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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일(복음: 요한 9,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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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3-09 09:18 조회11회 댓글0건

본문

 
빛을 주시는 예수님

“예수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 하고 말씀
하셨다”(요한 9,39).  

 

오늘은 사순절 제4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고쳐주시는 사건이다. 지난주에는 예수님께서 삶의 갈증을 풀어주시는 ‘생명의 물’을 주시는 메시아이심을 보여주셨고, 오늘은 ‘빛을 주시는 분’, 즉 신앙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 메시아이심을 보여주신다. 요한복음사가는 무려 두 페이지에 걸쳐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을 고쳐주시는 이야기를 전개 시키면서 예수님께서 ‘빛을 주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신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제자들이 예수께 ‘선생님, 저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그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죄 탓도 아니고 부모의 죄 탓도 아니다. 다만 저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해가 있는 동안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 이제 밤이 올 터인데 그때는 아무도 일을 할 수가 없다.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아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다(실로암은 ‘파견된 자’라는 뜻이다)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왔다. 그의 이웃사람들과 그가 전에 거지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을 보아온 사람들은 ‘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어떤 이들은 바로 그 사람이라고 하였고, 또 어떤 이들은 그 사람을 닮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아니라고도 하였다. 그때 눈을 뜨게 된 사람이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요한 9,1-9).

제자들은 예수님께 소경의 죄에 대해서 물었다. 제자들은 소경으로 태어난 것을 죄의 탓으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성서를 보면 태초의 죄는 하느님의 계명을 의식적이고 고의적으로 깨뜨려 하느님을 거역한 불순종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인간은 큰 불행을 겪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인간이 불행하게 되면 그것을 죄의 탓으로 생각하였고, 하느님께로부터 큰 벌을 받은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외적인 불구나 불행을 보고 죄의 탓으로 여기는 그들의 생각을 바꾸어 놓으시고, 불구인 그들도 정상적인 사람들과 똑같이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임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눈먼 소경을 통하여 하느님의 놀라운 일이 드러날 것임을 말씀하셨다. 제자들의 질문에 동떨어진 말씀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묻는 말에 대답하시면서 당신이 하셔야 할 일과 그 시간이 별로 없으시다는 말씀을 하셨다. 당신의 수난이 임박해 있음을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밤이 오기 전에 꼭 하셔야 할 하느님의 일이 있으심을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빛을 잃고 어두운 밤이 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메시아로서 하셔야 할 하느님의 일이 많이 있으심을 암시하신 것이었다.

말씀을 다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고쳐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을 치유하시면서 침을 뱉어 흙을 개어서 바르시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게 하시는 상징적인 표징을 사용하셨다. 실로암 연못은 많은 사람들이 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예루살렘에 있는 못으로 잘 알려진 곳이었다. 이는 하느님의 치유 능력에 대한 믿음과 신뢰심을 이끌어 내시면서 더불어 갑작스러운 밝은 태양 빛과 감각적인 자극에 적절하게 적응하도록 하신 것이었다.

소경이 눈이 떠서 돌아오자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하였다. 한 사람을 두고 각기 다른 생각을 하면서 서로 다투는 것을 보면, 이기적이고 편협적인 것이 얼마나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볼 수 있다. 그때 눈을 뜨게 된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 “내가 바로 그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그런데도 일부 사람들은 눈을 뜨게 된 사실을 의심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 의심은 그 소경을 고쳐주신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불신으로 변하였다. 사람들은 소경이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데리고 갔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에게 눈을 뜨게 된 경위를 물으면서 그를 고쳐주신 예수님에 대해서 논쟁을 벌였다. 복음은 다시 이렇게 전한다.

