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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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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1주일(복음: 루카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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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10-27 08:49 조회18회 댓글0건

본문

 

예수님과 세관장 자캐오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루카 19,9).

 

오늘은 연중 제31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세관장 자캐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도중에 예리고에 들리셨을 때 일어난 일로 ‘예리고의 소경’을 고치신 일 외에 루카 복음 사가는 세관장이었던 ‘자캐오’에 대한 이야기를 특별히 전하고 있다. 이 사건 역시 잃었던 아들의 비유와 같이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자비하심을 특이하게 보여주고 계신다.

“예수께서 예리고에 이르러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다. 거기에 자캐오라는 돈 많은 세관장이 있었는데 예수가 어떤 분인지 보려고 애썼으나 키가 작아서 군중에 가리워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지나가시는 길을 앞질러 달려가서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그곳을 지나가시다가 그를 처다보시며 ‘자캐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자캐오는 이 말씀을 듣고 얼른 나무에서 내려와 기쁜 마음으로 예수를 자기 집에 모셨다”(루카 19,1-6).

‘자캐오’는 히브리어 자카이에서 유래한 말로 ‘순진하거나 의로운 사람’을 뜻한다. 작은 키로 유명한 자캐오는 예리고의 부유한 유다인 세리로서 매우 특별한 환경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구원을 얻었다. 복음서 중 루카 복음만이 유일하게 자캐오의 흥미 있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세관장 자캐오에 대한 이야기가 세리 출신인 마태오 복음서에 나와 있지 않은 것이 좀 이상한 일이지만 자캐오의 이야기는 죄인들과 이방인들의 복음 전파를 위해 특별한 관심을 가진 루카 복음 사가의 의도를 아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루카 복음 사가는 자캐오가 아르키텔로네스(Architelones, 세관장)이면서 부자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자캐오는 일종의 지방 세금 감독관으로서 로마 정부나 이스라엘의 지방 정부로부터 예리고 지역의 세금 징수권을 사들였고, 그 밑에 많은 세리들을 고용하여 세금을 징수한 사람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사람이었다. 자캐오는 많은 재산을 모았으며 따라서 그는 예리고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과월절을 지내시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여정에 예리고에 들리셨다. 그때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들과 병자들, 그리고 호기심으로 모여든 예리고 시민들과 함께 도시 전체가 대단히 혼란스러웠다. 그날 자캐오도 예수님을 보려고 했으나 키가 너무 작아서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길옆에 있던 돌무화과나무에 기어 올라갔다. 예리고의 세관장이며 부자였던 그가 신분에 맞지 않게 나무 위로 올라갔다는 것을 보면, 예수님을 보려는 그의 의지와 그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단순함을 지닌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마음이 온통 예수님께 향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지나가시다가 그를 보신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마음을 읽으시고 그를 부르시면서 그의 집에 머무르겠다고 하셨다. 이로써 주님의 은총이 돌무화과나무 위에 있는 자캐오에게 내렸고, 자캐오의 집은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머무시는 거처가 되었다.

자캐오를 부르신 모습과 유사한 내용이 요한 복음에도 나오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엘과 만나시는 광경이다. 여기에서 자캐오는 이방인과 다름없는 세관장이었고 나타나엘은 성실한 유다인이었음이 약간 다르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나타나엘이 예수께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하고 물었다. ‘필립보가 너를 찾아가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자 나타나엘은 ‘선생님, 선생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요한 1,48-49).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셨다는 말씀은 그들에게서 메시아를 찾고자 하는 갈망과 진리를 향한 목마름, 새로운 삶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갈증을 보셨다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즉시 응답했다. 하느님의 크신 은총이 아닐 수 없다. 이로써 악명 높은 세관장인 자캐오의 집에 하느님의 은총이 넘쳤다.

예수님께서 자캐오의 집에 머무르셨다는 것은 대단한 이야기거리였으며, 예리고와 이스라엘 전역에 굉장한 물의를 일으켰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구원의 사건이 죄인 중의 죄인인 자캐오의 집에서 이루지고 있으니 인간이 어떻게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를 보고 사람들은 이렇게 수군거린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 가 묵는구나!’ 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그러나 자캐오는 일어서서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그리고 제가 남을 속여 먹은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은 갚아 주겠습니다’ 하고 말씀 드렸다. 예수께서 자캐오를 보시며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루카 19,7-10).

자캐오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크게 충격을 받았으며,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자신의 믿음과 회개의 명백한 증거를 즉시 보여 드리기 시작했다. 자캐오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죄를 예수님 앞에서 고백하는데 “주님, 저는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렵니다” 하고 회개의 삶을 약속했다. 유다인의 풍습에 있어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자선의 액수로 5분의 1이라는 규정이 있는데 자캐오는 반을 내놓겠다고 했다. 그리고 자캐오는 “제가 남을 속여 먹는 것이 있다면 그 네 갑절은 갚아 주겠습니다” 하고 주님 앞에서 약속했는데, 여기에서 자캐오가 네 갑절을 갚아 주겠다는 약속은 율법에 규정하고 있는 “양 한 마리에 네 마리를 배상해야 한다”(출애 22,1)는 법령을 지키겠다는 말이다. 이는 자신과 고용인들이 부정직한 방법으로 살았음을 인정하면서 앞으로 율법 안에서 정직하게 살겠다는 약속이다. 자캐오는 이전에 살았던 생활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약속하면서 예수님 앞에서 율법에 따라 살 것을 다짐했다. 이것은 내적인 회개의 표시이며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용서와 사랑과 관심은 이렇게 사람을 변화시킨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죄를 용서해주심으로써 그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셨다. 그리고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라고 말씀하시어 자캐오뿐만이 아니라 그의 집안 모든 사람들에게도 구원이 주어졌음을 알리셨고,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라고 선언하심으로써 소외되었던 자캐오를 동족인 유다인 사회와 하느님 자녀들 대열에 불러들이시어 일치시키셨다. 이제 자캐오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 자녀들이 사는 공동체 안에서 새로운 삶으로 떳떳하게 살게 되었다. 근거 있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클레멘스 교훈집은 자캐오가 훗날 베드로의 동반자가 되어 가이사리아 지방 교회의 감독이 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루카 복음 사가는 자캐오의 이야기를 통해서 주님의 구원이 죄인들과 이방인들에게도 주어지고 있음을 암시하면서 죄인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실제로 주어졌음을 전하고 있다. 이로써 주님의 구원은 이스라엘과 같은 특정 지역이나 특정인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주님을 믿고 회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짐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온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어 그것이 당신이 꼭 하셔야 할 사명이며 하느님의 뜻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자캐오를 통하여 하느님 자녀들의 공동체 안에서 소외된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 주시는 하느님의 신성을 보여 주셨다. 참으로 감동적인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용서하시고 그와 한 식탁에 앉아 계신다. 따라서 예수님과 한 식탁에 앉아 있는 모든 이들은 한 형제로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생명을 사랑하시는 주님은, 모든 것이 그분 것이기에 모든 것을 용서하신다. 주님의 불멸의 정기는 만물 안에 들어 있다. 그러므로 주님은 죄짓는 자들을 조금씩 고쳐 주시고 그들이 죄지은 것을 일깨워 주시며 타이르시어 그들로 하여금 악에서 벗어나 주님을 믿게 하신다”(지혜 11,26-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