 지방은 안티 레바논(헤르몬 산의 북동쪽과 다마스커스 서쪽)에 있는 지방으로 작은 산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이 활동을 시작할 즈음에 팔레스티나 전 지역을 헤로데 형제들이 다스리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복음은 세례자 요한이 활동을 시작할 즈음의 대사제를 안나스와 가야파 두 사람으로 전하고 있다. 대사제를 두 사람으로 언급한 것을 보면 세례자 요한이 활동을 할 때에 이미 안나스가 가야파에게 대사제직을 인계한 것으로 보인다. 안나스에 대해서는 요한 복음 사가가 자세하게 전하고 있는데, 안나스는 대사제직을 그의 사위 가야파에게 인계하고도 계속 대사제직의 실권을 행사하였다. 그리고 안나스는 예수님의 십자가형 재판에 깊게 관여한 사람이었다(나해-주님 수난 성금요일 참조).

오늘 복음은 이어서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 대해서 이렇게 전한다.

“그리고는 요르단 강 부근의 모든 지방을 두루 다니며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하고 선포하였다.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의 책에 기록된 말씀대로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높은 산과 작은 언덕은 눕혀져 굽은 길이 곧아지며 험한 길이 고르게 되는 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루카 3,3-6).

루카 복음 사가 역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라는 세례자 요한의 말을 중요하게 전하고 있다. 이처럼 공관 복음서를 보면 세례자 요한의 외침은 ‘회개’(가해-대림 제2주일 참조)와 ‘죄의 용서’(나해-대림 제2주일 참조)에 대한 외침이었다. 루카 복음 사가는 세례자 요한의 회개에 있어서 ‘윤리적인 회개’를 특히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이방인들의 복음 전파에 깊은 관심을 가진 루카 복음 사가는 메시아의 오심에 앞서 메시아를 받아들일 회심과 더불어 윤리적인 회개에 대해서 교훈적으로 촉구한 것 같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다음 주일 복음에 계속 이어지는 세례자 요한의 회개에 대한 외침을 보면 더 잘 알 수 있다. 따라서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잘못된 삶과 생활 방식을 바꾸어 올바른 생활을 해야 한다.

그리고 루카 복음 사가는 세례자 요한을 이사야서에 나오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와 동일한 인물로 전하면서 세례자 요한의 외침으로 이사야서에 나오는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예언을 인용하고 있다.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의 오심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한다.

“한 소리 있어 외친다. ‘야훼께서 오신다. 사막에 길을 내어라. 우리의 하느님께서 오신다. 벌판에 큰 길을 훤히 닦아라. 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 내려라. 절벽은 평지를 만들고, 비탈진 산골길은 넓혀라. 야훼의 영광이 나타나리니 모든 사람이 그 영화를 뵈리라. 야훼께서 친히 이렇게 약속하셨다’”(이사 40,3-5).

복음 사가는 이사야 예언자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시는 분을 준비하는 자로 ‘한 소리’라고 표현하였는데, 그 ‘한 소리’가 바로 세례자 요한이라는 것이다.

그 ‘한 소리’의 외침은 야훼 하느님께서 오신다는 선포였다. 그리고 야훼 하느님께서 오시는 날은 야훼 하느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날이며, 구원의 날이었다. 복음 사가는 세례자 요한이 선포하는 외침을 바탕으로 메시아이신 하느님의 아드님이 오시는 날을 특별히 구원의 날로 보았다. 그리고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진 복음 사가는 주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주어진 것으로 보았다. 루카 복음 사가는 사도행전에서도 “그러니 하느님의 이 구원의 말씀이 이방인들에게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이방인들은 이 구원의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사도 28,28)라고 하면서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서 말하였다.

사실 구원은 메시아의 탄생으로 세상에 주어졌으며,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완전히 성취되었다. 따라서 루카 복음 사가는 사도 행전에서 “이분에게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사도 4,12)라고 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하였다.

구원을 얻으려면 먼저 회개와 회심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세례자 요한의 메시지이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회개와 회심은 지금 당장 이루어져야 하고, 그 증표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제 하느님께서는 몸소 죄 많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찾아오시려 하고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을 맞이하기 위한 회개와 회심의 시간을 조용히 가져야 한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라. 그러면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