“사람들은 소경이었던 그 사람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데리고 갔다. 그런데 예수께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또 그에게 눈을 뜨게 된 경위를 물었다. 그는 ‘그분이 내 눈에 진흙을 발라주신 뒤에 얼굴을 씻었더니 이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에는 ‘그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면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하는 사람도 있었고, ‘죄인이 어떻게 이와 같은 기적을 보일 수 있겠소?’하고 맞서는 사람도 있어서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 그들이 눈멀었던 사람에게 ‘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니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하고 다시 묻자 그는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요한 9,13-17).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탐욕과 아집을 버리지 못하고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했다는 이유로 예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서 트집을 잡았다. 안식일 법인 율법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죄인 취급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덮으려 하였다. 이는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아집이었다. 따라서 소경이었던 그를 불러 협박하였다. 그러나 소경이었던 사람은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라고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말하였다. 소경이었던 사람은 자기 눈을 뜨게 해주신 분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로 보았고,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예언자로 그들 앞에서 떳떳하게 증언하였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의 대답이 너무나 당당하였기 때문에 대신 그의 부모를 불러 “이 사람이 틀림없이 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하고 협박하였다. 그러나 그 소경의 부모도 아들의 일을 사실대로 말하면서 아들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하였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예, 틀림없이 날 때부터 눈이 멀었던 저희 아들입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지금 보게 되었는지, 또 누가 눈을 뜨게 하여주었는지는 모릅니다. 다 자란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제 일은 제가 대답하겠지요”(요한 9,20-21).

그의 부모는 유다인들을 무서워하였다. 그들의 비위를 거스르면 누구나 다 회당에서 쫓겨났기 때문이었다.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회당을 중심으로 살고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 회당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하느님과 단절하는 것이며, 또한 그 사회로부터의 격리였다. 그러나 그의 부모 역시 굴하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말하면서 아들의 일이니 아들에게 물어보라고 대답하였다. 유다인들이 소경이었던 사람을 다시 불러 놓고 “사실대로 말하시오. 우리가 알기로는 그 사람은 죄인이오”(요한 9,24) 하고 다그쳤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 법을 어겼으니 죄인으로 말하라는 것이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인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하신 사실을 어떻게든 트집을 잡아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 아님을 집요하게 증명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가 대꾸하였다.

“분명히 내 눈을 뜨게 하여주셨는데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도 모른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의 청은 안 들어주시지만 하느님을 공경하고 그 뜻을 실행하는 사람의 청은 들어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여준 이가 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분이 만일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도저히 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요한 9,30-33).

소경은 자기의 눈을 뜨게 해주신 분이 메시아이시라고 분명하게 증언하였다. 그는 무서움을 무릅쓰고 유다인들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였다. 실로 대단한 용기였다. 유다인들은 화가 나서 그를 회당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유다인들은 이 말을 듣고 ‘너는 죄를 뒤집어 쓰고 태어난 주제에 우리를 훈계하려 드느냐?’ 하며 그를 회당 밖으로 내쫓아 버렸다. 눈멀었던 사람이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그를 만났을 때에 ‘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선생님, 믿겠습니다. 어느 분이십니까?’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주님, 믿습니다’ 하며 그는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요한 9,34-38).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직접 확인하셨고, 그는 “선생님, 믿겠습니다. 어느 분이십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그는 자기 눈을 뜨게 해주신 분이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이심을 확신하고 있었고, 자기 눈을 뜨게 해주신 그분을 직접 보고 싶어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있는 그에게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다.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어 엎드리며 “주님, 믿습니다”라고 믿음을 고백한다. 얼마나 감동적이고 뜨거운 메시아와의 만남인가?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9,39)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의 치유를 통해서 당신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신다. 영적으로 눈을 뜨게 해주시고, 빛을 주러 오신 메시아이심을 말씀하신다. 예수님과 함께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 몇이 이 말씀을 듣고 “그러면 우리들도 눈이 멀었단 말이오?” 하고 대든다.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눈먼 자들이 자기들의 눈이 잘 보인다고 대들고 있으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차라리 눈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눈이 잘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1)라고 책망하신다.

영적으로 눈먼 자들은 하느님께 지은 불순종의 죄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눈이 멀었던 사람은 메시아를 만난 이후 그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어둡고 그늘진 마음에 밝은 빛이 비추어지고, 앞이 보이지 않은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와 해방을 얻는다.

소경이었던 사람의 모습은 메시아와 함께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과 참다운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주님은 지금도 매 미사 때마다 우리 앞에서 “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고 계신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주님, 믿습니다” 하고 우리의 믿음을 분명하게 고백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에게 밝은 빛을 주러 오셨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파스카는 세상을 밝게 비추시는 빛의 절정이다. 따라서 파스카를 앞두고 있는 이 사순 시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영적으로 눈을 뜨게 되는 참으로 중요한 시간이다. 눈을 뜨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회개의 시간이기도 하다. 회개를 통하여 우리에게 빛을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하자.

 

“내가 이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