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주일(복음: 요한 1,2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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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1-12 09:06 조회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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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자 요한의 증언
“성령이 내려와서 어떤 사람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거든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인 줄 알라”(요한 1,33).
오늘은 연중 제2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지난주 복음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신 말씀이다. 다른 점은 지난주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이심을 세상에 드러내신 공현이었고, 오늘은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는 증언이다. 즉 지난주는 마태오 복음사가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셨음을 전하는 것이고, 오늘은 요한 복음사가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된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전하는 것이다.
요한 복음사가는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하는 것을 중요하게 전하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말하는 증언은 크게 둘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나는 하느님의 어린양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그분이 베푸실 성령의 세례에 대한 것이다. 먼저 하느님의 어린양에 대한 세례자 요한의 증언이다.
“다음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한테 오시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저기 오신다. 내가 전에 내 뒤에 오시는 분이 한 분 계신데 그분은 사실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계셨기 때문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분을 두고 한 말이었다. 나도 이분이 누구신지 몰랐다. 그러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푼 것은 이분을 이스라엘에게 알리려는 것이었다’”(요한 1,29-31).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의 의미는 무엇인가? 요한 복음사가 외에도 공관복음에서 복음사가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자주 본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구약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는데, 유월절(과월절)의 ‘어린양’에 근거를 두면서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희생당하는 ‘야훼의 종’에 그 의미를 두고 있다. 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원수로부터 박해를 받으면서 희생당하는 어린양에 대한 말을 하였다.
“죽을 자리에 끌려가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양처럼, 나는 사람들이 나를 해치려고 하는 줄을 몰랐었다”(예레 11,19).
예레미야는 자신을 희생당하는 어린양으로 표현하였다. 그런데 그 후 사람들에게 해침을 당하는 이러한 표상은 야훼의 종에게 적용되었다. 이사야 예언자는 자기 백성의 죄 때문에 죽어가는 야훼의 종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 번 열지 않고 참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았다”(이사 53,7).
이사야는 야훼의 종의 겸손과 체념을 강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을 남김없이 그려놓았다. 신약에 와서 복음사가들 역시 그리스도께서 대사제 앞에서 침묵하시고 빌라도에게 아무런 대답도 안 하신 모습을 보고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으로 표현하였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같은 야훼의 종의 모습은 먼 옛날 이스라엘의 유월절 어린양으로 소급된다.
그러면 어린양에 대한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해내실 때 열 번째 재앙이 있던 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흠 없는 일년 된 수컷인 어린양’을 잡도록 명하셨다. 그리고 그날 밤에 그 피를 그들의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를 먹도록 하셨다. 천사들이 그날 밤 이집트인들의 맏배를 죽일 때 어린양의 피를 바른 문설주의 표시를 보고 그냥 지나쳤다. 그들은 죽음을 면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혹독한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홍해 바다를 건너가게 되었다.
이후 이스라엘 전승에 희생된 어린양의 피는 죽음을 면한 구원을 상징하게 되었다. 어린양의 희생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음에서 건져낸 해방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매년 유월절이 돌아오면 어린양의 희생을 보면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생각하였다. 오늘날 희생당한 하느님의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성찬 전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을 부르면서 어린양이신 주님께 자비를 베풀어주시도록 기도한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희생당한 구약의 ‘어린양’을 상기한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에게서 세상의 죄를 없애시기 위하여 받으셔야 할 죽음을 미리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어린양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자기보다 뒤에 오시지만 사실은 자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계신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자기가 예수님께 세례를 베푸는 이유에 대해서 말하는데 예수님을 ‘이스라엘에게 알린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 말은 이미 구약의 예언에 들어 있는 말이다. 장차 세상에 오실 메시아는 그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기 전에 반드시 먼저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알려져야 한다는 예언이었다. 이후 이 말은 유다의 전통으로 전해져오고 있었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은 자기가 베푼 세례를 구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한 기름을 부어 알리는 세례였음을 말하면서 스스로를 그분을 위한 선구자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 베푸는 세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이 하늘에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와 이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분이 누구신지 몰랐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베풀라고 나를 보내신 분이 ‘성령이 내려와서 어떤 사람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거든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인 줄 알라’고 말씀해주셨다. 과연 나는 그 광경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하는 것이다’”(요한 1,32-34).
세례자 요한은 자기가 물로 세례를 베풀 때에 성령이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은 다시 한 번 “나는 이분이 누구신지 몰랐다”라고 하면서 물로 세례를 베풀라고 자신을 보내신 분이 “성령이 내려와서 어떤 사람 위에 머무르는 것을 보거든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인 줄 알라”고 하신 하느님 말씀을 회상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 때 성령께서 내려오시는 광경을 보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심을 알았다고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과연 나는 그 광경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이렇듯 세례자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오신 예수님께서 틀림없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한다. 따라서 요한복음사가는 세례자 요한이 말하는 증언을 소중하게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이 말한 이 증언은 또한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례자 요한이 증언한 이 신앙고백을 온 세상에 나아가 전해야 한다.
“나는 지금 이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증언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