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요한 18,33-37)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11-18 08:56 조회330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왕이신 나자렛 예수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요한 18,37).
오늘은 연중 제34주일이다.
벌써 '나해'인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교회는 오늘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전례력으로 '그리스도 왕 대축일' 미사를 봉헌한다. 오늘은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오신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이신 분께서 진정한 왕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백성임을 다시 한 번 다짐하고 확인하는 날이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드리면서 반성과 더불어, 다가오는 해에도 더욱 사랑 받는 해가 되도록 기도하는 날이기도 하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법정에서 빌라도와 '왕권'에 대해서 논쟁을 하시는 모습이다. 법정에서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 하는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자'(다니 7,13)와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 자'(시편 110,1)를 당신과 동일시하시면서 왕이심을 분명히 대답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와의 대화를 통해서 세속적인 메시아상을 배제하시고, 신적인 하느님의 아들이신 초월성을 엿보게 하신다.
고발에 따른 종교적인 소송 과정에서 예수님의 죄목은 정치적 메시아와 하느님의 신분에 관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빌라도 앞에서의 심문은 그와 반대로 그분의 신적 왕권(비록 빌라도는 예수님의 왕권에 대해서 알아듣지 못하였지만)이 토론되었다. 따라서 복음사가들은 그분의 수난이 그분의 신적 왕권을 계시하는 역설적인 기회가 되었다고 암시적으로 전하고 있다.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라는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그 호칭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라고 명백히 밝히신다. 즉 당신이 왕이심을 인정하시면서 황제의 경쟁자가 아니시라는 것을 말씀하신다.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빌라도는 다시 관저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를 불러 놓고 '네가 유다인의 왕인가?'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그것은 네 말이냐? 아니면 나에 관해서 다른 사람이 들려 준 말을 듣고 하는 말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빌라도는 '내가 유다인인 줄로 아느냐? 너를 내게 넘겨 준 자들은 너희 동족과 대사제들인데 도대체 너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고 물었다"(요한 18,33-35).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대답대신 빌라도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물어보신다. 당신의 동족인 유다인들이 당신을 정치적 왕권에 도전하는 세속적인 왕으로 고발하였는데, 빌라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즉 너도 유다인들처럼 정치적인 왕으로 여기느냐 하는 타진이었다. 빌라도는 일단 '내가 유다인인 줄 아느냐?'라고 하면서 유다인들과 같은 생각이 아님을 보여주면서 예수님께 도대체 무슨 일로 고발되었는지를 묻는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목이 나타나지 않아 예수님께 심문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시사한다. 예수님께서는 빌라도가 묻는 왕권에 대해서 분명하게 당신 입장을 드러내신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 왕국은 이 세상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 것이라면 내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다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결코 이 세상 것이 아니다.' '아무튼 네가 왕이냐?' 하고 빌라도가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왕이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오직 진리를 증언하려고 났으며 그 때문에 세상에 왔다. 진리 편에 선 사람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 하고 대답하셨다. 빌라도는 예수께 '진리가 무엇인가?' 하고 물었다"(요한 18,36-37).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세상 것이 아닌 진리의 왕국'과 유다인들이 고발한 '정치적인 왕국'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사실 이스라엘의 정치적 왕국은 기원전 587년에 나라의 멸망으로 끝난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고, 바빌로니아 유배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왕조의 치욕을 겪으면서 왕정복구를 시도한다. 유배 이후 즈룹바벨이 그의 사명으로 '다윗의 새싹-왕조'를 민족의 왕국으로 재건하려고 하였지만 일시적인 것이었고 그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따라서 무너진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자치권을 관대히 보호해주는 이교도 왕들의 권위에 복종하면서 그들을 위해서 공식 기도를 바치기까지 한다. 국가적 시련이 점점 길어지자 그들은 예언자들이 선포한 '마지막 시대-종말론적 왕국'에 대한 희망에 그 중심을 두기 시작한다.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 그들에게 미래의 왕과 왕국에 대한 기대는 항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시편은 미래의 왕, 정의의 왕, 승리의 왕, 그리고 평화의 왕을 그리워하면서 그분이 곧 오시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이교도들의 왕에 대한 굴복과 굴욕을 참고 받아들였다. 기원전 8세기에 이사야는 이미 미래의 왕을 향하여 시선을 돌려 그분의 탄생을 미리 환영하였다.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어깨에는 주권이 메어지겠고 그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입니다"(이사 9,6).
이 왕은 하느님 백성에게 기쁨과 승리, 그리고 평화와 정의를 가져다 줄 것으로 예언하면서, 야훼의 영으로 생기를 얻은 '이새의 새싹-다윗의 새싹'은 다시 지상의 낙원이 될 만큼 정의로써 다스릴 것이라고 믿었다. 미가는 그분의 오심에 대하여 같은 신뢰를 표명하였고, 예레미야는 다윗 왕조가 몰락하는 바로 그 시각에 다윗의 의로운 새싹이 장차 통치하리라고 예고하였다. 에제키엘도 똑같은 신앙을 고백하면서 일대 전환점을 정하였다. 에제키엘은 이스라엘의 목자인 새로운 다윗에게 군주라는 칭호를 붙이고 있다.
"내가 한 목자를 세워 주겠다. 그는 나의 종 다윗이다. 그가 내 양떼를 돌보는 목자가 되리라. 나 야훼가 몸소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나의 종 다윗이 그들의 영도자가 되리라. 나 야훼가 말하였다"(에제 34,23-24).
그리고 오늘 제1독서에서 다니엘은 그분의 주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되었다. 그의 주권은 스러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다니 7,14).
다니엘이 전하는 예언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누스 통치 아래 있었던 박해 상황에서 선포된 것이다. 다니엘은 환시를 통하여 그분에게 주권이 주어지고, 그의 주권은 영원할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다. 그리고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그 나라를 물려받아 길이 그 나라를 차지하고 영원토록 이어나가리라'(다니 7,18)는 것이다. 즉 그분이 하느님의 왕권을 차지하게 되고, 또한 그 백성이 그 나라를 물려받게 된다는 예언이다. 다니엘 이후 유다교 묵시문학은 하느님의 기적적인 개입에 대한 기대로 큰 희망을 가진다. 종말론적 왕에 대한 기대는 유다 백성 전체에게 열렬했다.
오늘 제2독서에 나오는 요한 묵시록은 그분의 오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그분은 구름을 타고 오십니다.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며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입니다. 땅 위에서는 모든 민족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입니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묵시 1,7).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메시아에 대한 기대는 종교적인 목표, 즉 최종적인 하느님의 통치를 간직하면서도 일반적으로 하나의 두드러진 정치적 색채를 띠었다. 오시는 메시아를 세속적이고 정치적 왕으로서 이국의 지배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줄 것으로 기대하였다. 따라서 순수한 종교적인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왕국에 대한 말씀은 일부 사람들에게 실망과 반감을 불러일으켰고, 세속적인 정치에 가담하면서 치부하고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게는 예수님을 모함하여 선동하기에 아주 쉬운 일이었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신 진리의 왕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빌라도는 다시 한 번 예수님께 '아무튼 네가 왕이냐?' 하면서 확인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왕국은 '진리의 왕국'임을, 당신께서는 오직 진리를 위해서 오셨음을 분명하게 하신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리의 왕국'은 곧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이다. 하느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하느님의 말씀이 세상에 전파되고 있는, 그리고 구원이 있는 진리의 왕국이다. 이 왕국의 왕은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고 시민이다.
오늘 한 해를 마무리 지으면서 다가오는 해에 주님의 백성으로서, 하느님의 은총 안에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