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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복음: 요한 3,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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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5-24 16:36 조회109회 댓글0건

본문

 

성부, 성자, 성령은 같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7).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삼위일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날이다. 교회가 삼위일체 신비를 믿으면서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성부, 성자, 성령이시다”라고 말하는 것은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원 역사의 신비’를 묵상하고 감사드리기 위한 것이다. 즉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고백하는 것은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느님이시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께서 또한 같은 하느님이심을 증언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삼위일체이신 내적 신비로 세상을 구원하신다.

처음 삼위일체에 대한 찬미는 사도 시대 이후 유스티노(100년-165년)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50년-215년) 저서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교황 그레고리오 1세(590년-604년)는 삼위일체 기도문과 화답송으로, 7세기경에는 성령 강림 팔부 주일 미사의 감사송에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찬양하였다.

그리고 800년경 알쿠인(Alcuin)은 주간 평일 미사를 위한 작은 미사 경본을 만들어 삼위일체 미사를 수록하였다. 그 후 삼위일체 미사는 신심 미사로 취급하지 않고 성무 집전서 안에서 성령 강림 주일 이후 팔부 주일 중 첫째 주일이나 마지막 주일에 거행되었다. 그리고 1334년 교황 요한 22세는 이 축일을 성령 강림 축일 다음 주일로 지정하면서 로마 전례를 거행하는 모든 교회의 의무 축일로 발표하여 오늘날까지 지내고 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에 대해서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즉,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위격을 가지셨다는 하느님의 본성에 대해 깨닫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구원의 역사 안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기에 성삼위에 대해 믿을 교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면 먼저 삼위일체의 어원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삼위일체’라는 용어에서 ‘위’라는 말은 우리말로 지위 또는 직위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 ‘위’라는 개념은 원래 ‘Persona - 가면’이라는 말에서 나온다. 이는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가면을 쓰고 자기에게 주어진 역의 연기를 하는데, 배우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언제나 그 사람이지만 그 사람은 자기가 쓴 가면의 역할에 따라서 매번 다른 연기를 한다. 다시 말해서 한 사람의 배우가 가면을 쓰고 여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를 가면극의 역할에다 비유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우리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본성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이다.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야훼다. 야훼다. 자비와 은총의 신이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아니하고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신이다”(출애 34,6).

하느님은 자비와 은총,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주 하느님이시다. 그 외에 다른 신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셨고, 그와 계약을 맺으시어 이스라엘의 영원한 하느님으로 남으신 하느님은 생명을 지니신 유일한 하느님이셨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해내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면서 위대하시고 유일한 하느님이심을 보여주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장엄한 구원의 역사를 통하여 유일하신 하느님으로 더욱더 분명하게 드러내셨다.

그런데 이 위대하고 장엄한 구원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본성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으로 나타나셨다.

그러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은 누구이신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삼위일체에 대한 단어나 교리 자체는 성서 어느 곳에도 나타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내적 진리는 성서 안에 함축되어 나타나고 있다. 유일하신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역사 안에 예수님과 성령이라는 위격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 구원의 역사 안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세 위격으로 당신의 내적 진리를 보여주셨다.

먼저 하느님의 내적 신비인 ‘자비와 사랑과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의 신성이 신약에 와서 당신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타난다. 즉,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셨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복음사가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여주셨다.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시켜 구원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6-17).

또한 요한복음사가는 “그를 믿는 사람은 죄인으로 판결받지 않으나 믿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요한 3,18)라고 말하고 있다.

하느님의 구원이 당신의 아들에게 주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요한복음사가는 하느님의 외아들이 곧 하느님이심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역사 안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주셨다.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를 구원하시려 하신 것이었다.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인간에게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버림받아 십자가에 죽으셨다. 그러나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상 죽음은 하느님 사랑의 극치이며 절정이었다. 따라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자비와 사랑과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의 본성을 드러내신 내적 신비였다.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은 곧 하느님이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셨다. 외아들의 죽음과 부활로 당신의 자비와 사랑을 거두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아들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도 성령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구원의 역사를 계속하신 것이다. 이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하신 구원의 역사가 외아들의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하여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자비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느님의 구원 사업은 성령의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모든 신비를 다 깨닫게 하시고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영이시며 예수님께서 보내신 분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다른 협조자를 보내주셔서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시도록 하실 것이다. 그분은 곧 진리의 성령이시다”(요한 14,16).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께서 하느님께 구하여 보내주신 성령께서는 곧 하느님이시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어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본성이시며, 내적 신비이시다. 그리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내적 신비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자비와 사랑과 은총에서 나오는 하느님의 진실하신 모습이다.

하느님께서는 삼위일체이신 신비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모두 내어주셨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에 감사드리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과 사랑과 진실 안에 영광과 찬양을 드려야 한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