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일(복음: 마태 21,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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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09-28 08:54 조회20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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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마태 21,43).
오늘은 연중 제27주일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소작인’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신다. 포도원 소작인에 대한 말씀은 당신의 수난을 암시하시는 것이며,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 나라의 주인이신 분이 어떻게 죽으시는지 보여주시는 말씀이다.
이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머지않아 대사제들과 원로들에 의해 당하실 당신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예고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에 대해서 이미 알고 계셨다. 과월절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서 당신을 죽이려는 사두가이파 사람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음모가 거의 확실하게 굳어 있음을 아셨다.
오늘 복음의 배경을 보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뒤에 성전에서 대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두 아들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시고 나서 오늘 복음인 포도원을 가꾸는 소작인의 비유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또 다른 비유를 들겠다. 어떤 지주가 포도원을 하나 만들고 울타리를 둘러 치고는 그 안에 포도즙을 짜는 큰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러고는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도지로 주고 멀리 떠나갔다. 포도철이 되자 그는 그 도조를 받아 오라고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하나는 때려주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쳐 죽였다. 지주는 더 많은 종들을 다시 보냈다. 소작인들은 이번에도 그들에게 똑같은 짓을 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알아 보겠지’ 하며 자기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 아들을 보자 ‘저자는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이고 그가 차지할 이 포도원을 우리가 가로채자’ 하면서 서로 짜고는 그를 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였다. 그렇게 했으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오면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악한 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제때에 도조를 바칠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마태 21,33-41).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가 나타내는 의미는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를 통해서 대사제들과 원로들 앞에서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이신 당신께서 어떻게 그들에 의해서 죽으시는지 말씀하신다. 즉,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 안에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상속자이신 당신께서 어떻게 죽으실 것인지를 보여주신다.
지상의 하느님의 나라를 포도원으로 비유하신 것은 이미 구약에서도 자주 있어 왔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포도밭에 대해서 서정적으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나의 임은 기름진 산등성이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네. 임은 밭을 일구어 돌을 골라 내고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지. 한가운데 망대를 쌓고 즙을 짜는 술틀까지도 마련해놓았네. 포도가 송이송이 맺을까 했는데 들포도가 웬 말인가?”(이사 5,1-2)
먼 옛날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포도원 지기로서 당신의 포도밭을 가지고 계셨다. 이 포도밭은 곧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이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포도밭을 사랑하셨고 그들을 위해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셨다. 그러나 하느님의 포도밭은 하느님께서 기대하신 만큼 의로운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대신 유혈이라는 쓴 들포도를 생산할 뿐이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포도밭을 황폐케 하는 자들에게 넘기셨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다. 그리고 훗날 이 땅을 잘 일구시고 돌을 골라내시어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는데, 이스라엘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내시어 거기에서 살게 하셨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감히 넘보지 못하도록 망대도 쌓고 포도즙을 짜는 술 틀까지 마련해주셨다. 그런데 잘 가꾸어진 포도밭에서 포도나무에 포도가 송이송이 맺혀야 했는데 들포도가 열렸다. 이에 하느님께서는 더 이상 이 포도밭을 돌보지 않으셨다. 이사야 예언자는 들포도가 열린 포도밭의 운명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하였다.
“울타리를 걷어 짐승들에게 뜯기게 하고 담을 허물어 마구 짓밟히게 하리라. 망그러진 채 그대로 내버려 두리라. 순을 치지도 아니하고 김을 매지도 않아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덮이게 하리라. 구름에게 비를 내리지 말라고 명하리라”(이사 5,5-6).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운명을 황폐한 포도밭으로 예언하였다.
사실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운명은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대로 기구하고 비참하게 되었다. 솔로몬 왕 이후 아들들의 권력 다툼으로 서로 싸운 이스라엘은 B.C. 935년에 남북으로 갈라지고, 북쪽인 이스라엘은 B.C. 732년에 아시리아에게 침략당하여 멸망하였다. 그리고 남부 유다마저도 B.C. 538년에 바빌론에 의해 멸망하고 유배당하였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들을 죽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결과로 참담하고 불행한 이스라엘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예언자들을 붙잡아 때려주고, 죽이고, 돌로 쳐 죽였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이 똑같이 다시 이루어지려 하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이 오셨는데도 이스라엘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고 죽이려 하고 있다. 마치 포도원 주인의 상속자를 소작인들이 죽이듯이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을 죽이려 하고 있다.
예루살렘 성전에 기생하면서 온갖 부정과 매점 매석으로 부를 축적하면서 살고 있는 대사제들과 탐욕에 젖어 서민들을 착취하면서 사는 원로들은 눈이 어두워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배척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새 백성에 대해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서에서,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고 한 말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마태 21,42-43).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죽이려는 자들에게 시편을 인용하시면서 당신의 죽음이 버려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하늘나라의 건설인 하느님의 구원 계획임을 말씀하셨다. 시편에 이렇게 나온다.
“집 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니, 우리 눈에는 놀라운 일 야훼께서 하신 일이다”(시편 118,22-23).
하느님 아들의 죽음은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그분은 하느님 나라의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다. 예수님께서 새로운 하느님 나라의 머릿돌이 되실 것임을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을 머릿돌로 해서 도조를 잘 내는 새로운 백성들에 의해서 세워질 것이며, 그들에 의해서 성장되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새로운 백성들이란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일꾼들이다.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성실하고 충실하게 일하는 사람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다. 지난주 복음에 나오는 맏아들과 같은 사람들 그리고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면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다.
이제 하느님의 나라는 새로운 백성들에 의해 기름진 포도밭처럼 될 것이며, 새로운 소작인들에 의해 잘 가꾸어지고, 포도나무에는 포도가 송이송이 맺혀 풍성하게 되는 그러한 나라가 될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제2독서에서 새로운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고상한 것과 옳은 것과 순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과 덕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들을 마음속에 품으십시오. 그리고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들은 것과 본 것을 실행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필립 4,8-9).
우리의 신앙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어떤 심성을 가지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좋은 나무에 좋은 열매가 맺듯이 좋은 심성과 마음에서 좋은 말과 행동이 나온다.
세상에 가장 좋은 것은 모두 다 주님 안에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의 새 백성이 될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모시고 주님 안에서 살아야 한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소작인이 되는 것이며 상속자가 될 것이다.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