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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일(복음: 마태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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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1-26 09:23 조회107회 댓글0건

본문

 

행복한 사람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오늘은 연중 제4주일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행복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행복은 삶의 최고 가치이며 인간이 영원히 누리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은 무엇인가? 행복에 대해서 국어 사전은 복된 운수, 또는 생활에서 부족함이 없이 만족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은 부족함을 불행이라 생각하면서 모자라는 것을 채우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그래서 돈을 벌어들이고, 출세를 하고, 권력을 가지는 데 온 힘을 다 기울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일시적이다. 때로는 만족과 기쁨은 주지만 인간이 바라는 영원한 행복은 주지 못한다. 끝은 항상 실망과 좌절,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게 한다. 인간은 영적이며 정신 안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서 만족을 주는 물질은 결코 참된 행복을 주지 못한다.

그러면 참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구약성서는 최고의 행복은 하느님 안에 있다라고 가르친다. ‘행복의 원천은 하느님이시다라고 말하고 있다. 성서는 인간이 누려야 할 행복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무엇이다라고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서가 강조하는 것은 야훼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간, 특히 당신 백성의 행복한 삶을 크게 염려하시고 걱정하고 계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부모가 자녀들을 사랑하듯이 인간을 사랑하시어 행복한 삶을 지켜주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바라고 계시는 인간의 행복은 어린 아이가 어머니의 품안에서 누리듯이 하느님의 품안에서 사는 삶이다.

창세기 창조 설화를 보면 인간이 최초로 행복한 삶을 살았던 모습이 나온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동쪽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마련하시고 당신께서 빚어 만드신 사람을 그곳에서 살게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보기 좋고 맛있는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들을 그 땅에서 돋아나게 하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 이렇게 이르셨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어라”(창세 2,16).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는 풍족한 삶을 주셨다. 무엇보다도 인간은 하느님께서 주신 땅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끼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이 낙원은 인간이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눈이 밝아져서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말에 하느님을 거역하고 만다. 그리고 하느님의 품안을 떠난다. 하느님의 품안을 떠난 것을 성서는 최고의 불행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불행의 결과는 온갖 고통과 고달픔, 갈등과 불화, 형제를 죽이는 살인까지 가져왔다. 인간은 한 번 잃어버린 행복을 찾으려 했지만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판관들과 왕들에게서 행복을 기대하였지만 왕들의 세속적인 욕심과 탐욕으로 하느님의 백성들은 행복을 누리지 못하였다. 오히려 왕들의 잘못된 통치로 이민족으로부터 침략을 당하여 더 큰 불행을 겪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행복은 영원히 주어지지 않는 것인가? 성서는 메시아가 오시면 인간의 행복이 실제로 주어진다고 말한다. 그분 안에서 행복의 참된 이상과 참된 성취가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숙제인 참된 행복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이는 행복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영원한 행복이며 하느님의 백성이 2천 년 동안 찾고자 한 행복이다. 곧 하늘나라의 행복이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당신 경험에서 나오는 가르침이 아니라 당신 마음 안에 있는 행복을 드러내 보여주신다. 당신 안에 하늘나라의 행복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론은 여덟 가지로 구분되어 있다.

첫째,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선포하신 하늘나라의 상속자들이 곧 가난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신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만이 하늘나라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지상의 것에 대해 정신적으로 초연할 것을 요구하신 것은 그들이 진정한 행복을 갈망하고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 행복은 하늘나라이다. 따라서 청빈의 정신으로 생활하는 자들은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며, 진정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들은 남을 억울하게 속일 줄도 모르고 거짓말을 할 줄도 모르며 간사한 혀로 사기 칠 줄도 모른다”(스바 3,13).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마음이 가난한 분이셨고, 또한 가난하게 사신 메시아이셨다.

둘째,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라고 하신다.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서 극도의 슬픔에 젖으셨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의한 큰 괴로움과 선택된 백성의 배신에 대한 아픔과 나자로의 죽음 그리고 죽음을 대면하셔서 뿐 아니라 죽는 순간까지 슬픔과 번민을 느끼셨고, ‘괴로워 죽을 지경이 되셨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겪는 아픔이 무엇인지를 너무나 잘 아셨다. 여기에서 슬픔의 깊은 심연을 체험하셨던 예수님께서는 비애 그 자체를 행복하다 하시는 것이 아니다. 구원의 기쁨과 결합된 슬픔을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다 갚아주시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겪는 상심은 회개할 마음을 일으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2고린 7,10).

