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일(복음: 마태 22,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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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6-10-19 09:24 조회11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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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가장 큰 계명
“그들 중 한 율법 교사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하고 물었다”(마태 22,35-36).
오늘은 연중 제30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바리사이파 사람 중 한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율법서에 있는 가장 큰 계명에 대해서 질문하는 내용이다. 예수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알고자 하는 질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속을 떠보기 위한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성전 앞에서 예수님께 질문한 것으로 보면 율법학자들 중에서도 상당히 영향력 있는 율법학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율법 교사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지식이 탁월한 것 같다.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질문한 모습을 복음서는 이렇게 전한다.
“예수께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 중 한 율법 교사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선생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마태 22,34-36).
오늘 복음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배경을 좀 살펴보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뒤에 하늘나라에 대한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하여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책망하셨다. 그들은 크게 자극을 받았다. 화가 난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어떤 트집을 잡아 올가미를 씌워서 죽일까 하고 모의하였다. 그들은 트집을 잡으려고 예수님께 정치적으로 민감한 세금에 대한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복음서는 그때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물러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의 말씀을 트집잡아 올가미를 씌울까” 하고 궁리한 끝에 다시 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말씀에 경탄하면서 떠나갔다.
그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떠나간 뒤에 또다시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께 부활에 대해 물으면서 토론을 하였는데 그들 역시 예수님의 가르침에 말문이 막히고 탄복하였다. 이런 일이 있고 난 후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다시 몰려와 예수님께 율법서의 계명에 대한 질문을 하였다. 오늘 복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율법서란 무엇인가? 율법서란 말 그대로 율법이 들어 있는 책이다. 율법에 대해서는 연중 제6주일에 자세하게 언급되어 있지만 율법은 모세오경 안에 있는 모든 여러 가지 법령들로 구성되어 있다.
율법이란 하느님의 법이다. 하느님께서 주신 법령들, 즉 계명들을 율법이라고 한다. 하느님께서 주신 이 계명들을 지키고 준수하는 것이 곧 이스라엘의 신앙이었다. 따라서 율법서 안에 들어 있는 법령들, 즉 계명들은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 없이 모두가 하느님께서 주신 것들이었다.
그러나 당시에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의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인가를 찾고자 했다. 율법학자들 사이에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한 계명인지에 대한 수없는 논쟁과 논란이 있었다. 율법 교사가 예수님께 질문하여 노린 것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래서 그가 예수님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까”라고 물었다. 예수님을 그들의 논쟁에 휘말리게 하기 위한 속셈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그들의 상황을 잘 알고 계셨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율법의 두 계명을 간단하게 인용하셨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이것이 가장 첫째 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마태 22,37-40).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먼저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법령이 신명기에 이렇게 나온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느님은 야훼시다. 야훼 한 분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여라.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말을 마음에 새겨라”(신명 6,4-6).
이미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법령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신명기 법령은 오직 하느님 야훼만을 사랑해야 한다고 이스라엘에게 말하였다. 따라서 율법은 처음부터 이스라엘에게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지적하고 가르쳤다. 이처럼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법령은 하느님의 계명 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즉, 모든 율법의 근본정신이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내리신 분부를 모두들 성심껏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당시에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제1 계명으로 올려놓지 않았다. 율법 준수 자체만을 더욱 중요시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에게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주면서 법의 근본정신인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이 법령을 첫째 가는 계명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둘째 가는 계명으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레위기에 나오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예수님께서 새롭게 깨우쳐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대해서 레위기에 이렇게 나온다.
“동족에게 앙심을 품어 원수를 갚지 말라.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 나는 야훼이다”(레위 19,18).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야훼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한, 야훼께서 내리신 명령이었다. 야훼께서 “나 야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 하시면서 거룩한 사람이 되기를 말씀하셨는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느님 야훼를 사랑하는 것과 함께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당시에 유다인들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다른 여러 계명들과 같은 서열에 두었다. 그들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모든 계명의 중심적 위치, 나아가 독특한 자리에 올려놓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율법의 둘째 가는 계명으로 올려놓으셨다.
신약성서 전체를 통하여 볼 때도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불가분의 것으로 나타난다.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으로써 율법의 모든 윤리적 요청이 충족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둘째 계명으로 말씀하셨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이웃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마디 말씀으로 요약됩니다”(갈라 5,14).
요한 역시 그의 첫째 편지를 통하여 이웃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1요한 4,20-21).
이웃에 대한 사랑은 신약의 유일한 계명이 된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따로 떼어놓을 수 있는 계명이 아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두 계명은 율법의 정점이며 중심이다. 율법 교사의 질문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로운 율법의 정신은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법 정신을 분명하게 선포하셨다. 이는 메시아만이 하실 수 있는 ‘법의 선포’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을 가장 큰 하느님의 계명으로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