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9주일(마르 10,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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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10-14 09:58 조회40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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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마르 10,45).
오늘은 연중 제29주일이다.
교회는 매년 10월 마지막 전 주일을 '전교 주일'로 정하여 지내기 때문에, 때로는 연중 제29주일을 전교 주일로 지내는 경우가 있다. 오늘은 연중 제29주일 복음인 '섬기는 사람이 다스린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해 보기로 한다.
복음의 배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과월절-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앞장서 가시고 제자들은 불안에 싸여 뒤따라가고 있었다. 그때에 열두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장차 당하실 일들을 일러주셨는데, 이 말씀이 수난에 대한 세 번째 예고였다(마르 10,32-34).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 수난에 대한 세 번째 말씀을 하실 때에 제베데오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소원을 말씀드린다.
"제베데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가까이 와서 '선생님, 소원이 있습니다. 꼭 들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선생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저희를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느냐? 내가 마시게 될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단 말이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예,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도 내가 마실 잔을 마시고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편이나 왼편 자리에 앉는 특권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마르 10,35-40).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대담하게도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예수님의 오른편과 왼편 자리를 자기들에게 달라고 청한다. 다른 제자들은 수난에 대한 예고로 불안에 떨고 있는데, 예수님께 부탁드리는 것을 보면 두 사람의 성격이 대단히 활달했음을 볼 수 있다.
이 두 사람의 아버지인 제베데오는 갈릴래아 어부이며, 살로메의 남편이다. 그들은 베싸이다 아니면 가파르나움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제베데오와 두 아들은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와 함께 고기잡이 동업으로 갈릴래아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삯꾼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가파르나움의 큰 부자 중의 하나라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제베데오는 사업에 있어서 수완과 영향력이 있던 사람으로 예루살렘의 상류층들과도 교분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두 형제와 베드로 형제가 부르심을 받은 그 날부터 그의 사업은 급진적으로 변한다. 그러나 제베데오는 비록 어업에 다소 지장이 있더라도 두 아들이 떠나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 베드로가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제베데오는 그의 두 아들과 베드로 형제가 떠난 뒤에도 계속 고기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의 어업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전도하는 동안 많은 재정적 지원을 했으리라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제베데오의 부인은 살로메였다. 살로메는 항상 제베데오 아들들의 어머니로서 묘사되어 아들의 덕을 입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요한 복음에 나오는 '이모'(요한 19,25)인 것으로 이야기되기도 한다. 제베데오의 전 가족들은 예수님의 대단한 지지자였다. 살로메 역시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부터 섬기던 사람이었고, 나중에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에도 거기에 있었으며, 예수님께 향료를 바르기 위해 무덤에 갔던 여인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야고보는 통상적으로 첫 자리에 언급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요한의 형인 듯하고, 요한은 때때로 '야고보의 형제'로 불리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가 복음과 사도행전은 요한을 첫 자리에 두고 야고보가 요한의 형제(사도 1,13)로 나오는데, 이것은 아마도 요한이 야고보의 죽음 이후 교회의 '기둥'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을 대단히 사랑하셨으며, 요한은 그 형과 함께 예수님의 가장 가까웠던 세 명의 제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 이 세 사람, 즉 베드로와 제베데오의 두 아들들은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을 때와 예수님의 영광스런 변모, 그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시기 위하여 따로 게쎄마니에 가셨을 때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제베데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 '천둥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보아네르게스'라는 별명을 주셨는데, 그들이 맹렬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인지 오늘 야고보와 요한은(마태 20장 20절부터 24절에서는 그들 어머니의 요청으로 돌리고 있지만) 최후에 하느님의 나라에서 자기들에게 가장 높은 자리를 줄 것을 청했으며,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되물으시자, 그들은 '순교의 잔'을 마시며, '순교의 세례'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이때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내가 마실 잔을 마시고 내가 받을 고난 의 세례를 받기는 할 것이다'라고 그들이 받을 순교를 예언하셨다.
야고보는 열두 제자들 중에서 신약에 순교가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그들 중에서 최초로 죽은 사람으로 전해진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A.D. 42-44년 동안 팔레스티나의 통치자였던 헤롯 아그리빠 1세는 베드로를 체포한 광범위한 박해에서 야고보를 처형했다(사도 12,1-3)고 전한다. 야고보가 처형당할 정도로 부각된 인물이었다는 것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도 그러했듯이,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 중에서 특이한 그룹을 형성했음을 말해준다.
오늘 두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개인적인 야망을 드러내자 나머지 열명의 제자들은 화를 내었고, 예수님께서는 참을성 있는 가르침으로 그들에게 영적인 이해를 시키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도 알다시피 이방인들의 통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또 높은 사람들은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 10,42-44).
이 가르침은 당신의 수난을 얼마 앞두시고 당신 제자들에게 간절히 바라시는 지도자로서의 사도직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당신 제자들에게 한없이 자신을 낮추는,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겸손을 가르치신다. 남을 섬기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된다는 것은 곧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마르, 10,45) 하시면서 당신에게 주어질 수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가르치신다. 따라서 예수님의 수난은 남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남을 섬기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주어야 한다. 특히 사목자들은 더욱 그러하다.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