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3주일(복음: 요한 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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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3-02 08:57 조회2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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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갈증을 풀어주시는 예수님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4,13-14a).
오늘은 사순절 제3주일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물’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물을 주시는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신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물’에 대한 가르침은 이미 구약성서에서도 나타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불러내시어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이심을 체험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끌어내시어 광야로 데리고 나오셨고, 그곳에서 40년 동안 긴 역사의 체험을 시키시면서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다지게 하셨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주시고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련을 주셨는데 그 시련이 광야에서의 갈증이었다. 오늘 제1독서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장 목이 말라 견딜 수 없어 모세에게 이렇게 불평을 터뜨렸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 내 왔느냐? 자식들과 가축들과 함께 목말라 죽게 할 작정이냐?”(출애 17,3)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풀 한 포기 살지 않는 사막에서 목말라 견딜 수 없도록 갈증을 느끼게 하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물을 주셨다. 이때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호렙의 바위 옆에서 네 앞에 나타나리라. 네가 그 바위를 치면, 물이 터져 나와 이 백성이 마시게 되리라”(출애 17,6).
하느님께서 주신 물은 죽음 직전에 이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생명의 물이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물을 마시면서 하느님께서 살려 주셨음에 감사드렸다. 하느님께서는 이 물을 통해서 당신께서 죽음과 생명을 쥐고 계심을 보여주셨고, 또한 메시아 시대에 충만하게 열매를 맺을 영원한 생명의 물을 미리 가르쳐주셨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의 물을 미리 체험하게 하셨다.
이처럼 먼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체험했던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물’을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당신께서 영원한 생명의 물을 지니신 메시아이심을 보여주시고, 이제 그 시대가 열렸음을 알려주신다.
요한복음사가는 ‘생명의 물’에 대한 가르침을 사마리아 여자와의 대화를 통하여 드라마적인 이야기로 전개 시키고 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지방의 시카르라는 동네에 이르셨다. 이 동네는 옛날에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인데 거기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먼 길에 지치신 예수께서는 그 우물가에 가 앉으셨다. 때는 이미 정오에 가까와 있었다. 마침 그때에 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러 나왔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물을 좀 달라고 청하셨다”(요한 4,5-7).
‘시카르’는 어떤 곳인가? ‘시카르’는 야곱의 우물이 있는 사마리아의 동네인데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세겜(창세 48,22)과 동일한 지역으로 간주된다. 세겜에 대해서는 창세기에 처음 나타나는데 “야곱은 바딴아람을 떠나 마침내 가나안 땅 세겜 마을에 무사히 이르러 그 앞에 천막을 쳤다. 야곱은 자기가 천막 친 땅을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은 백 냥을 주고 샀다. 그리고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제단을 ‘이스라엘의 하느님 엘’이라 불렀다”(창세 33,18-20)라고 나온다. 그러므로 시카르는 세겜과 야곱의 우물 바로 그 자리에 있거나 혹은 그 가까이 있음이 분명하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신 곳이 야곱의 우물로 나오는데 야곱의 우물은 물론 세겜과 동일한 곳으로 보이는 시카르라는 사마리아 동네에 있다. 그런데 야곱의 우물에 대해서 구약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고 오늘 복음서에 최초로 언급되고 있다. 아마도 잘 확립되어 있던 전승에 의존하여 복음서에 언급된 것으로 전해진다.
예수님께서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 계실 때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러 나왔다. 이 여자가 물을 길러 나온 시간은 정오였다. 이스라엘에서는 정오에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다. 하루 중에 가장 뜨거운 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시간에 물을 길러 나왔음은 그 여자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여 다니는 여자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사람들을 피해가며 살아가는, 삶에 지친 사마리아 여자에게 갈증을 풀어주는 생명의 물을 주시고자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를 보시고 먼저 물을 달라고 청하셨다. 복음은 이어서 이렇게 전한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시내에 들어가고 없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께 ‘당신은 유다인이고 저는 사마리아 여자인데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서로 상종하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또 너에게 물을 청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청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너에게 샘솟는 물을 주었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시자 그 여자는 ‘선생님, 우물이 이렇게 깊은데다 선생님께서는 두레박도 없으시면서 어디서 그 샘솟는 물을 떠다 주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이 우물물은 우리 조상 야곱이 마셨고 그 자손들과 가축까지도 마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러한 우물을 우리에게 주신 야곱보다 더 훌륭하시다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 우물물을 마시는 사람은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 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 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그 여자는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좀 주십시오. 그러면 다시는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러 여기까지 나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하고 청하였다”(요한 4,8-15).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자신의 신분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자 하였다. 당시에 유다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인이라 하여 멸시하고 있었다. 유다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원래가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의 후손들이었으나 그들의 기구한 역사 속에서 사마리아는 불행하게도 이방인의 나라가 되었고, 유다인들은 그들을 같은 민족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 여자는 유다인인 예수님께 “어떻게 저더러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였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의 영적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마실 물에 대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의 물을 주시는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신다. 그런데도 사마리아 여자는 영원히 살게 한다는 생명의 물에 대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주시겠다는 말씀에 마음이 쏠려 예수님께 물을 청한다. 잘하면 매일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뜨거운 정오에 물을 길러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예수님께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물을 청한다. 한편으로 사마리아 여자가 간절히 바라고 청하는 우물물은 우리 인간이 그리워하는 영적인 삶의 갈증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그의 신분에 대해서 묻기 시작하신다.