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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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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일-생명 주일(복음: 요한 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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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4-28 09:05 조회183회 댓글0건

본문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는 토마와 갈릴래아 가나 사람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과 그 밖의 두 제자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요한 21,2).

 

오늘은 부활절 제3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신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은 제자들의 신앙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사실을 근거로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증언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서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서에 기록된 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과 그 후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입니다”(1고린 15,3-5).

예수님의 나타나심에 대해서 정확하게 언급할 수는 없지만 4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오로 사도의 증언을 보면 적어도 12번 이상이 된다.

첫 번째는 안식일 다음 날 일어난 사건들이다. 새벽에 무덤에서 여인들에게 나타나신 일(마태 28,9-10)과 무덤밖에 서서 울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일(요한 20,14-15), 그리고 오후에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두 제자에게 타나신 일(루카 24,13-31), 그날 저녁 제자들이 무서워서 어떤 집에 모여 있었을 때 나타나신 일(요한 20,19-23)이다. 두 번째는 부활하신 후 여드레 뒤에 토마와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일(요한 20,26-29)이다. 세 번째는 제자들이 과월절이 끝나고 갈릴래아로 돌아 온 뒤에 갈릴래아에서 나타나신 일인다. 오늘의 복음에서 보듯이 먼저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요한 21,1-14), 다음은 갈릴래아에 있는 산에서 11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마태 28,16). 네 번째는 고린토 전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증언하는 예수님 발현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간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베드로에게 나타나신 뒤에 다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또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교우들에게도 나타나셨는데 그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 뒤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또 모든 사도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팔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1고린 15,5-8).

마지막으로는 제자들이 오순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갔을 때 예수님께서 승천하셨는데, 승천하신 곳에서 사도들에게 나타나신 일(사도 1,6-9)이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일에서의 공통점은 거의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추종자들에게만 나타나셨다는 점이다. 이는 제자들과 추종자들에게 당신의 부활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주시어 부활의 증인으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한다면 예수님의 나타나심은 사람들에게 신앙을 강요하거나 의심을 제거하기 위한 증거가 아니라 당신 수난과 부활의 증인이 될 제자들에게 확신과 믿음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장소도 분명하게 구분이 되는데 먼저 과월절이 끝날 때까지는 제자들이 머물고 있었던 예루살렘에서 나타나셨고, 과월절이 끝나고 제자들이 갈릴래아로 돌아가자(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갈릴래아로 먼저 가 있으라고 하시기도 하셨지만) 갈릴래아에서 나타나셨다. 그리고 오순절이 돌아와서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에는 예루살렘에서 나타나셨고,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머무는 동안 승천하셨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신 사건은 장소에 따라서 다소 다른 의미를 주는데 예루살렘에서는 제자들에게 부활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주셨고, 갈릴래아에서는 제자들에게 사도직 사명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기간은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까지 40일이 된다. 오늘 복음은 갈릴래아에서 일곱 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야기인데 전에 베드로에게 “너는 이제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 하신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현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직접 고기를 잡게 하신다. 복음은 그 배경에 대해서 이렇게 전한다.

“그 뒤 예수께서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는데 그 경위는 이러하다.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는 토마와 갈릴래아 가나 사람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과 그 밖의 두 제자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요한 21,1-2).

갈릴래아, 즉 티베리아 호숫가에 있었던 제자들의 수를 보면 일곱이다. 요한 복음 사가는 특별히 일곱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두고 있다. 바빌론 유배 이후 이스라엘은 ‘7’이라는 숫자를 신성하게 여겼으며 다른 많은 민족들도 그러하였다. 이집트인들 사이에서도 신성하게 여겨지던 ‘4’라는 숫자가 서서히 ‘7’로 대치되었고,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약간의 이견이 있으나 고대로부터 ‘7’이라는 숫자를 신성하게 여겨졌다. ‘7’이라는 숫자는 구약성서에서도 안식일과 연관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나해-연중 제9주일 참조), 중요한 축제와 종교 의식도 7일 동안 계속되었고, 과월절과 유다인의 장막절과 속죄일은 모두 일곱 번째 달에 있는 행사였다. 또한 칠칠절과 희년제 모두 7의 배수와 관련이 있다. ‘7’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종교 의식의 모든 면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7’이라는 숫자를 상징적으로 사용했던 여러 가지 경우들에서 이 숫자가 지닌 공통적인 의미가 무엇인가를 규명하기란 매우 어렵다. 일반적으로 가장 간단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것은 ‘7’이 완전함, 완성, 성취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일곱 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고기를 그물에 가득 채우게 하신 사건은 완전한 교회 안에 풍요롭게 하실 사도직의 성취를 암시하신 것이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섰다. 그들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으나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이튿날 날이 밝아 올 때 예수께서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이신 줄을 미처 몰랐다. 예수께서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아무것도 못 잡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 보아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들이 예수께서 이르시는 대로 그물을 던졌더니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만큼 고기가 많이 걸려들었다”(요한 21,3-6).

제자들은 갈릴래아로 돌아온 뒤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두려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더욱이 제자들을 불안하게 한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에 대한 의문이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어디에 계시며 자기들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제자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자들은 베드로의 제안에 따라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 베드로가 고기를 잡으러 간 것을 보면 전에 동업을 하던 제베대오는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베드로 형제가 떠난 뒤에도 고기 잡는 일을 계속하였던 것 같다(나해-연중 제29주일 참조). 밤새도록 고기를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장소까지 가르쳐주시면서 그물을 치라고 하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고기가 많이 걸려들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실 때 주신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하신 사명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이었으며, 제자들에게 앞으로 수행해야 할 사도직을 암시하신 것이었다. 베드로는 고기가 그물을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걸리자 제자들과 함께 종교적인 두려움을 가졌다. 복음은 다시 이렇게 전한다.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시몬 베드로는 몸에 겉옷을 두르고 그냥 물 속에 뛰어들었다. 나머지 제자들은 고기가 잔뜩 걸려든 그물을 끌며 배를 저어 육지로 나왔다. 그들이 들어갔던 곳은 육지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들이 육지에 올라와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빵도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시몬 베드로는 배에 가서 그물을 육지로 끌어 올렸다. 그물 속에는 백쉰세 마리나 되는 큰 고기가 가득히 들어 있었다. 그렇게 많은 고기가 들어 있었는데도 그물은 터지지 않았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중에는 감히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바로 주님이시라는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빵을 집어주시고 또 생선도 집어주셨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이것이 세 번째였다”(요한 21,7-14).

주님이시라는 말에 베드로는 몸에 겉옷을 두른 채 물 속에 뛰어들었는데, 이 갑작스러운 행동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성서에서 물, 즉 바다가 상징하는 의미(나해-연중 제12주일 참조)는 악의 세력권이며 세속을 상징한다. 시몬 베드로가 몸에 겉옷을 두른 채 물 속에 뛰어든 것은 사도들의 사명이란 있는 그대로 세속에 뛰어들어야 된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빵을 드시고 생선을 잡수신 일이다. 이는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현존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빵을 떼시는 가운데 제자들과 항상 함께 계실 것임을 확신시켜주신 것이다. 성목요일 저녁에 제자들과 함께 빵을 나누시면서 세우신 성체성사의 신비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신 것이다.

제자들은 주님의 나타나심을 체험하면서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에 대한 의심이나 불안을 떨쳐 버릴 수 있었다. 이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빵을 나누는 성체성사 안에서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주님은 성체성사를 통하여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이것이 세 번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