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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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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일(복음: 루카 10,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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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7-14 08:58 조회1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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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와 마리아 자매


“예수의 일행이 여행하다가 어떤 마을에 들렀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 들였다”(루카 10,38).

 

오늘은 연중 제16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여행하시다가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들리셨는데, 그때 두 자매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정성스럽게 맞아들였다.

루카 복음 사가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경우를 삶의 서로 다른 형태로 대비시키려 하지 않았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마르타를 통하여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려 하셨고,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루카 복음 사가는 오늘 복음의 이야기를 이렇게 전개 시키고 있다.

“예수의 일행이 여행하다가 어떤 마을에 들렀는데 마르타라는 여자가 자기 집에 예수를 모셔들였다.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었다”(루카 10,38-39).

예수님께서 들리신 마을은 베다니아이다. 다른 복음서들을 보면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가 살고 있는 곳이 베다니아이며 이들 자매의 오빠가 라자로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반면에 루카 복음 사가는 오직 두 자매의 이야기만을 전개 시키고 있는데, 유다인이 아닌 이방인으로서 루카 복음 사가가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가족과 그들이 살고 있는 곳을 잘 모르고 그러했는지 아니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중요성만을 생각해서 가족 관계나 지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루카 복음서 중간 부분인 9장 51절부터 19장 27절까지는 연대적인 순서와 지리에 대해서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예수님 생애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과 자료들, 그리고 가르침에 대해서만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들 자매에 대한 이야기 역시 마르타와 마리아의 일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는 중요한 교훈만을 전하고 있다.

“시중드는 일에 경황이 없던 마르타는 예수께 와서 ‘주님, 제 동생이 저에게만 일을 떠맡기는데 이것을 보시고도 가만두십니까? 마리아더러 저를 좀 거들어 주라고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루카 10,40-42).

두 자매는 예수님께 서로 다른 모습으로 시중들었다. 마르타는 예수님과 제자들을 대접하기 위한 음식 준비에 경황이 없었고, 마리아는 음식 대접보다는 예수님께서 들려 주시는 말씀에 온 마음을 빼앗겼다. 두 자매가 한 행동이 모두 중요한 것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르타가 동생이 거들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을 들으시고 마리아가 말씀을 듣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 말리지 말라고 하셨다. 중요한 것은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잠시 두 자매에 대해서 알아보자.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는 예루살렘 근처의 베다니아(나해-주님 수난 성지주일 참조)에서 살고 있었고, 이들 자매의 오빠는 라자로였다. 라자로는 예수님의 친구였다고 전해진다. 예수님께서 이들 자매의 오빠와 얼마나 친분이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고, 과월절 엿새 전에 그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는 그의 누이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리기도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이 두 자매와 라자로를 사랑하셨다. 따라서 요한 복음 사가는 이들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고 계셨다”(요한 11,5)라고 표현하였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명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마다 자주 이들 자매의 집에서 유숙하신 것으로 전해진다.

마르타는 마리아의 언니이다. 마르타란 이름은 아람어로 ‘숙녀, 여주인’ 이라는 뜻이다. 루카 복음서와 요한 복음서는 이들 자매의 성격을 잘 설명하고 있는데 마르타는 비교적 성실하며 책임감을 지녔다. 예수님께서 집에 들리셨을 때 드실 음식을 장만하는 데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아 마르타는 그 집의 여주인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음식을 준비하느라 경황이 없는 자신을 동생 마리아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불평한 것이 아닌가 한다. 오빠가 죽었을 때도 예수님께서 베다니아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 마리아는 슬픔에 빠져 있었으나 마르타는 곧 나가서 예수님을 맞았다.

마르타의 동생 마리아는 루카 복음 7장 36절부터 50절에 나오는 죄 많은 여인과 유사한 내용 때문에 같은 사람으로 혼동하기도 하는데 같은 사람이 아니며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도 동일한 사람이 아니다. 마리아의 성격은 오늘 복음과 요한 복음 11장 1절에서부터 12장 8절까지에 잘 나타나 있다. 마리아는 언니 마르타와 함께 조용하고 좋은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예수님께 충실하고 대단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마리아는 세속적인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하느님 나라에 대한 진리에 온 마음을 쓰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사람이었다. 마리아는 오빠 라자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의 전능을 굳게 믿었고, 오빠가 다시 살아났을 때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향유를 부어드린 행위에 대해서 “이것은 내 장례 일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마라”(요한 12,7) 하시면서 그녀의 행위를 당신의 장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셨다. 그리고 마리아는 예수님께로부터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서는 언제나 마리아의 사건을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영원한 보장을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마르타가 한 일을 고맙게 받아들이셨지만 마르타가 이차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며 동생에게 불평하는 것을 보시고 걱정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정성을 받아들이시면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하느님 나라를 먼저 구해야 하는 것임을 가르쳐주셨다. 이 이야기는 하느님 나라를 먼저 구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교훈적인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신 것이다.

그러면 잠시 다른 복음서에 나타난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와 가족 관계를 더욱 자세하게 알아보자.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의 집에 대한 이야기는 요한 복음(12,1-8)과 마르코 복음(14,3-9)에 나온다.

“예수께서 베다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의 일이다. 마침 예수께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셨는데 어떤 여자가 매우 값진 순 나드르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마르 14,3).

이 사건에 대해서 요한 복음에서는 마르타가 시중을 들었고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렸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마르코 복음 사가가 말하는 집의 주인인 나병 환자 시몬은 누구인가? 여기서 나병 환자라고 하여 악성 피부염인 한센씨 병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시몬이 가족들과 격리되지 않은 것을 보면 일반적인 피부병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나병 환자 시몬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시몬의 집이 요한 복음에 나오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이라고 한다면 시몬은 마르타의 아버지이거나, 아니면 마르타의 남편일 수 있다고 전해진다.

오늘 마르타와 마리아가 보여준 행동은 모두가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르타는 중요한 ‘말씀’을 잊고 손님을 대접하는 분주함으로 끝날 수가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이 점을 깨닫게 해주셨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봉사와 희생과 활동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근본적인 회심을 동반하는 가운데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새겨듣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말씀 안에서 하느님을 뵈올 수 있어야 한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