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복음: 마태 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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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1-05 09:05 조회6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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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받으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오셨다. 그러나 요한은‘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제게 오십니까’ 하며 굳이 사양하였다”(마태 3,13-14).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이다.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일은 또한 동방박사의 방문과 더불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세상에 드러내신 ‘공현 사건’이다. 이 공현은 예수님의 유년기에 하느님의 신성을 세상에 드러내신 일이며, 또한 예수님께서 공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리고 교회는 주님 세례 축일로 주님의 탄생을 경축하는 성대한 성탄 시기를 끝마친다.
공관복음인 마태오, 마르코, 루가복음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세례 사건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가해’인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사가가 전하는 이야기이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사건을 전하면서 주님께서 왜 세례를 받으셨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복음의 배경을 보면 세례자 요한이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라고 선포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오셨다. 복음서는 이렇게 전한다.
“그 즈음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오셨다.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제게 오십니까’하며 굳이 사양하였다”(마태 3,13-14).
세례자 요한이 왜 세례 주기를 꺼려하였는지는 설명이 없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후에 공생활을 하신 것으로 보면 요한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자기보다 큰 인물, 즉 선생으로 생각하였던 것 같다. 예수님의 명성에 대해서 이미 상당히 많은 부분을 듣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면 잠시 세례의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스라엘 역사를 보면 세례식은 종교적이 아닌 일반적인 의식으로도 널리 사용되어 있었다. 따라서 세례식은 집단이나 선생, 현자들도 자주 거행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 특히 유다인들에게는 그 의미가 잘 알려져 있었다. 세례의 어원을 보면 ‘잠그다, 씻다’라는 그리스어 동사 ‘Baptein’에서 파생된 말로 ‘물에 잠그다, 씻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물이 정화 혹은 생명을 상징하면서 이미 고대에 종교적으로 세례식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요한이 세례를 베풀 당시에도 일부 세례식이 있었다. 예를 들어 유다교 랍비들은 이방인 출신이 유다교로 개종하려고 할 때 세례를 베풀고 유다교인으로 받아들였고, 또한 쿰란의 에세네파들은 죄를 뉘우치고 깨끗한 마음을 간직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자주 물로 씻었다고 한다.
세례의 뜻을 지닌 물로 씻는 의미는 구약성서에도 자주 등장한다. 노아의 홍수는 타락한 세상을 깨끗이 하면서 새로 태어나는 세상을 의미하였으며,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사건도 이집트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린 사건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구약의 법률에 부정한 짓을 범했을 경우 종교의식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물로 씻는 정결례를 치르도록 규정하고 있다(민수 19,2-10). 그리고 이스라엘이 바빌론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돌아와서는 물로 씻는 의식의 횟수를 늘렸는데, 그들이 외적으로 씻는 이 의식은 곧 마음을 정화하는 상징으로 여겼다. 그리고 이에 뉘우치는 마음이 수반될 때 실제로 마음이 깨끗해질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들은 물로 씻는 것으로써 참다운 이스라엘 백성의 일원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에 앞서 주님의 길을 닦으러온 요한도 요르단 강에서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다.
따라서 요한이 베푼 세례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 대열에 들게 하는 일종의 가입식이었으며, 아브라함의 진실한 후손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마태 3,9). 그러므로 요한의 세례를 받은 이들은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자들이 되는 것이며, 하느님의 분노를 면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요한은 세례를 베풀기 전에 먼저 행실이 따르는 참다운 회개를 요구하였다.
당시에 요한의 세례는 죄인들이나 개종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다 민족 전체에 주어졌었다. 이에 유다 각 지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으려고 모여들었고,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도 요한의 세례를 받으려고 찾아왔다. 그럴 즈음에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을 보고 크게 당황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거절하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마태 3,15).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는 일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세례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 가문의 후손인 메시아이심을 드러내고자 하신 것이었다. 그리고 요한의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요한이 주님에 앞서 온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임을 세상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하시려 했던 것이다. 당시에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께 베푼 세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지만 점점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자시는 대로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일어난 일을 이렇게 전한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 그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6-17).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자 성령이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고 전한다. 이는 거기에 있던 사람들과 세례자 요한이 목격했던 일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은 하느님의 영이시다. 하느님의 영이 내려오심은 그분이 곧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이심을 뜻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는 예수님께서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 들려온 하느님의 음성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이심을 세상에 선포하시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이제 그분이 하시는 일들은 모두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일들이 될 것이다.
오늘 제1독서를 보면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해서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 야훼가 너를 부른다. 정의를 세우라고 너를 부른다. 내가 너의 손을 잡아 지켜주고 너를 세워 인류와 계약을 맺으니 너는 만국의 빛이 되어라”(이사 42,6).
그분으로 하여금 정의가 세워지고, 인류가 하느님과 영원히 깨어지지 않을 계약이 맺어질 것이며, 그분은 만국의 빛이심을 말하고 있다.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을 보면 지금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이사야 예언자는 그분께서 이루실 일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하였다.
“소경들의 눈을 열어주고 감옥에 묶여 있는 이들을 풀어주고 캄캄한 영창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놓아주어라”(이사 42,7).
이는 하늘나라의 실현이다. 오직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가 오시어 이루실 해방과 자유이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요, 하느님 왕국의 건설이다. 이 모든 예언이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성취되었고, 공적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따라서 오늘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의미는 매우 크다.
주님께서 받으신 세례는 곧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성령의 세례를 보여주신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들의 세례 역시 하느님의 아들임을 세상에 드러내는 공현이며,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를 닮은 메시아로서의 공생활의 시작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로 받은 세례성사를 소중하게 여기고 그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