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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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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일(복음: 루카 14,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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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9-01 15:45 조회63회 댓글0건

본문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

 

오늘은 연중 제23주일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직에 대해서 가르치신다. 여기에서 제자직이란 성직자나 수도자 같은 특정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오늘 말씀하시는 이 주제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어느 율법 교사가 “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루카 9,57) 하고 말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인간사에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되며, 인간적인 인연을 끊고 하느님의 뜻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신 적이 있다. 오늘 복음에서는 제자직에 대해서 다시 비유를 통하여 더욱 자세하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동행하던 군중을 향하여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에게 올 때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그리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5-27).

여기에서 미움은 상징적인 것으로 여겨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되는 인간적인 끈, 즉 부모가 바라는 욕망이나 탐욕, 지나친 바람을 미워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자직은 그리스도를 위한 온 마음의 헌신이며 인간적인 삶의 완전한 포기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지 않는 사람은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다. 십자가는 고통스러운 희생이며 완전한 포기이고, 죽음을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위해 세상을 다 포기하시고 죽음을 택하셨던 것처럼 자신을 근본적으로 포기할 것을 엄격하게 요구하셨다. 따라서 제자직은 단절과 결단이 필요하다. 단절은 극단적으로 사람을 멀리하고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으로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든든히 다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두 가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먼저 망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너희 가운데 누가 망대를 지으려 한다면 그는 먼저 앉아서 그것을 완성하는데 드는 비용을 따져 과연 그만한 돈이 자기에게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기초를 놓고도 힘이 모자라 완성하지 못한다면 보는 사람마다 ‘저 사람은 집 짓기를 시작해 놓고 끝내지를 못하는구나!’ 하고 비웃을 것이다”(루카 14,28-30).

이스라엘의 망대는 벽돌이나 돌로 지어졌는데 도시, 목장, 포도원, 농장 등에 세워졌으며 그 크기는 다양하였다. 들에 세워진 망대는 다 익은 곡식들을 추수 전에 도둑으로부터 지켰으며, 임시 거처도 준비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밤낮 들을 지켜야 할 때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망대는 군사적인 공격에 대항하는 피난처 혹은 방어물의 역할을 했다고 하는데 어떤 망대는 성, 즉 요새의 역할을 할 만큼 거대해서 위험시에는 한 마을 주민들이 그 안으로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성서는 망대를 때로는 하느님의 능력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또는 여성의 아름다움으로 상징하기도 하였다. 아마도 망대는 대단히 웅장하고 아름다웠던 것 같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망대에 대한 비유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지니신 그리스도의 추종에 있어서 잘 생각하고 판단해서 결단하라고 하셨다.

또 하나는 전쟁에 대한 비유이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나갈 때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적을 만 명으로 당해 낼 수 있을지 먼저 앉아서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만일 당해 낼 수 없다면 적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평을 청할 것이다”(루카 14,31-32).

전쟁을 승리로 이끌 가능성들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는 강력한 적을 대항하여 무모하게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는 비유이다. 즉, 적을 이길 수 있는 승산이 없으면 화평을 선택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이다.

이들 비유는 인간적인 신중성과 숙고를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앞서서 생각해 보는 선견의 원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직에 적용되어야 한다.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희생할 각오를 가지지 않는 자들은 제자직을 받아들일 수 없다. 생각 없이 결정하고 제자의 사명을 상실하는 자들은 제자로서의 맛을 잃고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짠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 오늘 주일 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복음서는 바로 이어 ‘맛을 잃은 소금’에 대한 말씀을 전하는데 “소금은 좋은 물건이다. 그러나 만일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겠느냐? 땅에도 소용없고 거름으로도 쓸 수 없어 내버릴 수밖에 없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루카 14,34-35).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제자직 역시 그 사명을 잃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끝으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가운데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루카 14,33).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당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하시며,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려면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완전히 귀속되어야 함을 가르치셨다. 그리스도인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셨던 것처럼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라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생명을 지니신 그리스도이시다. 만일 누가 세속을 사랑한다면 그는 세속의 사람으로 세속을 추구하는 사람이 될 것이나 그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하느님의 아드님이 될 것이다.

지금 결단이 필요하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메시아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하느님 나라는 시작되었고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다. 그리스도를 택할 것인지 세상을 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때이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망대를 지으려는 사람과 전쟁에 임하려는 왕처럼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잘 생각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