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일(복음: 마태 16,21-27)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8-26 12:25 조회244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24).
오늘은 연중 제22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와 ‘예수를 따르는 길’에 대한 복음이다. 이 두 소 제목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깊은 연관을 가진 말씀이다. 수난의 길이 곧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먼저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에 대한 말씀을 들어보자.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임을 알려주셨다.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주님, 안 됩니다. 결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말리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돌아다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 하고 꾸짖으셨다”(마태 16,21-2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수난을 예고하시는 배경에 대해서 잠시 알아보자. 지난주 복음에 나왔던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관련되어 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이르셨을 때 제자들에게 당신에 대해서 물어보셨다. 그때에 베드로가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베드로(바위)라는 이름을 주시면서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는 말씀을 하셨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그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너는 복이 있다”라고 칭찬해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눈이 떠진 베드로의 믿음을 보시고 매우 흡족해하시면서 당신께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그런 다음에 그리스도이신 당신께서 겪게 되실 수난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갑작스러운 수난에 대한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다.
수난이란 말은 무엇인가? 수난이란 곧 죽음을 말한다. 그리고 수난은 죽음뿐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사시는 동안 겪으시는 모든 고통과 수모를 더불어 말하고 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시면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게 많은 방해와 음모, 박해를 받으셨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이 모든 수난을 받아들이시면서 하느님의 일을 하셨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결정적인 수난, 당신의 죽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반드시 예수살렘에 올라가시어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수난에 대한 예고는 제자들에게 충격이었고, 두려움이었고, 공포였다. 안타깝게도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심은 알았지만 그분의 삶에 대해서는 알지를 못했던 것이다. 많은 고난과 죽음까지도 받아들여야 하는 그리스도의 삶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께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면서 영광스러운 메시아의 모습을 꿈꾸며 기대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제자들은 더욱 더 수난에 대한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수난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있어 왔다. 오늘 제1독서에서도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신의 고통스러움을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입을 열어 고함을 쳤습니다. 서로 때려 잡는 세상이 되었다고 외치며 주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 덕에 날마다 욕을 먹고 조롱받는 몸이 되었습니다”(예레 20,8).
예레미야는 그의 부드러운 성품대로 행운과 위로의 말씀을 전해주는 예언자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는 그 시대의 우상숭배 때문에 받게 될 강하고 엄한 심판에 대해서 질책해야 했다. 그 때문에 예레미야는 그의 말대로 날마다 웃음거리가 되었고, 놀림감이 되었고, 욕을 먹었고, 조롱받는 몸이 되었다.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고통이 너무 힘들어 주님의 이름을 입밖에 내지 않으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뼛속에 갇혀 있는 주님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타올라 견디다 못해 손을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고통과 수난은 모두가 다 겪어야 하는 십자가였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받아야 할 수난이 피할 수 없는 하느님의 뜻임을 아시고 반드시 받아들여야 함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임을 깨닫지 못한 제자들은 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절대로 안 된다고 말렸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크게 꾸짖으셨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하셨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에서 “너는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이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말씀하셨다.
사탄이란 무엇인가? 잠시 쉬어 가는 의미에서 성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탄에 대해서 알아보자. 사탄이란 마귀, 마귀의 두목, 모든 악의 교사자,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로 불려진다. 사탄이란 ‘방해하다’, ‘반대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구약에서는 길을 막는, 보통 대적의 역할을 맡아 하는 것으로 쓰였다. 신약에서는 33번 언급되는데 ‘훼방자, 마귀, 시험하는 자, 악한 자, 원수’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탄의 역할은 예외 없이 뚜렷한 성격을 지니고 등장한다. 그는 사람의 마음 가운데 들어와서 악행과 격정의 장본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사탄은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는 자이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일을 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이 사탄의 유혹을 심히 받으신 적이 있으셨다. 빵과 우상숭배인 부귀영화 그리고 하느님의 능력을 시험하는 유혹을 받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이란 말씀을 하시면서 베드로의 마음속에서 일고 있는 갈등의 유혹을 책망하셨다. 베드로에게 수난을 피하여 하느님의 일을 거역하고자 하는 갈등을 사탄이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나에게 장애물이다”라고 하셨다. 조금 전까지 예수님께서는 “너는 베드로이다”라고 하시면서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제는 크게 책망하시고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라고 꾸짖으신다.
사실 하느님의 일을 거역하는 것은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혼내시는 것은 훗날 제자들에게 수난의 길을 받아들여야 하는 경각심을 주시는 것이며, 베드로 위에 세워질 교회 공동체에 대한 충고이시다. 사탄은 항상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 옆에 도사리고 있다. 언제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하느님의 일을 방해하고 하느님을 거역하게 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을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따로 설명해주신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 말씀이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는다 해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의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느냐?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자기 천사들을 거느리고 올 터인데 그때에 그는 각자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줄 것이다”(마태 16,24-27).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에 대해서 잘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신비에 대해서 설명해주신다. 십자가란 죽음을 상징하는 형틀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짊어지실 십자가 죽음을 생각하시면서 당신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고 하신다. 당시에 제자들은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지만 훗날 그들은 십자가의 신비를 깊이 깨닫는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을 증언하면서 예수님과 똑같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십자가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 목숨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라는 역설적인 말씀을 하신다. 우리는 숨을 쉬고 있는 목숨을 생명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지금 가지고 있는 목숨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다. 영원한 생명은 주님 안에 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목숨은 참으로 소중하고 소중한 것이다. 세상에 목숨보다 소중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을 얻는다 해도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짊어져야 한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보여주셨다. 신앙 안에서 십자가란 자기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고 하느님의 일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삶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대한 종말론적 보상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주님의 일을 위해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목숨을 바치는 이들에게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그가 행한 대로 다 갚아주시겠다고 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일을 위해서 온 마음을 다 바쳐야 한다. 그것이 곧 목숨을 얻는 길이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실 거룩한 산 제물로 바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