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형에 대하여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4-14 08:50 조회194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예수님께서 처형당하신 십자가형의 기원과 형벌, 그리고 신학적인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자. 십자가형의 기원을 알아봄으로써 예수님께서 얼마나 혹독하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는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라는 용어만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말은 없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신 후에 세계사가 십자가 사건에 의해 결정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며,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신앙의 중심이 바로 이 십자가이고 주님에 대한 믿음이 십자가로 표현되고 상징되기 때문이다.
십자가(Cross)의 어원은 헬라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헬라어 스타우로스(Stauros) 동사형 스타우로오(Stauroo)에서 파생되었다. 스타우로스는 단순하게 땅에 수직으로 박힌 뾰족한 기둥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에 기둥은 대개 두 가지 목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첫 번째는 기둥을 나란히 세워 담이나 방어용 울타리로 사용하였고, 두 번째는 기둥을 세워 중범자를 공개적으로 매달아 죽게 하거나, 죽은 자의 시체를 매달아 모독하기 위한 형틀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동사인 스타우로오 역시 ‘기둥을 박다. 방책으로 보호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이차적으로는 ‘십자가에 못 박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었다.
페르시아 사람들이 최초로 사람을 죽이는 형틀로 십자가를 사용했다고 전해지는데, 야만인들에게만 사용한 처형 방식이었다고 한다. 그리스나 로마의 역사가들도 야만인들에게 사용한 십자가 처형에 관해서만 즐겨 언급하고 있을 뿐 자기 민족에게 집행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행해진 십자가형의 처형 방식을 보면 살아 있는 사람을 뾰족한 기둥에 꿰뚫어 죽였는데 주로 탈주자, 적군포로, 반역자 등을 처형할 때 쓰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고대 문헌들이 세부적인 사실에 관해 항상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처형 방식에 관한 묘사만으로 그것이 기둥에 꿰뚫어 죽이는 방식이었는지 아니면 십자가형이었는지 모르며, 또한 살아 있는 사람을 십자가형에 처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죽은 시체를 매달아 단지 대중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는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비록 십자가형이 그리스 사람들의 전형적인 처형 방식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들은 이 방식을 받아들여 알렉산더 대왕이 두로를 포위 공격한 후 해안선에서 2천 명을 십자가형에 처한 기록이 있다. 그리고 디아도키, 카르타고인들에 의해 십자가형이 사용되었으며 마침내는 로마인들도 그 처형 방식을 사용하였다. ‘크룩스’(Crux, 십자가)라는 용어는 바로 로마인들이 사용한 어휘이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도 십자가형은 거의 예외 없이 자기들 시민을 처형하는 방식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로마의 상류층에게는 십자가형이 ‘노예의 형벌’(Servile Supplicium)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한 의미를 가졌으며, 로마 시민 역시 십자가형에 대해서 매우 혐오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 형벌이 점차 법질서를 유지하는데 유용한 것으로 인식됨에 따라 침략한 지배국의 총독들이 자의로 이를 집행하였다. 따라서 십자가형은 로마 시대의 공화정 때부터 노예에 대한 처형 방식으로 로마가 침략한 나라에서 자주 사용되었으며, 그 후 외국인과 강도들도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이처럼 노예들과 강도들이 연관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거의 대부분 탈주한 노예들이 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십자가형은 침략된 나라에서 가장 널리 행해지는 처형 방식이 되었다. 예루살렘이 멸망할 즈음에 참혹한 십자가형을 무수히 목격한 요세푸스는 십자가형을 ‘가장 비참한 죽음’이라고 특징지었다. 그것은 당시에 이스라엘에서도 십자가형이 소요와 강도 억제책으로 집행되었기 때문이었다. 유다인들의 율법에서도 간음한 사람과 신성 모독 자를 돌로 쳐죽인 후에 그 시체를 나무에 매달아 그들이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것을 보게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만 죽은 사람을 매단 것이었고, 시체들도 나무에 매달린 채 밤을 넘기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고 있다. 십자가형은 정치적, 군사적 처형 수단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그것이 그리스도교에 대한 모독이라는 이유로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에 이르러 폐지되었다.
십자가형의 절차를 보면 처형하기 전에 카르타고인들은 고문을 가했으며, 로마인들은 주로 매질을 했다고 한다. 피가 날 때까지 매질하는 것이 상례였는데, 그것은 실제로 처형자를 빨리 죽게 함으로써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동안의 고통을 덜어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죄인이 이미 수직 말뚝이 세워진 처형장까지 십자가의 가로지르는 나무를 메고 가게 했으며, 십자가에 매달린 죄인은 숨을 거둘 때까지 보통 2-3일이 걸렸다고 한다.
예수님의 경우 심한 매질을 당하셨는데, 다음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그날(금요일)로 빨리 죽게 하기 위해서였으며, 시신을 십자가에 매단 채 밤을 넘기지 말라는 율법에 따라 그날로 매장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심한 매질로 너무 많은 양의 피를 흘리셔서 십자가를 처형장까지 메고 가실 수 없었고 다른 사람이 도와야 했을 정도로 이미 기진해 있었다. 이 때문에 빌라도가 “예수가 벌써 죽었을까”(마르 15,44) 하고 놀랄 정도로 예수님께서는 빨리 운명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에 관해서는 복음서들이 모두 간략하게 기록해 놓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의 절차는 로마의 관례를 따랐지만 몇 가지 특징들이 있었다. 예수님께 대한 조롱들이 매우 많았으며, 처형자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겨서 나누어 가진 일 역시 흔한 일은 아니었다. 또한 포도주를 해면에 듬뿍 적셔서 히솝 풀대에 꿰어드린 점이며, 예수님을 금요일에 재판하면서 당일에 선고하여 죽게 하고, 그분의 시신을 그날로 무덤에 장사 지낸 점도 일반 범죄자들과 다른 점이었다.
