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일(복음: 루카 1,1-4; 4,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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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1-20 08:57 조회37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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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말씀을 선포하시다
“그러하오니 이 글을 보시고 이미 듣고 배우신 것들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루카 1,4).
오늘은 연중 제3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전반부는 루카 복음 사가가 복음서를 쓰게 된 동기와 목적에 대해서 데오필로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고, 후반부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고향인 나자렛에 가셔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신 내용이다.
그러면 전반부인 루가 복음 사가의 편지를 보자.
“존경하는 데오필로님,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난 그 일들을 글로 엮는 데 손을 댄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들이 쓴 것은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사실 그대로입니다. 저 역시 이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 둔 바 있으므로 그것을 순서대로 정리하여 각하께 써서 보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하오니 이 글을 보시고 이미 듣고 배우신 것들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루카 1,1-4).
루카 복음 사가는 복음서를 데오필로에게 서한을 보내는 형식으로 쓰는데, 그가 쓴 사도행전 역시 데오필로에게 헌정하고 있다. 데오필로만이 신약성서에서 유일한 영예의 수신인으로 언급되고 있다.
데오필로는 누구인가? 데오필로는 헬라어로 ‘하느님의 친구’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데오필로에 대해서는 루카 복음과 사도행전에 기록된 목적과 기록 당시의 문학적 관습을 기초로 해서 추측할 수 있는 것 이외에 알 길이 없다. 데오필로는 어느 한 개인일 수도 있고 ‘하느님의 친구’ 중에 누구나 될 수 있는 상징적 가상 인물일 수도 있다. 따라서 ‘하느님의 친구’ 중에 하나라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데오필로가 될 수 있다. 그 이유는 루카 복음 사가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쓸 때 그리스도교 신앙과 역사, 그리고 기원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모든 경건한 그리스도인들과 예비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는 루카 복음 사가가 주요 독자인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하면서 데오필로에게 보내는 것처럼 썼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편지를 썼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만약 데오필로가 실재 인물이었다면 과연 누구일까? 데오필로가 실재의 인물이었다는 주장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데오필로의 이름이 가명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에 어떤 이교도인이나 높은 지위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이름이나 신분을 감추었다는 이야기이다. 둘째는 각하라는 말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총독이나 행정장관 같은 로마의 관리였을 것이라고 하면서, 바오로 사도의 재판을 청구했던 로마의 관리인이거나 혹은 바오로가 최종 판결을 받을 때 바오로 사도의 논거를 듣기로 되어 있는 집정관이라는 주장도 있다. 왜냐하면 루카 복음 사가는 바오로 사도와 아주 가까운 사이로 바오로 사도가 로마로 압송되어 갈 때 함께 로마에 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셋째는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로마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사촌인 플라비우스 클레멘스가 비밀리에 데오필로라는 이름을 사용했기에 그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있다. 왜냐하면 그의 아내 도미틸라가 세례는 받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교 신앙에 깊은 관심과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그리스도인이 형제인 그리스도인에게 ‘각하’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말도 있고, “이미 듣고 배우신…”이라는 말로 미루어 보아 탁월한 그리스도인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당시에 예비 신자로 있다가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쓰여지는 도중에 세례를 받았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또 한편으로 ‘각하’라는 말이 어떤 지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지만 관례적인 인사말로서 그리스도인들이 편지할 때에도 서로에게 쓸 수 있었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복음서가 쓰여질 당시 A.D. 80년경 기독교 공동체에 약간의 의미를 주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루카 복음 사가가 그리스도교 공동체뿐만이 아니라 개개인을 교육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복음서를 기록했다는 주장이 있다. 이에 따르면 데오필로는 당시에 교육받고 있는 층을 대표로 하는 가상적인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데오필로는 그리스도인일 수도 있고, 예비 그리스도인일 수도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설로 누가 데오필로인지는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그러면 이번 기회에 루카 복음 사가와 복음서에 대해서도 잠시 알아보자. 루카 복음 사가는 바오로 사도의 친한 동료이면서 친척이었고 로마에서 바오로가 투옥되어 있는 동안 그와 함께 했던 동반자였다. 사도 행전을 썼다는 설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집필했다고 전해진다. 루카 복음 사가가 팔레스티나의 지형이나 유다인들의 관습과 풍습을 바로 알지 못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방인 그리스도인이라고도 전해진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에 관심을 가진 이방인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상대로 복음을 썼다고 전해진다.