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가서 남편을 불러 오라고 하셨다. 그 여자가 남편이 없다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남편이 없다는 말은 숨김 없는 말이다. 너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남자도 사실은 네 남편이 아니니 너는 바른 대로 말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과연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은 저 산에서 하느님께 예배드렸는데 선생님네들은 예배드릴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말을 믿어라. 사람들이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에 ‘이 산이다’ 또는 ‘예루살렘이다’ 하고 굳이 장소를 가리지 않아도 될 때가 올 것이다. 너희는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배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예배드리는 분을 잘 알고 있다. 구원은 유다인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하게 예배하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참되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올 터인데 바로 지금이 그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드려야 한다.’ 그 여자가 ‘저는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저희에게 모든 것을 다 알려주시겠지요’ 하자 예수께서는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4,16-26).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비로소 예언자이심을 믿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면서 심한 삶의 갈증을 느끼며 영원한 생명의 물을 갈구하기 시작한다. 사마리아 여자는 신앙의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묻는다. 사마리아 여자가 말하는 자기 조상들이 예배드리는 ‘저 산’이란 그리짐 산을 말한다. 당시에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렸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짐 산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그리짐 산이 예배 장소로 언급된 것은 신명기에 모세가 율법을 선포하는 방법을 지시하면서 “축복과 저주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하여라” 할 때였고(신명 11,29 이하),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장소에 들어가는 날 대규모의 경축 행사를 설명하면서(신명 27,12)였다. 대규모 경축 행사 때 모세가 백성들에게 명령하는 것을 보면 그리짐 산과 에발 산이 마주 보고 있었으며 산비탈에 있는 사람들이 각각 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때 그리짐 산에 서 있는 사람들은 복을 달라고 기도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있는 사람들은 저주를 빌기 위하여 나누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리짐 산을 중심으로 세켐 사람들과 분쟁하는 시초를 보면 요담이 형제들을 죽인 형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은 세켐 사람들을 향하여 그리짐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조롱하는 비유를 던졌다(판관 9,1 이하). 그리고 제사장 가문의 마나세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딸과 결혼한 후(느헤 13,28) 세켐과의 분쟁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 결과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대항하여 그리짐 산에 또 하나의 성전을 세우게 되었다(B.C. 432년경). 이것이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교회 분열의 시작이다.
그러면 잠시 그리짐 산에 관계되는 성서적 언급과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장하는 그리짐 산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그리짐 산이 있는 세켐이 구약성서에 처음 언급되기 시작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길을 지날 때 야훼께서 나타나신 곳이다. 아브라함이 모레의 상수리나무가 있는 세켐 성소에 이르렀을 때 야훼께서 나타나시어 “내가 이 땅을 네 자손들에게 주리라” 하셨는데 아브라함이 그 자리에 제단을 쌓고 야훼께 바쳤다(창세 12,6).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리짐 산에서 멀지 않은 사웨 골짜기에서 살렘 왕 멜기세덱을 만났다(창세 14,17-18a). 또한 사마리아 전승(유다인들의 전승은 아님)에 따르면 이사악을 희생할 준비를 한 곳이 바로 그리짐 산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은 야곱이 베델에서 꿈에 하느님을 뵈었는데 그 자리가 이 산꼭대기 길벳 라우제였다(창세 28,11 이하)고 주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사마리아인들은 해마다 그리짐 산 산마루의 서쪽 약간 후미진 곳에서 오순절의 풍습에 맞추어 ‘과월절 - 유월절’을 축하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예배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이제는 자기들만이 예배드리는 장소가 옳다고 주장하는 시대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어디에서든지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유다인들만 믿는 하느님이 아니라 온 인류가 하나가 되어 믿는 하느님이시고, 어디에서든지 예배드릴 수 있는 하느님이심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가 믿는 하느님은 유다인들을 통하여 보여주신 하느님이심을 확실하게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구원은 유다인에게서 온다”라고 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아들이신 메시아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다인에게서 오신다는 것을 분명히 하시고, 그분이 이미 오셨음을 가르쳐주신다. 그리고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드리는 새로운 공동체, 즉 성령에 의한 교회의 시작을 암시하신다.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결코 우상들처럼 인간의 욕망을 채워주고 물질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그러한 분이 아니시다. 따라서 사람들은 하느님께 영적으로 참되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 사마리아 여자는 신앙의 눈을 뜨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구원과 참된 예배에 대해서 알아듣고 있었다. 그 여자는 서서히 영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고 있었다. 사마리아 여자가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라고 하시면서 당신께서 곧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신다.
사마리아 여자는 애타게 기다리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서 밝은 빛을 보게 된다. 그리고 삶에 지친 갈증에서 생명수를 얻는다. 목마름에 지친 이스라엘이 사막에서 생명의 물을 얻었듯이 그 여자도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물을 얻는다. 그 여자는 그리스도와 만남의 기쁨을 혼자만 간직할 수가 없어서 동네로 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그 동네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 여자가 자기의 지난 일을 예수께서 다 알아 맞히셨다고 한 증언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찾아와 자기들과 함께 묵으시기를 간청하므로 거기에서 이틀 동안 묵으셨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우리는 당신의 말만 듣고 믿었지만 이제는 직접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이야말로 참으로 구세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소’ 하고 말하였다”(요한 4,39-42).
사람들을 피하여 다니던 그 여자는 즉시 사람들을 찾아간다. 영적으로 눈이 떠진 그는 이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떳떳이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그리고 그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그분을 메시아로 믿는다. 그들도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의 물을 얻는다.
한편 오늘 복음에서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도 사마리아 여자와 마찬가지로 심한 갈증을 느끼시고 계심을 볼 수 있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물을 주시고자 하시는 목마름을 예수님께서도 가지고 계심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먼저 물을 청하셨듯이 삶의 갈증을 느끼는 우리들에게 생명의 물을 청하도록 바라고 계신다. 그리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의 물을 주시고자 하신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마리아 여자처럼 영적으로 샘솟는 샘물에 대한 갈증으로 주님께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명의 물을 청해야 한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