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일(복음: 루카 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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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4-12-09 08:55 조회74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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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이제 멀지 않아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 오신다. 그분은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루카 3,16).
오늘은 대림절 제3주일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어 태어나실 성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세상은 부푼 마음으로 술렁이고 있다. 하느님의 축복이 세상에 주어지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지난 주 세례자 요한이 외친 회개에 대한 가르침과 연결되어 있는 말씀이다. 즉 윤리적인 회개에 대한 가르침이다.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을 선포하면서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과 유다 지방, 그리고 요르단 강 부근으로부터 그에게 왔으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의 외침에 의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세례자 요한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심판은 임박한 것이었고 따라서 윤리적 회개의 필요성은 절박하였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진노가 모든 불의한 자들 위에 곧 쏟아지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이를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루카 3,9)라고 하였다.
그러면 복음을 묵상하기 전에 잠시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알아보자.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는 신약성서에 자주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부분의 지식은 신약성서에 보존된 전승으로부터 얻어지고 있다. 세례자 요한은 제사장 가문의 예언자였으며, 아버지는 사제 즈가리야였고, 그의 어머니는 엘리사벳이었다. 엘리사벳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친척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 대해서 “사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사람 중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루카 7,28a)라고 말씀하셨다.
세례자 요한의 성장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어린 시절부터 광야에서 살았으며, 아마도 어려서 에세네파의 사상과 실천에 친숙해졌을 것이라고 전해진다. 당시에 어떤 에세네파 공동체에서는 소년들을 양자로 삼았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가 어린 시절부터 그와 같은 공동체와 더불어 지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엄격한 율법주의자였던 세례자 요한은 모세의 정결법이 금하고 있는 것들을 먹지 않았다. 이를 마르코 복음 사가는 “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마르 1,6)라고 언급하고 있다.
루카 복음 사가에 의하면 세례자 요한의 회개와 세례는 특히 윤리적인 교훈을 동반하였다. 따라서 루카 복음 사가는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사람들에게 “이 독사의 족속들아 닥쳐 올 징벌을 피하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 보여라”(루카 3,7-8) 하고 질타한 세례자 요한의 외침을 부각시키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도 윤리적 교훈의 가르침이 얼마나 엄격하고 단호한지 잘 보여준다.
먼저 요한은 군중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군중은 요한에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요한은 ‘속옷 두 벌을 가진 사람은 한 벌을 없는 사람에게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이 남과 나누어 먹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였다”(루카 3,10-11).
여기에 나오는 군중은 ‘착한 뜻을 지닌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였다. 세례자 요한은 그들을 통하여 군중들을 가르쳤는데 당시의 탐욕적인 사회상을 공격한 것이었으며, 에세네파에서 행해졌던 것과 유사한 일종의 종말론적 형제애를 주장한 것이었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은 그들에게 서로 나누는 형제적인 사랑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라고 촉구하였다. 이러한 나눔에 있어서 초대 그리스도인들도 ‘성찬’에서 ‘공동 식사’(다해-부활 제5주일 참조)를 통하여 나눔의 형제애를 실천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세리들도 찾아와서 묻는데, 요한은 그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세리들도 와서 세례를 받고 ‘선생님, 우리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요한은 ‘정한 대로만 받고 그 이상은 받아 내지 마라’ 하였다”(루카 3,12-13).
그 시대에 세리들의 행위는 실로 위험수위에 달해 있었다. 그들은 로마인들의 하수인으로 세금을 거두어들였고,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과정에서 모은 부정직한 돈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난한 세리들은 탐욕과 부정을 부채질하고 탐했으며 모세의 정결법을 가장 많이 범한 자들이었다. 세리들 중에는 로마의 관리로서 영향력을 가지고 유다 공동체에 공헌한 사람들도 있었고 회당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들의 부정과 부정직한 생활로 인하여 천대받는 사회적 소외자들이었다. 세례자 요한이 그들에게 정한 대로만 받고 그 이상은 받아 내지 말라고 요구한 것은 그들로 하여금 생활을 완전히 바꾸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에게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움을 주는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군인들도 찾아와서 묻는다.
“군인들도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요한은 ‘협박하거나 속임수를 써서 남의 물건을 착취하지 말고 자기가 받는 봉급으로 만족하여라’ 하고 일러주었다”(루카 3,14).
당시에는 헤로데의 휘하에 있는 군인들과 유다인 저항 군인들이 있었다. 유다인 저항 군인들은 A.D. 6년에 로마가 세금 징수를 위해 인구 조사를 실시한 이래 적극적으로 활동해 왔던 극단주의자들 가운데서 열심 당원으로 알려진 애국자들이었다. 이들은 카이사르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산 속의 동굴이나 광야에 숨어서 살았다. 그러면서 당시 저항 군인들은 때때로 부유한 계층의 부정직한 사람들을 협박하기도 하고 재물이나 물건을 강제로 취하기도 하면서 겨우 생활을 유지했다. 세례자 요한이 군인들에게 남의 물건을 착취하지 말라고 한 것은 헤로데 휘하의 군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었지만 유다인 저항 군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요한의 설교는 모든 군인들의 생활에 상당히 어려움을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이 모든 윤리적 교훈들은 당시 유다 사회 공동체가 당면했던 문제들을 반영한 것이었다. 부의 편재와 과중한 징세와 권력의 남용 등으로 특징지어진 사회, 곧 멸망해 버릴 부패한 사회상이었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의 설교는 당시 유다 사회에 윤리적으로 큰 영향을 주는 가르침이며 충고였다.
또한 이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이기도 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종말론적인 재림이 지연되자 매일의 양식과 일상 용품들을 구해야 하는 어려운 생활을 하였다. 루카 복음 사가는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세례자 요한이 외친 윤리적 회개를 특별히 가르치고자 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사람들에게 나누어 가지라는 가르침은 절실한 것이었다. 세례자 요한의 가르침은 오늘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가르침이다.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던 터였으므로 요한을 보고 모두들 속으로 그가 혹시 그리스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이제 멀지않아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 오신다. 그분은 나보다 더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은 손에 키를 들고 타작 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루카 3,16-17).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신분을 잘 알고 있었다. 자기가 베풀고 있는 세례의 의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세례자 요한은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한 자격조차 없다”라는 말로 모든 것을 답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은 주님에 앞서 온 선구자로서 그분의 길을 열어드리기 위해서 회개를 선포하고 세례를 베푼 사람이었음을 분명하게 한다.
오늘날 우리도 그들처럼 “저희가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하고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세례자 요한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그리고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서 보여야 한다. 모든 회개의 출발점은 먼저 자만심을 버리는 것이고, 말씀의 빛을 받아 자신이 변화되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제 주님께서 탄생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가르침대로 윤리적인 삶과 생활을 회개하고 주님의 탄생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선생님, 우리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