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9주일(복음: 루카 12,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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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8-04 08:56 조회12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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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스러운 종과 불충한 종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준비하고 있어라. 마치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되어라”(루카 12,35-36).
오늘은 연중 제19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재물을 하늘에 쌓아라’와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충성스러운 종과 불충한 종’이라는 두 가지 내용에 대한 말씀이다. 마태오 복음서를 보면 이 두 내용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데 루카 복음 사가는 두 내용을 서로 연결시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하느님의 자녀들이 지켜야 하는 신앙 덕행으로 전하고 있다.
먼저 하늘에 재물을 쌓으라는 말씀을 보자.
“내 어린 양떼들아, 조금도 무서워하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하늘 나라를 너희에게 기꺼이 주시기로 하셨다. 너희는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해어지지 않는 돈지갑을 만들고 축나지 않는 재물 창고를 하늘에 마련하여라. 거기에는 도둑이 들거나 좀먹는 일이 없다.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루카 12,32-34).
마태오 복음에서 전하는 배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면서 여러 가지 율법의 계명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을 주셨다. 그리고 “재물을 하늘에 쌓아라”(마태 6,19-21)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나라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을 선포하시고 당신에게서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씀하셨다. 이는 당신을 통하여 하늘나라가 주어졌음을 암시하시고 당신께서 곧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메시아이심을 선포하시는 것이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양떼들에게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하시면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고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면서 충실하게 살도록 가르치셨다. 그것은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옷보다 소중하기 때문이었다.
재물에 대한 말씀은 당신의 사랑하는 양떼들에게 하시는 가르침이셨지만 특별히 예수님 시대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대사제들, 그리고 원로들에게 선포하시는 경고이기도 했다. 당시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대사제들의 부에 대한 축적은 대단히 위험한 지경이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기득권에 결탁하여 서민들을 착취하였고, 대사제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매점 매석하여 부를 축적하였다. 정치적,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서민들은 그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대사제들의 부를 책망하시면서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가르치셨다. 사실 하느님의 아드님이 오심으로써 세상의 재물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세상의 재물은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루카 복음 사가는 예수님의 이 가르침을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특히 이방인 교회에게 재물에 대한 새로운 가르침과 교훈으로 주고자 하였다. 이는 오늘날 물질의 풍요로움 속에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한 가르침이 되고 있다.
그리고 복음은 예수님의 ‘충성스러운 종과 불충한 종’의 비유를 통하여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종말론적인 말씀을 전하고 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준비하고 있어라. 마치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되어라. 주인이 돌아왔을 때 깨어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은 행복하다. 그 주인은 띠를 띠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을 들어줄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녘에 오든 준비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은 얼마나 행복하겠느냐? 생각해 보아라. 도둑이 언제 올지 집주인이 알고 있었다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을 것이다. 사람의 아들도 너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루카 12,35-40).
교회는 초기 때부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주님의 재림이 곧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주님의 재림은 지연되었고 깨어 기다리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면서 오늘날까지 이르렀지만 한편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기다림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먼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과월절 음식을 들면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메시아를 기다렸듯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성체성사를 통하여 구원의 희망을 간직하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언젠가 꼭 오실 것이다. 그러나 언제 오실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수님께서는 한밤중에 찾아드는 도둑처럼 우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오셔서 모든 이를 놀라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항상 깨어 있어라” 하고 말씀하시면서 마치 혼인 잔치에서 주인이 돌아오면 곧 문을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훗날 주님께서는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당신을 기다려온 성실한 사람들을 천상 식탁에 앉혀 주시고 시중들어 주실 것이라고 하셨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아브라함의 성실한 믿음에 대해서 “아브라함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그를 불러 장차 그의 몫으로 물려주실 땅을 향하여 떠나라고 하실 때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사실 그는 자기가 가는 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떠났던 것입니다”(히브 11,8)라고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그의 발걸음을 헛되게 하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작정 길을 떠났다. 결국 아브라함은 절망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충실함으로써 하느님의 축복을 받았다. 그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시원한 물과 편히 머물러 쉴 수 있는 집을 발견했다. 어떠한 처지에서도 하느님께 충실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오늘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 삶의 표양이 된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이렇게 묻는다.
“주님, 지금 이 비유는 저희에게만 말씀하신 것입니까? 저 사람들도 모두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까?”(루카 12,41)
구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어느 특정인에게만 한계 지으려는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다.
“어떤 주인이 한 관리인에게 다른 종들을 다스리며 제때에 양식을 공급할 책임을 맡기고 떠났다면 어떻게 하는 사람이 과연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관리인이겠느냐? 주인 돌아올 때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이 아니겠느냐? 그 종은 행복하다. 틀림없이 주인은 그에게 모든 재산을 맡길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종이 속으로 주인이 더디 오려니 하고 제가 맡은 남녀 종들을 때려 가며 먹고 마시고 술에 취하여 세월을 보낸다면 생각지도 않은 날 짐작도 못한 시간에 주인이 돌아와서 그 종을 동강내고 불충한 자들이 벌받는 곳으로 처넣을 것이다. 자기 주인의 뜻을 알고도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거나 주인의 뜻대로 하지 않은 종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의 뜻을 몰랐다면 매맞을 만한 짓을 하였어도 덜 맞을 것이다.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은 것을 돌려주어야 하며 많이 맡은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내어 놓아야 한다”(루카 12,42-48).
그리스도인들은 경우에 따라서 종일 수도 있고 관리인일 수도 있다. 우리 각자는 깨어 기다리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다하여야 한다. 이 가르침은 그리스도인들의 어깨가 무거워지며 특히 사목자, 수도자들에게 있어서는 많은 책임을 느끼게 한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놓고 준비하고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