십자가형은 당시에 네 가지 형태가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첫째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보고 있는 수직 기둥에 짧은 가로지르기 십자 형태인 라틴 십자가(†)인데 예수님께서 달려 죽으셨던 십자가도 그분의 머리 위에 죄 패를 붙였던 점으로 보아 ‘라틴 십자가’였다고 전해진다. 둘째는 ‘T’자 형태로서 ‘성 안토니우스의 십자가’라고도 불리어지는데 그것은 성인이 지니고 다녔던 목발과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셋째는 ‘그리스 십자가’라고 불리며 후기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수직과 가로가 똑같은 열 십자(+) 모양의 십자가이다. 넷째는 ‘×’자 형태로서 ‘성 안드레아의 십자가’라고 불리는 십자가이다. 십자가 형태는 원시적인 형태의 기둥에서 변형되어 가로지른 대가 덧붙게 되었다. 이러한 형틀의 발전은 적어도 로마 시대에 있어서 혐의가 있는 노예로 하여금 멍에 같이 생긴 형구(Patibulum)를 메고 가도록 했던 것과 관련 있다. 또한 로마제국 시대에 십자가형을 ‘오예(지저분하고 더러운)의 처벌 방법’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선고받은 자가 그 처형장까지 가로지른 대를 메고 가는 것이 관례화된 데서 나온 말이었다.
형틀이었던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처형당하심으로써 새로운 의미가 주어졌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중요한 의미와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예술에도 십자가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십자가가 2세기 말엽부터 독실한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성호(聖號)로 사용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즉 ‘여행이나 행진할 때, 집에 들어오거나 나갈 때, 식사 때나 잠자리에 들어갈 때’마다 이마에 십자가를 그어서 표시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경건한 신자들의 일과 속에서 십자가 상징을 생활화하였던 것으로 보아 공동 예배에서도 매우 빈번히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십자가 처형이란 본래 죽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당연히 십자가는 고통, 시련, 질곡을 의미한다. 이처럼 십자가는 죽음과 희생의 상징이다.
이후 신약성서의 십자가 신학은 바오로 사도에 의해서 크게 발전하여 나갔다. 바오로 사도는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십자가의 이치가 한낱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지만 구원받을 우리에게는 곧 하느님의 힘입니다”(1고린 1,18)라고 말하였으며, 또한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그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갈라 5,24)라고 말하였다. 십자가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사도들의 설교와 신약 시대 교회 생활의 핵심이자 경계선이었으며, 이미 신약성서 안에서도 그리스도 사건 전체를 나타내는 핵심으로 사용되었다.
A.D. 32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는 79세 때에 예수님의 무덤으로 전해져 내려온 곳을 발굴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발견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발견 당시 그 죄 패와 못들까지 원형 그대로였다고 한다. 한편 예수님의 십자가에 사용되었던 못의 수에 대해서는 상당히 오랫동안 문제가 제기되었는데 헬레나 성녀의 전승에는 네 개로 전해진다. 그리고 십자가 자체의 나무로 된 주요 부분은 헬레나 성녀가 발견된 지점에 세운 성당에 보관되었고, 다른 부분은 십자가를 위해서 로마에 특별히 세운 ‘성 십자가 성당’에 보관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헬레나 성녀의 십자가에 대한 애착과 믿음은 훗날 십자가 현양 축일(9월 14일)로 이어진다. 오늘날 교회는 매년 십자가 현양 축일에 십자가를 세상에 드러내어 경배하면서 십자가 신비를 묵상한다.
그리고 십자가상의 칠언(Seven Last Words)에 대해서 알아보자.
십자가상 칠언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하신 말씀으로 정경으로 인정된 복음서의 저자들이 전해주고 있는 일곱 마디 말씀을 뜻한다.
첫째는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루카 23,34). 이 말씀은 보존된 많은 사본들 가운데 기록이 되어 있지 않은 말씀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진정 이 말씀을 하셨다면 십자가에 누우신 채로 손에 못이 박히실 때 하신 말씀으로 전해진다.
둘째는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갈 것이다”(루카 23,43). 이 말씀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2명의 강도 중 한 사람, 즉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기억하여주십시오” 하고 간청한 자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 회개한 강도의 이름은 뒤스마스(Dysmas)라고 전해져 오지만 역사적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셋째는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시고 그 제자에게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19,26-27).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그 제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그때부터 자기 집에 모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넷째는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마태 27,46) 이 말씀은 시편 22장 1절을 인용하신 말씀이다. 시편의 여러 구절은 십자가 처형 기사를 연상시켜주는데 시 전체는 무죄한 자의 고뇌를 그려주고 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죽음 앞에서 시편의 시 한 구절을 떠올리셨던 것 같다.
다섯째는 “목마르다”(요한 19,28). 예수님께서 이처럼 외치시자 사람들은 신 포도주를 해면에 담뿍 적셔서 히솝 풀대에 꿰어 가지고 예수님의 입에 대어드렸으며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받아들이셨다.
여섯째는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시편 31장 5절에 근거한 이 기도는 오랫 동안 유다인들의 저녁 기도문으로 사용되어 왔던 것으로 이 시 전체는 박해와 죽음에 직면하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시편이다.
일곱째는 “이제 다 이루었다”(요한 19,30).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고개를 떨구시며 숨을 거두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