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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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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복음: 요한 1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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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6-09 08:52 조회92회 댓글0건

본문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다 나의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내게 들은 것을 너희에게 알려주시리라고 내가 말했던 것이다”(요한 16,15).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이다.

오늘 교회는 하느님은 한 분이시지만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위격을 가지신 분이라는 삼위 일체 신비를 묵상하면서 신앙을 고백한다. 삼위일체 교리, 즉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 아버지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의 하느님이신 성령, 이 세 위격 안에 계시는 유일한 하느님에 대한 신앙고백은 그리스도교의 중심 교의이자 신앙의 핵심이다. 지난번 ‘가해’와 ‘나해’에 이어 금년 삼위일체 대축일에는 성서 속에 나타난 성 삼위의 근거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성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삼위일체론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신약성서는 구약의 유일신에 근거하여 하느님의 내적 신비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가르치고 있다. 성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그리고 두 분과 성령의 관계를 진술함으로써 삼위일체론의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따라서 성서는 삼위일체론의 바탕이 된다.

무엇보다도 삼위일체 교리의 출발점은 한 분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구별하여 하느님으로 고백하는 동시에 “하느님은 한 분이시다”(신명 6,4)라는 이스라엘의 근본 신앙을 받아들이고 있다. 하느님께서 유일하시다는 신앙고백은 신약성서에서도 분명하게 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도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마르 12,29)라고 하시면서 하느님께서 유일하신 분이심을 확실하게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유일하시고 한 분이시며 만물의 원천이시다. 또한 살아 계시고 영원한 분이시며 세상 존재의 비인격적인 근거가 아니라 모든 구원의 주체적인 원천이시다. 구약성서는 구원의 역사 안에서 체험을 통하여 생명을 지니신 유일한 하느님이심을 확신하였다. 또한 하느님을 이스라엘의 아버지로 부르면서 ‘말씀, 빛, 영, 지혜, 현존’ 등의 개념들을 통하여 하느님을 인격체로 묘사하였다.

그런데 요한 복음 사가는 사람이 되신 ‘말씀’에 대해서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요한 1,1-4)라고 말하며, 말씀이 사람이 되셨음을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요한 1,14)라고 말하고 있다.

요한 복음 사가는 말씀이신 하느님께서 한 인격체로써 사람이 되어 오셨음을 증언하고 사람이 되어 오신 분을 하느님의 외아드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느님의 외아드님, 즉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말은 성서에 170번이나 나온다. 예수님께서도 직접 “아버지,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나에게서 거두어주소서”(마르 14,36)라고 하시면서 당시 유다교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버지라는 칭호로 하느님을 부르셨다. 이는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아주 친밀한 부자 관계임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요한 10,30)라고 하시면서 하느님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한 분이심을 분명하게 하셨다.

하느님의 내적 생명을 반영시킨 이 신비로운 부자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래 하느님과 함께 계셨음을 시사하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필립 2,6)으로 강생 이전에 이미 하느님으로 존재하셨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성서는 그리스도께서 창조 이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함께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성서는 성령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요한 복음 사가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서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샘솟는 물이 강물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 그때는 예수께서 영광을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성령이 아직 사람들에게 와 계시지 않으셨던 것이다”(요한 7,37-39).

성령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버지께서 세상에 주신 선물이며 아버지와 아들의 공동 선물이시다. 성령은 아버지로부터 오셨듯이 아들로부터도 나온 분이시다.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온 하느님의 영 그 자체이시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왔지만 두 분과 구별되어 설명되고 있다. 성령은 아들에 의해 파견되었고 아들의 영으로 역할을 맡았지만 아들에 종속되어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성령에 의해 잉태되셨고 메시아로 도유되어 세상에 파견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령과 아들은 서로를 파견하고 서로에 의해 파견된 신비의 관계임을 성서는 전하고 있다.

그리고 성서에 보면 아버지와 아들에게 부여되는 수식어들이 성령께도 적용되어 성령께서도 한 인격체로서 신성을 지니신 분으로 묘사되었다. ‘거룩하신 영’이라는 표현이 신약성서에서 89번 언급되는데 이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사 41,16-20)을 연상시킨다. ‘거룩하신 분’이란 명칭은 아버지와 아들에게만 부여되었는데 성령께서도 역시 그분들과 마찬가지로 거룩하시다는 것이다. 또한 ‘영광’, ‘살아 계신’(생명), ‘영원한’ 등의 수식어는 하느님께만 유보된 표현들로 성령께도 부여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바오로 사도는 생명을 주시는 성령에 대해서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새로운 계약을 이행하게 하셨을 따름입니다. 이 계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고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2고린 3,6)라고 말하였다.

성령은 생명과 진리의 영이시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하느님께 속한 속성(거룩함, 영광, 생명, 진리, 영원 등)을 공유하신 분으로 그분들에 의해서 세상에 파견되신 분이시다. 따라서 성서는 서로 다른 칭호들을 세 분에게 부여하여 구별하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을 나타내었다. 또한 가끔 성부, 성자, 성령의 고유한 역할과 특징들을 통하여 한 분이시며 위가 세분이심을 표현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미리 세우신 계획에 따라 뽑혀서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되었으며 그분의 피로 죄가 씻겨진 사람들입니다”(1베드 1,2).

교회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같은 하느님이시고 한 분이심을 믿으며 고백하고 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아들을 보내시어 구원 사업을 성취하게 하셨고, 성령을 보내시어 그 사업을 완성하게 하셨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나란히 호칭하면서 표현하는 것은 이러한 믿음과 신앙에서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주시는 친교를 여러분 모두가 누리시기를 빕니다”(2고린 13,13).

삼위일체의 신비는 우리 구원의 근거이며 목표이다.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의 방식으로 당신을 계시하시고 활동하실 때 우리의 구원이 성취되고, 또한 이 구원으로 하느님의 본질에 온전히 참여하게 된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과 동등한 성자와 성령을 파견하셨다. 따라서 구원과 관련하여 성자와 성령을 파견하심으로써 당신의 내적 생명을 알게 해주시는 하느님을 ‘구원 경륜의 삼위일체 하느님’이라고 부른다. 실로 하느님의 인류에 대한 깊은 사랑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삼위일체 신비는 하느님의 내적 신비로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이다.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