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5주일(복음: 요한 1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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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4-26 21:38 조회3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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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오늘은 부활 제5주일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신다. ‘길과 진리와 생명’은 곧 하느님의 본성이시다. 따라서 이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느님의 본성을 지니셨음을 드러내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다 되어 그들에게 잡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으실 것이라는 생각을 하시고 제자들에게 당신의 신적 본성을 말씀하셨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걱정하지 말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내 아버지 집에는 있을 곳이 많다. 그리고 나는 너희가 있는 곳을 마련하러 간다.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요한 14,1-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훗날 같이 살게 될 아버지의 집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당신께서 먼저 가시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는 당신께서 당하실 수난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 잠시 말씀의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자.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저녁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나누시던 목요일 밤이었다. 그날 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면서 유다가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그때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와 같이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 왜 죽으셔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서 불안과 두려움을 가졌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에 대한 믿음이 아직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집에 대해서 그리고 그 길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어 ‘길과 진리와 생명’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복음은 다시 이렇게 전한다.
“그러자 토마가 ‘주님, 저희는 주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14,5-7).
토마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길’을 확인하려 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집에 가는 길에 대해서 지상의 어느 길로 생각하였고, 거기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뵈올 수 있을 것으로 알았다. 토마의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길과 진리와 생명’은 하느님 본성 자체이시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신성을 지니신 본성 자체이심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하느님의 본성이신 ‘길과 진리와 생명’에 대한 성서적 의미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자. 먼저 ‘길’이라는 말은 고대 셈족인 유목민으로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는 알아듣기 쉬운 단어였다. 유목민들의 생활에서 ‘길’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양 떼나 짐승들을 몰고 다니는 삶의 길이기 때문이었다. 만일 길을 잘못 찾아 딴 길로 가게 되면 사막에서 길을 잃고 사막의 폭풍과 야수와 이민족들에게 죽음을 당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종교적, 도덕적 생활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 ‘길’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였다.
‘길’이라는 표현은 구약성서에서도 자주 등장하였다. 성서를 보면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길’을 떠났다. 그는 끊임없는 모험을 통하여 하느님께로 향하는 하느님의 길을 찾아냈다. 그리고 하느님의 길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이집트 탈출 사건이었다. 하느님께서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당신의 현존을 나타내시면서 친히 선두에서 길을 인도하셨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길을 인도하시어 자유를 얻게 하셨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보살피듯이’ 그들을 보살펴주시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시고, 잘 곳도 찾아주시면서 그들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배려하셨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약속의 땅으로 ‘길’을 걸으셨다.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다” 하심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백성들과 함께 하느님의 집을 향하여 길을 걷고 있는 하느님이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따라서 ‘길’이신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갈 수 없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길은 어떤 길인가? 한편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길은 곧 ‘수난과 파스카’로 향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는 지난 주일 복음에 “나는 문이다” 하신 말씀과 더불어 부활을 암시하시면서 수난과 파스카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하신다. 십자가의 죽음과 파스카의 신비는 ‘하느님의 생명’이 주어지는 참 ‘길’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는 진리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진리’라 하심은 예수님께서 곧 하느님이시라는 말씀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진리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사가는 복음서 첫 장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시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은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요한 1,1-2)라고 말하고 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곧 진리이신 하느님 자체이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이미 아버지를 뵈었다”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본성인 진리이시며 곧 하느님이시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부활의 신비에서 참으로 예수님께서 생명이심을 보게 된다. 십자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께서는 참 생명을 지니신 하느님이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이다”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야훼 하느님께서는 ‘살아 계신 하느님, 활동하시는 하느님’이셨다. 이는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지니신 하느님이심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영원한 생명을 지니신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끊임없이 생명에로 부르셨다. 야훼 하느님은 곧 생명이셨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이다” 하심은, 곧 하느님이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자 필립보가 예수님께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고 청한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이번에는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니 무슨 말이냐?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한 14,8-12).
필립보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 땅 어디에 계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아버지를 뵙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에게 긴 말씀을 통하여 당신과 아버지가 하나이심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필립보에게 “이토록 오랫동안 같이 지냈는데도 아직도 나를 모른단 말이냐” 하시면서 책망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예수님은 어느 한 곳도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같은 하느님이심을 다시 한 번 말씀하신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일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하신다. 이는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암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믿음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아직 당신을 믿지 못하고 불안에 떨면서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앞으로 있을 당신의 수난과 부활의 의미를 확실하게 하려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하시면서 믿음을 가지고 큰 일을 하게 될 제자들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훗날 제자들은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다 해낸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하느님 아버지의 일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다 내놓는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보다 더 큰 일’도 다 해낸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예수님은 참으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을 세상에 나아가 증언하는 일이었다. 이 증언은 곧 하느님을 증언하는 것이요,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복음화였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전하면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증언해야 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일’, 즉 복음 전파의 사명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