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강림 대축일(복음: 요한 2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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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6-02 08:59 조회12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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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은사
“은총의 선물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1코린 12,4).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이다.
성령께서 오신 날을 기념하면서 교회의 역사, 즉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묵상하는 날이다. 성령이 오심으로써 교회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하느님 나라는 오늘날까지 성장되어 왔다. 따라서 성령께서 오신 오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대단히 뜻깊은 날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우리는 ‘가해’와 ‘나해’에서 설명된 하느님의 영이신 성령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특별히 알아보기로 하자.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은총의 선물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것을 주시는 분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주님을 섬기는 직책은 여러 가지이지만 우리가 섬기는 분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일의 결과는 여러 가지이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일을 이루어주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1코린 12,3-7).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은 때때로 프뉴마티카(Pneumatika, 성령의 선물)라는 단어로 사용된다. 그러나 보다 많이 사용되는 용어는 카리스마(Charisma, 성령의 은총)의 복수인 카리스마타(Charismata, 성령의 은사)이다. 카리스마타는 신약성서 외에서는 별로 사용되지 않는다.
성령의 은사에는 두 가지 성격이 있는데 하나는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은혜와 섭리를 통하여 각각 개인이 받는 축복, 즉 하느님께로부터 받는 은총의 선물, 영적 축복, 재능이고, 다른 하나는 특별한 것으로 공동체의 이익과 성장을 위해 사용되는 능력과 책임이 있다. 물론 이 모두는 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충만함의 정도는 달라도 성령의 은사를 다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은사는 모두가 다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이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은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아담의 범죄의 경우에는 그 한 사람 때문에 죽음이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은총의 경우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풍성한 은총을 입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거저 얻은 사람들이 생명의 나라에서 왕 노릇 할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은총의 힘이 얼마나 더 큽니까!”(로마 5,17)
아담의 범죄 이후 죽음에 처한 우리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은총이라고 말하는데 독신 생활을 하게 하는 힘 역시 하나의 은총이라고 말하면서 “사람마다 하느님께로부터 받는 은총의 선물이 각각 다르므로 이 사람은 이렇게 살고 저 사람은 저렇게 삽니다”(1코린 7,7)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누구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와 재능을 무시해서는 안 되며, 남의 은사와 비교해서 자신의 은사를 업신여겨서도 안 된다고 충고하고 있다. 그리고 나약한 인간의 본성은 향상될 수 있기 때문에 각자는 ‘더욱 큰 은사’를 그리워하면서 받은 은사에 충실해야 하고, 교회 안에서 주어진 축복과 특권과 권능은 ‘성령의 은사’로서 결코 철회될 수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각자는 받은 성령의 은사를 복음 전파를 위해서 또는 교회를 위해서 사용하여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무엇보다도 공동체의 이익과 성장을 위해서 쓰여져야 한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를 사용할 때 자만해서는 안 되며 그리스도의 몸에 봉사하는 것처럼 지극히 겸손해야 한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은 성령에게서 지혜의 말씀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지식의 말씀을 받았으며,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믿음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같은 성령에게서 병 고치는 능력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직책을, 어떤 사람은 어느 것이 성령의 활동인지를 가려내는 힘을,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이상한 언어를 말하는 능력을, 어떤 사람은 그 이상한 언어를 해석하는 힘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것은 같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주십니다”(1코린 12,8-11).
성령의 은사는 공동체의 몸인 교회에 관련되어 있으며 교회의 여러 가지 직무에 따라서 각 사람에게 다양하게 주어진다. 따라서 각자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는 자연적이건 비자연적이건, 기적적이건 비기적적이건 모두 성령의 작용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구별이나 구분을 해서는 안 된다.
성령의 은사 중에 무엇보다도 가장 으뜸가는 것은 ‘믿음’이다.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듯이 진실로 가장 큰 성령의 은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믿음이며 신앙이다. 그러므로 믿음과 신앙은 성령의 가장 큰 은사이다. 따라서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시며, 성령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명해주셨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에 힘입어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 성령께서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명해주십니다. 또 우리의 마음속에도 그러한 확신이 있습니다”(로마 8,14-16).
성령께서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시는데, 이 모두는 하느님의 권능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권능인 ‘두나미스’(Dunamis)가 항상 주님 안에 현존해 있다. 따라서 교회 안에 유익하고 필요한 모든 성령의 은사는 주님께서 현존해 계시는 교회 안에서 각 사람에게 주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그분의 은사 안에서 재능과 기능을 다하면서 종말의 그날까지 살아가게 된다.
종말의 그날까지 교회 안에 존재하는 모든 성령의 은사는 하느님의 권능에 의해 교회에 유효하고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쓰여질 때에는 교회에 유익한 것이 아니다. 성령의 은사는 오직 하느님께 대한 깊은 책임 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위해서 행사되어야 한다. 그러면 각자가 받은 모든 성령의 은사가 교회를 위한 봉사라면 어떻게 어떤 자세로 사용해야 하는가? 사도 바오로는 그 대답을 모든 ‘성령의 은사’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여러분은 더 큰 은총의 선물을 간절히 구하십시오. 내가 이제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1코린 12,31-13,1).
분에 넘치는 성령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 은사를 이웃에게 온전히 나누어주기 위해 주어졌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는 사랑의 목적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그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 다시 말하면 성령의 은사는 사랑의 기준에 따라서 평가가 된다. 따라서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은사가 사랑 안에서 쓰여져야 함을 분명하게 언급하면서 강조하고 있다. 성령의 은사에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갈라 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