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일(복음: 마태 21,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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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9-21 08:54 조회18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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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의 비유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마태 21,31).
오늘은 연중 제26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포도원과 관계된 ‘두 아들의 비유’에 대한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삶을 가져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신다. 두 아들에 대한 복음은 이렇다.
“그때에 예수께서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또 이런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먼저 맏아들에게 가서 ‘애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 하고 일렀다. 맏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하였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도 같은 말을 하였다. 둘째 아들은 가겠다는 대답만 하고 가지는 않았다. ‘이 둘 중에 아버지의 뜻을 받든 아들은 누구이겠느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셨다”(마태 21,28-31).
맏아들과 둘째 아들의 모습이 서로 상반되고 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누가 아버지의 뜻을 따른 아들인지 바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맏아들은 누구이고 둘째 아들은 누구인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두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말씀의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튿날이었다. 과월절을 앞두고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수난이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 예수님께서는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을 모두 쫓아내시고, 뜰 안에 있던 소경들과 절름발이들을 모두 고쳐주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일을 지켜보면서 감탄하였고 아이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 하고 외쳤다. 이때에 대사제들과 원로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지켜보고 화가 치밀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이튿날에도 아침부터 성안으로 들어가시어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화가 난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와서 예수님께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합니까?” 하고 따지며 대들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은 누구의 권한으로 세례를 베풀었느냐?”라고 반문 하시면서 그들을 크게 혼내셨다. 그리고 바로 이어 오늘의 두 아들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즉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는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책망하시면서 두 아들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 대사제들과 원로들은 누구인가? 사실 대사제들과 원로들은 성서에 자주 등장하면서 예수님께로부터 크게 지탄을 받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성서에 나오는 대사제들과 원로들은 서로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들은 같은 유다인으로서 하느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분파가 다르고 그들이 지향하는 믿음과 신앙이 달랐다.
대부분의 대사제들은 사두가이파 사람들이었고, 원로들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다.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대해서는 다음해에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로 하고 오늘은 간단하게 대사제와 원로들의 신분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대사제들은 제사장들의 우두머리인 대제사장들이었다. 역사적으로 성서적 사상에 비추어 본 제사장직은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결합을 의미하였다. 레위기에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스스로 거룩하게 행동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a)고 언급한 것처럼 하느님께 봉사하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신성함과 고결성을 상징하였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거룩함과 계약의 중재자가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제사장이라는 말은 구약에 700번 이상, 신약에 80번 이상 나오는데 모세 시대부터 특별히 제사장 직분은 레위인들이 맡았다.
제사장들은 유배 이후 B.C. 520년대에 이르러서는 그 직분이 크게 강조되면서 과거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수아와 다윗 왕조의 통치자였던 즈루빠벨과 같은 동등한 자리에 앉아 권한을 행사하였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거대한 사두가이파라는 종파를 형성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장악하면서부터 권세와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고 부를 축적하는 부패의 길을 걷는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그릇된 삶과 그들에게 하느님의 성전이 더럽혀지는 것을 보시고 크게 마음 아파 하셨다. 그들은 하느님과 백성들 사이의 신성한 중재자이기보다는 위선적인 부패자들이었다.
그리고 백성의 원로들이란 주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유다의 한 종파로 당시에 약 6,000명가량 구성되어 있었는데 제사장들로 구성된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지배하였다. 이 파는 대다수의 서기관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일부 사제들도 포함하고 있었으며, 그 구성원들은 직책이나 지위에 따라 여러 단체를 이루고 있었다.
처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에쎄네파와 마찬가지로 마카베오 시대에 이교도의 영향에 맞서 완강히 싸운 경건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율법에 열과 성을 다하였으며, 율법을 준수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사람들이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이 하느님의 법인 율법을 지키는 데 열성을 다하는 것을 보시고 매우 감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대해 율법을 없애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음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도 율법의 준수에 대해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본받으라고 하셨다. 따라서 당시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 예수님을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하여 접촉하기를 원하는 이들도 있었고, 예수님의 말씀에 깊은 관심을 가진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박해하고 방해하였다.
그들과 그리스도교와의 갈등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들이 불행했던 것은 율법을 고수하면서도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듣지 않고 실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율법인 법률에 대한 지식을 자부하면서 전통과 관습을 핑계로 하느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파괴하였다. 또한 자신들의 정의를 내세워 가난하고 불쌍한 서민들을 업신여기면서 그들을 죄인 취급하였다. 예를 들어 세리와 창녀들을 죄인들이라 하여 아예 상종하지 않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제한해버렸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그들의 태도를 대단히 못마땅하게 여기시면서 그들을 위선자, 어리석고 눈 먼 자, 뱀 같은 자, 독사의 족속들이라고 하셨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대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두 아들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누가 아버지의 뜻을 받든 아들이냐고 물으셨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 ‘맏아들’이라고 대답하였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 가고 있다. 사실 요한이 너희를 찾아 와서 올바른 길을 가르쳐줄 때에 너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마태 21,31a-32).
예수님께서는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그릇된 삶을 크게 책망하시면서, 세례자 요한의 말도 믿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세례자 요한은 누구였는가? 주님에 앞서 온 요한은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 하고 선포하면서 하늘나라가 다가왔음을 외친 사람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은 요한이 하늘로부터 온 사람임을 믿었고 그의 가르침에 따라 회개하면서 세례를 받았다.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에는 요한을 예언자로 믿고,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대부분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요한의 가르침을 듣지 않았고 믿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예언자 요한의 가르침도 듣지 않았고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둘째 아들의 모습을 비단 대사제들과 원로들의 모습으로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의 자녀로 살고 있으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둘째 아들처럼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세리와 창녀들처럼 뉘우치고 회개하면서 주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힘을 얻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위안을 받습니까? 성령의 감화로 서로 사귀는 일이 있습니까? 서로 애정을 나누며 동정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사랑을 나누며 마음을 합쳐서 하나가 되십시오”(필립 2,1-2).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사랑에 대한 말을 하고 있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사랑을 나누며, 마음을 합쳐 하나가 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다.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맏아들’이어야 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