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8주일(복음: 마태 22,1-14)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10-07 10:43 조회128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혼인 잔치의 비유
“하늘나라는 어느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것에 비길 수 있다”(마태 22,2).
오늘은 연중 제28주일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고 계신다. 지금까지 주일 복음을 보면 몇 주일에 걸쳐 하늘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포도원 일꾼과 품삯’, ‘두 아들의 비유’,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였다. 그리고 오늘은 ‘혼인 잔치의 비유’이다.
이 혼인 잔치는 임금의 아들의 혼인 잔치로서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임금의 초대에 모두가 응할 수 있으며, 초대에 응한 사람들 중에 예복을 입은 사람들만이 참석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이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하여 당신께서 하늘나라의 왕이시며, 또한 하늘나라에 모두를 초대하고 계심을 보여주고 계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초대에 응하고 있지 않으며, 초대에 응한 사람들 중에도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지난주 복음에 이어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을 받아들이지 않는 대사제들과 원로들에게 종말론적인 경각심을 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음을 살펴보기로 하자.
“하늘나라는 어느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것에 비길 수 있다.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을 불렀으나 오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종들을 보내면서 ‘초청을 받은 사람들에게 가서 이제 잔치상도 차려놓고 소와 살진 짐승도 잡아 모든 준비를 다 갖추었으니 어서 잔치에 오라고 하여라’ 하고 일렀다. 그러나 초청받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밭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가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때려주기도 하고 죽이기도 했다. 그래서 임금은 몹시 노하여 군대를 풀어서 그 살인자들을 잡아 죽이고 그들의 동네를 불살라버렸다.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지만 전에 초청받은 자들은 그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니 너희는 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청해 오너라’ 하고 말하였다. 그래서 종들은 거리에 나가 나쁜 사람 좋은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다 데려왔다. 그리하여 잔칫집은 손님으로 가득 찼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갔더니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를 보고 ‘예복도 입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 왔소?’ 하고 물었다. 그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어 쫓아라.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마태 22,1-14).
메시아가 오시면 이루어질 하늘나라가 잔치로 비유된 것은 이미 구약에서부터 있어왔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산 위에서 만군의 야훼, 모든 민족에게 잔치를 차려주시리라. 살진 고기를 굽고 술을 잘 익히고 연한 살코기를 볶고 술을 맑게 걸러 잔치를 차려주시리라”(이사 25,6).
이사야 예언자는 메시아가 오시기 때문에 벌어지는 잔치를 예사 잔치와는 달리 ‘살진 고기를 굽고, 잘 익은 술과 연한 고기를 볶고, 술을 맑게 걸러 차려 놓은’ 풍성한 잔치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날, 이렇게들 말하리라. ‘이분이 우리 하느님이시다. 구원해주시리라 믿고 기다리던 우리 하느님이시다. 이분이 야훼시다. 우리가 믿고 기다리던 야훼시다. 기뻐하고 노래하며 즐거워하자. 그가 우리를 구원하셨다’”(이사 25,9).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아들이 오시는 날을 하느님께서 베푸실 구원의 날로 받아들였다. 마치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것처럼 가장 큰 축복의 날로 예언하였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를 통하여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루어지는 하늘나라를 말씀하시면서 훗날 하늘나라가 완성될 종말론적인 하늘나라 잔치를 암시하신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오심으로써 이미 혼인 잔치는 벌어졌고 또한 초대되고 있음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 혼인 잔치는 훗날 있을 종말론적인 천상 혼인 잔치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혼인 잔치와 같은 하늘나라의 모습은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 이전에도 이미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먼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하늘나라의 모습은 보여졌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직접 통치하시어 당신의 나라를 이루려 하셨는데 그 나라는 하느님께 충실한 다윗 왕조에서 그 모습이 드러났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건설되지 않았다. 임금이 베푼 혼인 잔치와 같은 기쁨과 노래와 즐거움이 넘치는 그러한 나라가 되지 못하였다. 포도밭 소작인들과 같은 이스라엘의 왕들과 지도자들이 하느님의 통치 이념을 깨닫지 못하고 세속적인 야심과 탐욕으로 하느님의 법인 율법을 무시함으로써 하늘나라는 무너지고 말았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이루시려는 이스라엘은 메시아가 오실 때까지 눈물과 피로 얼룩지면서 끝내는 멸망하고 말았다. 그런데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 오심으로써 하늘나라가 다시 세워지려 하고 있다.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대로 메시아 시대의 하늘나라가 이루어지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조상들이 밟았던 그대로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의 초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분을 죽이려 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과거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저질렀던 일들을 오늘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하여 상기시키면서 책망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이방인들과 어울려 예언자들을 배척하였던 일과 하느님의 종들인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예언자들을 붙잡아 때려주고 죽이기도 했던 일들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임금의 초청을 거절하는 자들에 대해서 그들은 혼인 잔치에 참석할 자격이 없는 자들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그리고 초청을 거절한 사람들을 제외시키고 거리에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데려오라고 하신다. 그래서 하늘나라 혼인 잔치는 새로운 사람들로 채워지게 된다. 나쁜 사람 좋은 사람 할 것 없이 잔칫집은 새로운 손님들로 가득 차게 된다.
이제 메시아가 오심으로 혼인 잔치와 같은 하늘나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전에 초청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로 하늘나라는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예복’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어 쫓아라.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다. 하늘나라 혼인 잔치는 초청받은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예복을 반드시 입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하늘나라는 누구나 다 초청을 받아 들어갈 수 있는 혼인 잔치와 같은 곳이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쫓겨나는 곳이다.
하느님 앞에서 회개하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 역시 초청을 받았다고 해서 하늘나라에 다 들어갈 수는 없다. 초청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의 주인이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새로운 사람의 삶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에페 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