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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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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3주일(복음: 루카 9,5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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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6-24 08:55 조회43회 댓글0건

본문

 

예수님을 따르려면


“예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루카 9,62).

 

오늘은 연중 제13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전반부는 ‘사마리아 동네의 냉대’에 대한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예수님을 따르려면’에 대한 가르침이다. 복음의 배경을 보면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과 수난에 대한 두 번째 예고 후의 일이었다. 이제 마지막 과월절이 돌아오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려고 사마리아 동네를 지나가려 하셨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실 날이 가까워지자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시고 심부름꾼들을 앞서 보내셨다. 그들은 길을 떠나 사마리아 사람들의 마을로 들어가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하려고 하였으나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신다는 말을 듣고는 예수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을 본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 하고 물었으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고 나서 일행과 함께 다른 마을로 가셨다”(루카 9,51-56).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이 가까이 왔음을 아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를 지나가시려고 제자들을 앞서 보내셨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당시에 사마리아 사람들은 같은 나라 사람이면서도 유다인들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서로 적대시하면서 왕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마리아는 어떤 곳인가. 사마리아의 기원은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성서는 이렇게 전한다.

“유다 왕 아사 제 삼십일 년에 오므리가 이스라엘의 왕위에 올라 십이 년간 다스렸는데 육 년은 디르사에서 다스렸다. 그는 사마리아 산을 세멜에게서 은 두 달란트로 샀다. 왕은 그곳에 요새를 건설하고 본래 소유자인 세멜의 이름을 따서 성의 이름을 사마리아라고 불렀다”(1열왕 16,23-25).

이스라엘은 B.C. 935년에 남북으로 갈라졌는데 북부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되었고 남부는 유다라는 나라가 되었다. 오므리 왕은 북부 이스라엘의 4대째 왕이었다. 이 왕이 사마리아 산을 사서 성읍을 건축하고 수도로 정하였는데, 이때부터 사마리아는 북부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수도로 지속되었다. 북부 이스라엘은 호세아 왕 때 그 시대에 가장 강력했던 아시리아에 대항하였으나 결국 B.C. 721년 아시리아 왕 사르곤 2세에게 멸망당하고 말았다(남부 유다는 멸망하지 않았음). 사마리아를 정복한 사르곤 2세는 사마리아를 완전히 자기들 영토로 만들려고 사마리아에 살고 있는 27,290명의 모든 유다인(이스라엘인)들을 국외로 추방하고 그들을 고센이나 메데와 같은 아시리아 점령국으로 보내어 흩어져 살게 한 다음에 사마리아에 다른 정복지의 사람들을 정착시켜 버렸다. 그리하여 사마리아는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들이 모여 사는 땅이 되었으며 아시리아 제국의 행정 구역상 하나가 되었다. 그 후 아시리아가 바빌론에 정복되었을 때는 예루살렘(B.C. 586년 바빌론에게 멸망함)과 함께 바빌론의 영토가 되었고, B.C. 539년 바빌론이 페르시아에 정복된 후에는 페르시아의 한 지방의 행정 구역이 되었다.

페르시아는 바빌론을 정복한 후 B.C. 6세기 후반과 5세기 사이에 국외로 추방되었던 많은 유다인(이스라엘인)들을 돌려보냈는데 남부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예루살렘을 재건하였다. 그러나 사마리아에 살았던 유다인들은 사마리아가 이미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곳이 되었기 때문에 재건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못하고 그들과 동화되어 버렸다. 그리고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는 통일이 되어 한 나라가 되었지만 사마리아는 이방인들과 섞어졌던 관계로 순수 혈통의 유다인(이스라엘인)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서로 반목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후 사마리아는 헤로데왕 때에 와서 초기의 명성을 되찾고 번영을 누리게 되었는데, 헤로데는 사마리아를 새로 재건하면서 성을 증축하였고 그곳에다 그의 어머니와 자녀들을 살게 하면서 그곳에서 마리암과 결혼도 한다. 그러나 유다인들과는 항상 적대 관계에 있었다.

예수님 시대에도 사마리아는 순수 유다인들의 냉대로 유다인들과 적대 관계에 있었으며 종교적으로도 유다인들과는 달리 그들만의 신앙을 따로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의 일행이 들어오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냉대하였다. 이때에 제자들이 분개하여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 하면서 극단적인 말을 했다. 대단히 과격적인 말이었다. 이러한 과격한 말을 두고 야고보와 요한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을 면해 보려고 그렇게 했다는 주장도 있다.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자. 신약성서에 야고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이 나오지만 여기에 나오는 야고보와 요한은 한 형제로서 아버지는 제베대오이고 어머니는 살로메이다. 살로메가 요한 복음 19장 25절에 나오는 ‘이모’와 같은 사람이라면(나해-예수 부활 성야 참조),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과 이종 사촌이 된다. 야고보와 요한은 항상 베드로와 더불어 셋이서 한 그룹을 형성하며 때때로 신약성서에 베드로 다음으로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이름이 나온다. 성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자리에 베드로와 함께 이들 형제를 참석시키셨다.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도 이들 세 사람만 데리고 가셨고, 예수님의 변모 사건에서도 이들만 데리고 산으로 올라 가셨다. 그리고 다가오는 심판의 징조에 대해서 질문한 사람들도 베드로와 야고보(나해-연중 제29주일 참조), 요한과 안드레아였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어머니를 부탁하실 정도로 사랑하셨던 제자로 알려지고 있으며, 루카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과월절 만찬 준비를 위해 베드로와 함께 요한을 보내셨다. 요한은 사도 시대에도 항상 베드로와 함께 나타난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 ‘천둥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보아네르게스’라는 별명을 주셨는데, 이는 이들이 맹렬하고 공격적인 성격이었음을 나타낸다.

복음은 바로 이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전하고 있다. 

“예수의 일행이 길을 가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예수께 ‘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조차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시자 그는 ‘선생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여라’ 하셨다. “또 한 사람은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에 가서 식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게 해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루카 9,57-62).

먼저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에게 물질적 또는 심리적 안정을 찾아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시며 장례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장례는 인간사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아버지의 장례는 자식으로서 치루어야 할 도리요 윤리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인간사의 피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오직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는 데만 온 힘을 쏟아야 하며, 제자들이 그물을 버리고 따라나섰듯이 세속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과거사에 미련을 가져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인간사의 인연을 끊고 오직 주님의 뜻만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 묵묵히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만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길을 따라 걸어가야 한다.

오늘 제1독서에 예수님을 따르는 예형으로서 엘리사가 엘리야 예언자를 따르는 모습이 나온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그의 인격과 권리와 사명, 그리고 능력을 상징하는 망토를 걸쳐주었다. 따라서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야 했다.

“엘리사는 소를 그냥 두고 엘리야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였다. ‘부모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에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허락하여주십시오.’ 그러자 엘리야가 말하였다. ‘어서 가보게, 내가 어찌 작별 인사를 금하겠는가?’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서 황소 두 마리를 잡고 쟁기를 부수어 그 고기를 구워 사람들을 대접하였다. 그리고 나서 엘리사는 엘리야를 따라 나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1열왕 19,20-21).

엘리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엘리야를 따라 그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집으로 가서 모든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작별 인사까지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그 순간부터 모든 인간적인 일들을 미련 없이 끊고 버려야 한다는 단호함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길은 곧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이다.

 

“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