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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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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일(복음: 루카 2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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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11-10 10:32 조회147회 댓글0건

본문

 

그리스도인들이 받아야 할 박해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는 잡혀서 박해를 당하고 회당에 끌려 가 마침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며 나 때문에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루카 21,12).

 

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다. 또한 오늘은 ‘평신도의 날’이기도 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년-1965년)는 평신도들의 사도직 참여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우리 한국 교회는 1970년부터 연중 마지막 전 주일을 ‘평신도의 날’로 정하고 평신도들에게 사도직의 사명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성전 파괴에 대한 예언’과 성전 파괴에 앞서 일어나게 될 ‘재난의 시작’에 대한 말씀을 전해주고 있다.

먼저 성전 파괴에 대한 말씀이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돌과 예물로 화려하게 꾸며진 성전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 너희가 성전을 바라보고 있지만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날이 올 것이다’”(루카 21,5-6).

예루살렘 성전(나해-사순 제3주일 참조)은 B.C. 957년 솔로몬 왕이 지은 이후 파란만장한 이스라엘 역사와 함께 운명을 같이하였다. 따라서 성전은 B.C. 586년 바빌론 느브갓네살에 의해 처음으로 악탈당하고 파괴되면서 세 차례에 걸쳐 재건되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이 감탄한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며진 성전은 헤로데가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46년 동안에 걸쳐 보수하고 재건한 성전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날이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에 제자들은 성전 파괴에 대한 말씀을 세상의 종말로 알아들었다. 왜냐하면 어마어마한 하느님의 성전이 파괴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제자들은 두려움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성전 파괴에 앞서 일어날 징조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재난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종말에 앞서 일어날 몇 가지 징조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그들이 ‘선생님,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얼어날 즈음해서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앞으로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서 ‘내가 바로 그리스도다!’ 혹은 ‘때가 왔다!’ 하고 떠들더라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고 그들을 따라 가지 마라. 또 전쟁과 반란의 소문을 듣더라도 두려워하지 마라. 그런 일이 반드시 먼저 일어나고 말 것이다. 그렇다고 끝 날이 곧 오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민족이 일어나 딴 민족을 치고 한 나라가 일어나 딴 나라를 칠 것이며 곳곳에 무서운 지진이 일어나고 또 기근과 전염병도 휩쓸 것이며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굉장한 징조들이 나타날 것이다’”(루카 21,7-11).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제자들이 받게 될 박해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신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는 잡혀서 박해를 당하고 회당에 끌려가 마침내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며 나 때문에 임금들과 총독들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때야말로 너희가 나의 복음을 증언할 때이다. 이 말을 명심하여라. 그때 어떻게 항변할까 하고 미리 걱정하지 마라. 너희의 적수들이 아무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주겠다. 너희의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잡아 넘겨서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나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겠지만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루카 21,12-19).

그러면 박해란 무엇인가? 잠시 박해의 역사와 성서적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자. 하느님의 백성은 역사 전체를 통하여 박해를 받아 왔으며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도 박해를 피하지 못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도 같은 길을 걸었다. 따라서 박해는 그리스도인들이 받아야 할 하느님의 뜻이었다. 요한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박해에 대해 “그들이 나를 박해했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요한 15,20) 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구약 시대 하느님의 백성 전체는 이집트에서부터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이르기까지 전 역사에 걸쳐서 여러 가지 위기를 겪으면서 심한 박해를 받았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인물들, 지도자, 왕, 특히 예언자들은 야훼께 대한 사랑과 말씀 때문에 번번히 박해를 받았다. 모세는 자기 백성에게 버림을 받고 끊임없이 그들의 불평을 들었으며, 다윗, 엘리야, 아모스, 예레미야도 백성들로부터 박해를 받았다. 그리고 마카베오 시대의 순교자들도 원수로부터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박해를 받았다.

예언서는 ‘야훼의 종’은 박해를 통하여 하느님의 계획을 성취시킨다고 예언하였다. 다니엘서도 의인들에 대한 박해를 언급하면서 야훼께 충성한 의인들은 심판의 날과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준비한 자들이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지혜서는 박해하는 자들의 근본적 동기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의인은 우리를 방해하고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긴다고 우리를 책망하고 배운 대로 하지 않는다고 나무라니 그를 함정에 빠트리자. 의인은 자기가 하느님을 안다고 큰소리치고 주님의 아들로 자처한다.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늘 우리를 책망하기만 하니 그를 보기만 해도 마음의 짐이 되는구나”(지혜 2,12-14).

박해자들은 의인들의 삶 자체가 자기들 삶의 비리를 고발하는 동시에 자기들을 책망하기 때문에 박해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하느님을 증언하는 많은 의인들은 이 때문에 박해를 받았다. 심지어는 백성들을 위해서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도 그들에 대한 책망 때문에 박해를 받으셨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스승을 따라서 박해를 받았다. 그들은 스승이 마신 잔을 마셔야 했고, 스승이 받은 고난의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박해가 곧 은총이며 기쁨의 원천이고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박해는 심판의 서곡이며 종말론적 의미를 갖는다. 즉 박해는 재난과 관련을 맺고 있어서 세상 종말의 시작이며, 새로운 시대의 탄생을 의미한다. 따라서 박해를 받으면서 시련 속에 충실한 자들은 그 순간부터 승리자이다. 구약성서는 이미 이러한 태도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구약의 의인들은 박해를 받을 때 희망 속에서 인내심과 대단한 충실성을 드러냈으며 예레미야는 박해받는 의인의 전형이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만군의 야훼여, 사람의 뱃속과 심장을 달아 보시는 공정한 재판관이시여! 하느님께 호소합니다. 이 백성에게 원수를 갚아주십시오. 그것을 이 눈으로 보아야겠습니다”(예레 11,20).

예레미야는 어떠한 일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야훼께서 자기를 보호하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복수해 주시기를 호소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반드시 구원해 주신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도 박해 중에 당신과 함께 계신 아버지를 신뢰하고 계셨기 때문에 오히려 박해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그리고 당신 제자들에게 이렇듯 최고의 표양을 주시면서 어떤 박해라도 참고 견디어 내라는 말씀을 하셨다. 즉 박해에 대해서 친히 모범을 보여 주셨고 제자들에게도 권하셨다. 따라서 제자들도 스승처럼 박해를 용감하게 참아 내면서 박해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운명 앞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이며, 제자들 역시 박해자들로부터 승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해는 시련이요 유혹이며,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기 때문에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한다. 영원한 생명은 이와 같이 박해를 참아 견딜 때 얻어지는 열매이다.

박해는 시대의 현실 속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끊임없이 주어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온전한 믿음으로 이 박해를 이겨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의 온갖 것이 무너져 내리더라도 그리스도인은 역사의 박해로부터 달아나지 말아야 한다.

 

“참고 견디면 생명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