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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주일(복음: 마태 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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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1-19 09:03 조회117회 댓글0건

본문

 

갈릴래아 전도 시작과 어부 네 사람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하시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마태 4,19-20).

 

 

 

오늘은 연중 제3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갈릴래아 전도 시작과 첫 번째로 부르신 어부 네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전도 활동을 시작하시는 모습이기도 하다.

먼저 오늘 복음의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자. 메시아로서의 활동을 하시기에 앞서 요르단 강으로 세례자 요한을 찾아가시어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 들어가시어 40일 동안 기도하셨다. 그리고 기도를 마치시고 광야에서 나오셨는데 그때 세례자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다시 갈릴래아로 가셨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요한이 잡혔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는 다시 갈릴래아로 가셨다. 그러나 나자렛에 머물지 않으시고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가파르나움으로 가서 사셨다. 이리하여 예언자 이사야를 시켜, ‘즈불룬과 납달리, 호수로 가는 길, 요르단 강 건너편, 이방인의 갈릴래아.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겠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리라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이때부터 예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며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하고 말씀하셨다”(마태 4,12-17).

성서는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을 전함으로써 이제 요한의 시대가 끝나고 메시아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로 다시 가심으로써 메시아의 시대가 그곳에서 열릴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가신 갈릴래아는 어떤 곳인가? 갈릴래아는 북 팔레스티나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넓은 지역이다. 초기에는 그 경계가 애매하고 다양했으나 로마인들의 통치를 받으면서 고정된 행정 구역이 되었다. 이 지역은 솔로몬 왕국이 분열된 후(B.C. 936) 후대에 갈릴래아로 알려졌으며 북방 이스라엘 왕국의 가장 북쪽에 위치했다. B.C. 734년에는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 아시리아 제국에 흡수되었고, 그 후에 6세기 동안 이 지역은 차례로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이집트 그리고 시리아로 넘겨졌다. 페르시아 시대에 순수한 유다인은 이방인 사이에 끼어 소수에 불과했으며, 마카베오 시대 말기에는 유다인들이 안전을 위해 남쪽 유다로 떠나자 유다인의 수는 더욱 줄어들었다.

이사야 예언자는 과거 즈블룬과 납달리 지역을 가리켜 이방인의 갈릴래아라고 불렀다. 이처럼 갈릴래아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방인들처럼 살았다. 이들은 유다(히스기야 왕 때)가 성전에서 예배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이도록 소환했을 때 아주 냉담했다. 사실상 이 지역은 유다인들에게 멸시받은 땅, 축복이란 없는 곳이었다. 역사적으로 갈릴래아 지역이 가장 의미심장했던 기간은 예수님께서 나자렛에서 생애를 보내신 30년과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셨던 3년간의 활동적 전도 기간이었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께서 갈릴래아로 다시 가시어 사신 즈블룬과 납달리 지방 호숫가에 있는 가파르나움은 어떤 곳인가? 이 지역은 이미 700년 전 이사야에 의해 예언된 장소였다. 오늘 제1독서에는 이렇게 나온다.

전에는 그가 즈불룬 땅과 납달리 땅을 천대하셨으나 장차 바다로 가는 길, 요르단 강 건너편 외국인들의 지역을 귀하게 여기실 날이 오리라.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입니다.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올 것입니다”(이사 8,23-9,1).

먼저 갈릴래아 지역에 있는 즈불룬과 납달리 땅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자. 즈불룬은 야곱의 열 번째 아들이며 레아의 여섯 번째 아들이다. 당시에 즈불룬 지파는 북쪽 지역을 받았는데, 지중해 바닷가를 따라 북쪽 시돈과 두로에까지 이르렀고, 동쪽으로는 납달리 지방과 경계를 이루어 나자렛 석회암 절벽을 따라 다볼산의 비탈에까지 이르러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납달리는 라헬의 여종 빌하에게서 두 번째로 난 야곱의 여섯 번째 아들이다. 당시에 납달리 지파는 요르단 강 상류 계곡에 들어가 갈릴래아 호수를 경계로 북쪽으로 이동해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우상을 숭배한 토속 가나안 족속들과 관계를 가져 혼혈족으로 평가받기도 하였는데,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이민족들의 침략과 더불어 유다인들이 거의 살지 않는 버려진 땅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들 지역인 나자렛에서 유년기를 지내시고 다시 가파르나움으로 가시어 메시아의 시대를 열고자 하셨다.