루카 복음서는 복음서를 쓰기에 앞서 서문을 서신 형식으로 썼으며, 여러 차례 팔레스티나(이스라엘)의 지리나 관습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방인인 독자들에게 흥미 없는 구약의 인용을 가급적 피하면서 이방인들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루카 복음서의 집필 장소에 대해서는 지중해 해변에 위치한 가이사리아, 데카폴리스, 소아시아, 아카이아, 로마 등을 추측하지만 확실치가 않고 다만 저자가 이스라엘의 지리와 관습에 서툴고 이방인 전도에 큰 관심을 표명한 사실을 볼 때 팔레스티나(이스라엘) 밖의 지역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 복음서의 집필 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으나 예루살렘 성전 파괴(A.D. 70년) 이후 A.D. 80년경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논리가 정연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복음서를 질서 있게 조화시켰으며, 유사한 사건들의 불필요한 중복을 피하고 문체가 간결한 루카의 글은 한 폭의 그림 같다고 말해지기도 한다. 또한 의학 용어가 자주 등장하고 예리한 관찰력과 심리 묘사가 뛰어나 루카의 직업을 의사로 보기도 한다. 루카의 고향 역시 불확실하다. 다만 루카를 사도행전 13장 1절의 루기오와 동일인으로 여기는 교회 전승에 의하면 그의 고향은 수리아의 안티오키아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다른 자료들을 보면 루카의 고향은 필립비일 가능성도 있다고 전한다. 필립비의 중요성에 대한 많은 자랑이 그곳이 루카의 고향일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루카는 디도와 형제라고도 전해지는데(2고린 8,12), 루카가 쓴 사도행전에는 디도가 언급되지 않은 반면 바오로의 서신에는 디도가 중요하게 언급되었기에 그렇게 추측한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 보자. 후반부인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전도를 시작하시고, 당신 고향에 가시어 안식일에 회당에서 성서를 읽으시고 가르치신 내용을 전하고 있다. 복음은 예수님의 전도 시작에 대해서 이렇게 전한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가득히 받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셨다. 예수의 소문은 그곳 모든 지방에 두루 퍼졌다. 예수께서는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셨다”(루카 4,14-15).
예수님께서 행하신 전도 시작의 배경을 보면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가셔서 40일 동안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가득히 받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어 전도를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전도를 보면 갈릴래아 모든 지방에 두루 다니시며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많은 기적을 행하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당신의 고향에도 들리신다. 이를 오늘 복음은 이렇게 전한다.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난 나자렛에 가셔서 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서를 읽으시려고 일어서서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 들고 이러한 말씀이 적혀 있는 대목을 펴서 읽으셨다.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들던 사람에게 되돌려주고 자리에 앉으시자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예수에게 쏠렸다”(루카 4,16-20).
예수님께서 얼마 동안 고향에 머무셨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다만 안식일이 되자 회당에 들어 가셔서 성서를 읽으셨다고 전한다. 당시에 회당은 이스라엘의 신앙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회당이란 말은 ‘함께 모이다’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Synagein’에서 유래한 것으로 집회 장소를 뜻한다. 오늘날에는 성전으로 이해되기도 하는 회당은 고대 유다교에서 예배 의식, 집회, 학습 장소로 쓰였던 공동체 예배당이었다. 회당의 기원에 대해서는 B.C. 586년에 솔로몬 성전이 파괴된 이후 임시로 개인의 집들이 공공 예배와 종교 교육의 장소로 쓰이면서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다만 유다인들이 널리 사용했던 회당은 B.C. 3세기경부터 A.D. 70년 티투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유다인들의 제의와 제사장 제도를 종식시킬 때까지 이스라엘 전역에 크게 늘어났는데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로써 B.C. 3세기 이후부터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지 않고 각 지방에 있는 회당에서 예배를 드렸고 하느님의 말씀을 학습할 수 있었다. 하느님의 말씀은 주로 율법학자들이나 교사들이 담당하였다. 이에 루카 복음 사가는 오늘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르시어 성서를 읽으시고 가르치셨음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읽으신 대목은 메시아에 대한 이사야 예언서였다.
예수님께서 읽으신 이사야서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주 야훼의 영을 내려주시며 야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고 나를 보내시며 이르셨다. ‘억눌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찢긴 마음을 싸매 주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려라. 옥에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여라’”(이사 61,1).
이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전한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기쁜 소식의 선포였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읽으시고 가르치신 말씀에 압도되어 눈이 모두 예수님께 쏠렸고 예수님의 지혜와 능력에 놀랐다고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의 신성에 압도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신다.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메시아가 오시면 이루어질 해방과 자유의 말씀이 지금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음을 선포하신다. ‘지금 이 자리’란 예수님께서 당신이 곧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메시아이심을 고향 사람들에게 선언하신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자유와 해방에 대한 말씀의 반응은 먼 옛날 에즈라가 선포한 하느님의 약속을 연상케 하였다. 오늘 제1독서에 이렇게 나온다.
“에즈라는 백성들이 알아듣고 깨칠 수 있도록 하느님의 법전을 읽으며 풀이하여주었다. 온 백성은 법전에 기록되어 있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들으면서 울었다”(느헤 8,8-9a).
이스라엘은 바빌론 유배 이후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모든 민족이 한데 모여 해방의 축제를 드리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함께 음식을 나누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세켐과 예루살렘에서 계약을 체결하고 경축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였다. 이스라엘은 40년간의 바빌론 유배에서 풀려 나와 에즈라가 읽는 하느님의 법전을 들으면서 은혜에 대한 감사와 사랑과 돌보심, 그리고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누리면서 나라의 재건을 다짐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이러한 메시아의 자유와 해방의 말씀이 예수님에 의해서 고향 사람들에게 주어지려 하고 있다. 참으로 감동적인 선포였다.
성서 말씀은 단지 역사책이나 교훈서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몸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이다. 예수님의 선포는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 ‘현재’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선포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인들은 매 미사 때마다 성전에서 읽는 하느님의 말씀에 깊은 감동을 느끼며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서 참기쁨과 사랑, 자유와 해방을 간직해야 한다.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