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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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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일(마르 1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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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10-21 08:49 조회38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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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주시는 예수님

 

"예수께서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하고 물으시자

그는 '선생님,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하였다"(마르 10,51).

 

오늘은 연중 제30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 '예리고의 소경'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예리고에서 소경을 만나 그의 눈을 뜨게 해주신다. 이 기적은 단순한 치유가 아니라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큰 사건으로 전해진다. 예리고의 소경인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의 수난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과 믿음의 혜안을 갖지 못하는 시대적 공동체, 그리고 세속의 어둠 속을 헤매는 그리스도인들을 상징하기도 한다.

복음의 배경을 보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세 번째 수난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수난의 의미를 이해시키려 하신다. 그러나 그들은 수난의 의미를 쉽게 알아듣지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 두렵고 무서웠으며, 불안한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예리고에 들르셨다가 떠나시는 길에 앞을 못 보는 소경을 만나게 되시는데, 그 소경이 예수님께 자기 눈을 뜨게 해달라고 애원하였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예수와 제자들이 예리고에 들렀다가 다시 길을 떠날 때에 많은 사람들이 따라 가고 있었다. 그 때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는 앞못보는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자렛 예수라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여러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소리질렀다"(마르 10,46-48).

예수님께서 들르신 예리고는 예루살렘에서 40km 떨어져 있고, 해발 750m 되는 예루살렘에 비해 1200m가 낮은 요르단 계곡에 위치해 있다. 예리고는 성서에 자주 나오는 도시로 북쪽에서 오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지나게 되는 참으로 오래된 도시이다.

옛 예리고는 구약성서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B.C. 800년경(중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서 사람들이 영구적으로 정착생활을 시작한 것은 토기시대 이전인 B.C. 7000년경(신석기시대)으로 전해진다. 한때 예리고는 신석기시대 말기(B.C. 4000년경) 이후부터 초기 청동기시대에 이르기까지 버려진 채로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청동기시대가 되자 다시 이곳에는 약 600년 동안 괄목할 만큼 도시의 생활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B.C. 2900-2300년).

지금까지 발견된 도시 중에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도시로 알려진 예리고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것은 B.C. 13세기경 이스라엘 민족이 약속의 땅에 도착하면서부터이다.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요르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예리고를 점령하면서부터였다. 당시에 여호수아는 예리고 성을 불태우고 함락시킨 후에 이렇게 말하였다.

"이 성을 다시 짓겠다고 나서는 자는 야훼께 저주를 받으리라. 맏아들을 죽이지 않고는 기초를 놓지 못하고 막내아들을 죽이지 않고는 성문을 달지 못하리라"(여호 6,26).

그런데 몇 세대가 지난 후에 여호수아의 예언대로 베델 사람 히엘이 예리고를 재건하려다가 정말 두 아들을 잃고 만다. 이를 두고 여호수아의 저주가 내렸다고 하였다. 그 후 예언자 엘리사는 주민들의 간청에 의하여 샘터에 가서 소금 한 줌을 던져 넣어 이곳 샘물을 정화하였다. 오아시스의 생명수인 이 샘은 역사를 통해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예언자 엘리사의 이름을 따서 '엘리사의 샘'이라고 불렀다. 이 샘은 옛 예리고의 길 건너편에 있으며 당시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마다 머무르셨던 곳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지막 '과월절-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말씀하셨던 수난에 대한 세 번째 예고가 이 곳 예리고였을 것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예리고 성읍은 둘로 나뉘어져 있다. 하나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성읍으로 텔 에스 술탄(Tell es Sultan)에 있고, 또 하나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성읍으로 툴룰 아부 엘 알라이크(Tulul Abu el Alayiq)에 위치하고 있다.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리고 성읍은 헤로데 왕이 겨울철 수도로 하기 위해서 옛 예리고 성읍보다 남쪽으로 1.6km 떨어진 곳에 새로 건설하였다고 한다.

오늘 예수님께서 소경의 눈을 고쳐주신 것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옛 예리고 성읍(여호수아가 점령했던 성읍)에서, 새 예리고 성읍(헤롯이 세운 성읍)으로 가시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소경인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이라고 부른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 다윗의 자손이신 메시아로서 자기 눈을 뜨게 해주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애원한다. 예수님께서 처음 그의 소리를 들으셨을 때에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다가 또 다시 그가 큰 소리로 자비를 베풀어주시기를 간절히 청하자 그를 부르신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의 믿음을 확인하고자 하신 것이었다. 그리고 그를 불러 그의 눈을 뜨게 해주신다.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너라' 하셨다. 그들이 소경을 부르며 '용기를 내어 일어서라. 그분이 너를 부르신다' 하고 일러 주자 소경은 겉옷을 벗어 버리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 다가 왔다. 예수께서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는 '선생님,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하였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예수의 말씀이 떨어지자 곧 소경은 눈을 뜨고 예수를 따라 나섰다"(마르 10,49-52).

앞 못보는 바르티매오는 예수님께서 부르신다는 말을 전해 듣고 겉옷을 벗어 버리고 예수님께 다가간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눈을 뜨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볼 수 있다.

오늘 이 소경이 보여주는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며, 이 소경의 모습은 '사람의 아들이 잡혀 사람들의 손에 넘어 가 그들에게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마르 9,31)라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앞으로 닥칠 어두운 일들을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제자들의 모습과 비교되고 있다. 

하느님 아들이신 분의 수난에 대한 의미를 깨닫는 것은 소경이 눈을 뜨는 것과 같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그분께 청한다면 틀림없이 눈을 뜨게 해주실 것이다. 소경은 눈을 뜨자 곧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된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 소경의 이름을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라고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마태오 복음과 루가 복음에서는 약간 다르게 나온다. 마태오 복음은 이름이 없는 두 사람의 소경을 고쳐주시고, 루가 복음은 역시 이름이 없는 한 사람만 고쳐주신다. 이들 복음서가 서로 같은 이야기라고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두 사람의 소경을 고쳐주셨는데, 두 복음서에서 한 사람만 고쳐주신 것처럼 나오는 것은 두 사람 중에 한 사람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소경 바르티매오는 참된 제자와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표상이다. 캄캄한 어둠 속을 헤매던 소경이 믿음으로써 밝은 빛을 보았듯이 훗날 제자들은 십자가의 신비를 깨닫고 부활의 기쁨을 간직한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현의를 깨달아 현세의 어둠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께 '선생님, 저에게 빛을 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청해야 할 것이다.

 

"선생님, 제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