그러면 가파르나움은 어떤 곳인지 살펴보자. 가파르나움은 나훔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갈릴래아 호수 북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나훔이라고 불리우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목이라 병영과 관청이 있었고 다마스커스에서 비단과 향료를 가져오고, 겐네사렛 지방에서 과실을 가져오는 상인들로 붐비는 곳이었다. 이곳은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살았듯이 지리적으로 이방인의 세계로 나아가는 교통의 요지였다. 1894년 프란치스코회에서 유적을 발굴하여 옛 회당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또한 예수님께서 사신 곳으로 추측되는 베드로의 집이 발굴되어 성당으로 지어져 보존되고 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이곳 갈릴래아 지역에서 전도를 시작하신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첫 말씀은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회개는 하느님께 마음의 문을 열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회개이다. 즉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을 받아들이는 회개이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도래에 대한 선포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가 다가왔음을 선포하신다. 따라서 예수님의 하늘나라의 도래에 대한 선포로 지금까지는 하늘나라가 감추어져 있었지만 그분에 의해서 그 신비가 서서히 알려지게 될 것이며, 또한 성장되어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첫 제자들을 부르신다.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걸어가시다가 베드로라는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가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하시자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예수께서는 거기서 조금 더 가시다가 이번에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보셨는데 그들은 자기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갔다”(마태 4,18-22).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4명의 제자들을 부르신다. 이 제자들은 훗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늘나라 건설의 주역들이요 일꾼들이 되는 것이며, 회개를 촉구하며 하늘나라를 선포할 제자들이다. 이렇듯 하느님의 왕국인 교회는 갈릴래아 바닷가에서 처음으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모습은 단순하면서도 독특하시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하시자 그들은 곧 예수님을 따라 나선다.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아는 그물을 버리고 따르고, 야고보와 요한은 배를 버리고 자기 아버지를 떠나 예수님을 따른다. 이 네 명의 제자들은 그물과 배를 버리고 자기 아버지를 떠난다. 아버지의 곁을 떠남은 먼 옛날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따라서 자기 아버지 집을 떠나는 것을 상기시킨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스승과 제자들의 관계는 제자들이 스승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과 가르침을 받아 스승과 견해를 함께한다. 그러나 성서 안에서 제자들은 그렇지가 않다. 예언자 엘리사는 엘리야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스승인 엘리야를 통하여 하느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들으려고 하였다. 그리고 이사야 예언자의 제자들도 이사야가 보여주는 하느님의 계시를 신뢰하며 하느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 이사야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이렇듯 성서에 나타난 스승들은 자기의 가르침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 스승은 찾아온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가르쳤다. 즉 하느님의 충실한 종으로서 자기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충실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보다 훨씬 발전되어 나아간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르셨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식이나 능력, 지위나 출신 성분이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당신이 보시고 선택하여 부르시는 부르심이었다. 단순하게 그들을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하셨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나를 따라 오너라하신 말씀에 결정을 해야 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자기 자신의 삶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했다.

오늘 네 사람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그물과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남은 곧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다.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완전히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대답이다. 그들은 이제부터 예수님과 함께 삶을 같이 해야 한다.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삶을 같이 한다는 것은 훗날 그분의 죽음까지도 함께한다는 것이다. 훗날 제자들이 주님을 증언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임은 이를 증명하고 있다. 오늘 복음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맺는다.

예수께서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서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다”(마태 4,23).

예수님께서 하시는 이 일에 제자들은 스승의 분신이 되어 항상 함께 동행한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데리고 다니시며 손수 당신께서 하시는 일을 보여주시면서 당신의 일을 그대로 맡아 할 제자로 만드신다. 그리고 훗날 제자들은 스승이 하신 이 모든 일들을 맡아 하게 된다. 하늘나라를 위한 사람 낚는 어부가 된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그분과 삶을 같이 하면서 세상에 나아가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해야 한다.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