셋째,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라고 하신다. 모세는 참된 온유의 본보기였다. 그 온유는 나약함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심에 의거하여 하느님께 드리는 겸손한 순종이었다. 이런 겸허한 온유야말로 하느님께서 구원하실 남은 자와 모든 민족에게 평화를 주는 의 특성이었다. 그래서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에게 배워라하셨다. 조용함과 차분함과 관대한 중용의 의미를 지닌 온유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 그리고 목자들의 특징이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녀야 할 성품이기도 하다. 이렇듯 온유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하늘나라의 주인으로서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들을 편히 쉬게 한다.

넷째,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라고 하신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법대로 살다가 고생하는 이 땅 모든 백성들아 바로 살도록 힘써라. 겸손한 마음을 갖도록 애써라”(스바 2,3).

옳은 일이란 하느님의 법, 즉 하느님의 말씀대로 사는 선한 삶을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선 그 자체이시다. 하느님의 선하심은 구약성서에 있어서 핵심적 계시의 하나였다. 선하신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당신을 배반하는 이스라엘을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구해내시어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살게 해주셨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백성을 위하여 당신 목숨까지 내놓으시는 선하심을 보여주셨다. 옳은 일은 주님의 제자들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사명이며, 또한 의무이다. 그들은 행복하다.

다섯째,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라고 하신다. 자비는 현대적 용법에 의하면 동정심 내지는 용서와 동일시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비참함에 대하여 당신의 연민의 정을 보여주셨다. 이를 시편은 그분의 자비는 영원하시고, 자비가 그분에게 있기 때문이다라고 노래하였다. 자비로운 마음은 항상 예수님께서도 지니고 계신 마음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은 가난한 자들이었고, 또한 죄인들과 친히 친구가 되어주셨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하셨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신성인 자비심을 마음 안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여섯째,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라고 하신다. 깨끗함은 신성한 것에 접근하기 위해 요구되는 정결을 뜻한다. 구약에 있어서 예식적 정결은 거룩한 것으로 간주되는 모든 것을 말하였으며, 예배에 관계 되는 모든 것은 더할 수 없이 깨끗해야 했다. 더욱이 깨끗하지 못한 몸으로 거룩한 것에 접근하지 못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정결을 내적인 깨끗함으로 승화시키신다. 참된 정결은 어디까지나 내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선포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소박한 신앙과 사랑으로 당신을 따르는 자들과 함께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신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 그래야만 하느님을 뵈올 수 있다.

일곱째,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라고 하신다. 인간은 평화를 진심으로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가 애타게 바라는 평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며, 또한 평화를 얻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법이 언제나 하느님의 의향과 부합되지 않는다. 평화는 정의의 결실이요 표지이며, 천상적 근원으로 영신적 선을 말하고, 이는 곧 구원이다. 따라서 정의의 결실인 평화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두터운 믿음과 기도로 얻을 수 있고 정의로운 행위로 얻을 수 있다.

구약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들에게서 평화가 언제까지나 보장되리라고 기대했으나 그 기대가 사라지면서 평화의 소망이 메시아이신 그리스도께로 실재화되었다. 그리스도만이 참 평화를 줄 수 있으며, 끝없는 평화를 보장하게 될 것이라 믿게 되었다. 참 평화의 주이신 예수님께서 오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기를 가르치신다. 왜냐하면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만이 정의의 열매를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야고보서는 평화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평화를 심어서 정의의 열매를 거두어 들입니다”(야고 3,18).

여덟째,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하신다. 박해를 받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성취되는 것을 말한다. 박해는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 안에 항상 있어 왔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뜻인 인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시어 수난의 길을 걸으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옳은 일을 위해서 박해를 받아들이라고 하신다. 또한 하느님의 뜻을 위해서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며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가르치신다. 주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순교자들이 그러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옳은 일을 위해서 박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하늘나라를 차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