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일(마르 13,24-32)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11-11 09:22 조회341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마르 13,26).
오늘은 연중 제33주일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재림에 대해서 긴 시간 말씀하시는데, 연중 제33주일인 오늘 복음은 그 중에서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에 대한 말씀이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그 재난이 다 지나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고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며 모든 천체가 흔들릴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으로부터 뽑힌 사람들을 모을 것이다"(마르 13,24-27).
종말론적 재림에 대한 말씀이다. 종말에 가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 신분으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신다는 말씀을 하신다. 신적 권능으로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계심을 말씀하신다.
먼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종말론적 재림에 대한 말씀의 배경을 좀 살펴보자. 마지막 '과월절-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과 많은 논쟁을 벌이셨다. 그들의 잘못된 생각과 위선적인 삶을 책망하시고 성전을 떠나 나오실 때, 제자 한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을 보면서 '선생님, 저것 보십시오. 저 돌이며 건물이며 얼마나 웅장하고 볼만합니까?' 하고 말씀드렸다. 그때 예수님께서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 하시면서 성전 파괴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예수님께서 성전 건너편 올리브산에 앉아 성전을 바라보고 계실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아가 따로 찾아와서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일이 다 이루어질 무렵에는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제자들은 세상의 종말로 생각했던 성전 파괴에 대해서 두려운 생각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재난의 시작'과 '가장 큰 재난'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오늘 복음인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에 대한 말씀을 하신다.
복음서에 보면 '사람의 아들'이라는 숙어가 무려 70번이나 나오는데 주로 예수님께서 자칭하시면서 쓰신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을 즐겨 쓰셨다. 오늘 종말론적인 재림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도 특히 '사람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쓰시면서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면서 왜 사람의 아들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셨는가? 즐겨 쓰신 '사람의 아들'에 대한 칭호에 대해서 그 의미를 알아보자.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쓰신 '사람의 아들'에 대한 단어를 이해해야 예수님께서 왜 스스로 고난의 길을 걸으시고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셨는지, 그리고 성체성사의 신비인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셨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서에서 '사람의 아들'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개념이다. 먼저 히브리어나 아라메아어에서 '사람의 아들'이란 단어는 흔히 사람(인간)을 말하는 동의어로 사용하였으며, 인류의 한 구성원을 가리켰다. 일반적으로 사람(인간)을 가리킬 때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을 썼으며, 그와 같은 의미로 '아담의 아들'이란 말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성서에서 '사람의 아들-아담의 아들'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말하기도 하고, 한 개인이나 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구약성서는 '사람의 아들'이 지닌 의미로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의 미소함, 죄인의 모습이나, 마땅히 죽어야 할 인간의 처지를 나타내고 있다. 에제키엘서에서 에제키엘은 하느님의 영광 앞에 엎드려 묵묵히 예배하고 있는 자로서, 야훼 하느님에 의해서 '사람의 아들'로 불리운다. 이 표현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간격을 말해주며, 죽어야 할 인간의 형편을 말해준다. 시편은 인간의 미약한 처지와 하느님의 돌보심을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시편 8,4)
구약성서에서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한 가닥 숨결에 불과하지만, 하느님께서 그를 풍부한 선물로 채워주신다는 의미로 나타난다. 이는 성서 전체에 흐르는 종교적 인간학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이 육신을 취하셨기 때문에 인간 편에 서시어 당신을 '사람의 아들'로 낮추어 부르시기를 즐겨하셨다. 즉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음을 강조하셨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이심을 강조하신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구약성서에서 예언되고 강조된 지상 메시아(왕, 군주)로서의 기대와 바람을 잠재우신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의 아들로서 하느님의 일을 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서 유다인들이 기대하던 세속적인 메시아나 하느님의 아들이란 호칭보다는 당신을 한없이 낮춘 사람의 아들이란 호칭을 택하셨다. 즉 하느님 앞에 사람의 아들로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셨기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셨고,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게 하신 성체성사를 세우실 수 있었다.
그리고 구약성서에서는 이미 한없이 낮춘 사람의 아들이신 분의 신성을 예언하기도 하였다. 다니엘서에 '사람의 아들'이신 분의 초월적인 면이 환시를 통하여 예언되고 있다. 다니엘은 '사람의 아들'에 대한 신적인 묘사를 이처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나는 밤에 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 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고적부터 계신 이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다"(다니 7,13).
다니엘서 7장의 문맥 전체는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과의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특히 그분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있다. 다니엘서 이후 유다교의 묵시문학은 사람의 아들이란 표현을 받아들였으며, 사람의 아들을 단일 인물로 재해석하면서 그 초월적 속성을 강조하였다. '에녹의 비유'를 보면 사람의 아들은 하느님 곁에 머무는 신비로운 존재로서 정의를 유지하고, 마지막 시대까지 보류된 구원을 계시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사람의 아들은 영광의 옥좌에 좌정하시어 최후 심판자로서, 부활하여 그분과 함께 살아갈 의인들의 복수를 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묘사해준 묵시문학의 종말론적 말씀은 의미가 매우 큰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란 칭호를 쓰시면서 당신의 가장 초월적인 면을 가리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장 초월적인 면을 분명하게 암시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이신 당신의 십자가상 죽음은 사람의 아들이 박해받는 모습이 아니라 궁극적인 영광의 모습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내려오시어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리라는 말씀은 특히 박해받으며 고난을 당한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희망이며 신앙이었다. 스테파노 역시 순교하면서 '아, 하늘이 열려 있고 하느님의 오른편에 사람의 아들이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사도 7,56) 하고 외쳤다. 이는 초대교회에서 사람의 아들에 대한 믿음과 신앙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졌는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의 신앙이기도 하다. 우리 그리스도교인들은 언젠가 오실 사람의 아들이신 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마음과 생활을 여미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한 복음사가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 당신을 희생물로 바쳐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도록 하신 것은 당신께서 '사람의 아들'의 신분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즉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셨기에 세상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스스로 희생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면서 당신의 살과 피를 내놓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시면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과 재림을 이해시키려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당신이 오시는 날에 대해서 무화과나무의 교훈을 들어 설명해주신다.
"무화과나무를 보고 배워라.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와진 것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앞에 다가 온 줄을 알아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마르 13,28-32).
하느님께서 익은 과일 바구니의 이야기를 인용(아모 8,1-2)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사용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그 날과 그 시간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하신다. 우리는 성체성사 안에서 사람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