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일(복음: 루카 6,17.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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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2-10 09:13 조회28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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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루카 6,20).
오늘은 연중 제6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에 대한 말씀이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행복에 대해서 예수님의 ‘산상설교’로서 여덟 가지로 구분(가해-연중 제4주일 참조)하여 전하고 있는데 루카 복음 사가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을 대비하여 전하고 있다. 루카 복음 사가는 오늘의 배경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이르러 보니 거기에 많은 제자들과 함께 유다 각 지방과 예루살렘과 해안 지방인 띠로와 시돈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루카 6,17).
루카 복음 사가는 오늘 복음의 배경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실 루카 복음 사가는 말씀의 배경이나 시간적 배열을 무시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만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때문에 말씀의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다른 공관 복음서를 보아야 한다. 오늘 루카 복음 사가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와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특히 띠로와 시돈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고 전하고 있다.
당시에 예수님의 가르침과 병자들을 고쳐주신 기적의 소문이 온 이스라엘과 인근 이방인 지역에까지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루카 복음 사가는 특히 이방인의 고대 항구 도시인 띠로와 시돈(가해-연중 제20주일 참조)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왔음을 강조하면서 진리와 구원에 대한 이방인들의 갈망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질병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에 대한 말씀을 하셨다. 병고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참행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자 하신 것이다.
그러면 잠시 행복과 불행에 대한 성서적 개념에 대해서 알아보자. 행복과 불행은 마음 안에 있으며 가치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즉 행복과 불행이란 무엇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행복을 생활에서 부족함이 없는 만족한 상태, 또는 기쁨을 느끼는 흐뭇한 상태라고 말한다. 취하고, 채워지고, 누리면서 불편함이 없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부족하고, 고통스럽고, 병에 걸리고,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자기 생각에 미치지 못하면 불행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성서에서 말하고 있는 행복은 인간이 갈망하는 일반적인 행복과는 다르다. 성서는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말한다. 하느님께서 마음 안에 계시고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살면서 하느님의 생명과 구원과 축복을 얻는 것을 행복이라고 가르친다. 성서는 삶의 기준이 하느님일 때 행복이라고 가르치며, 따라서 행복은 하느님의 은총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구약성서에서는 생명과 구원과 행복을 얻으려면 하느님의 길을 택하고, 율법을 따라 걸으며, 지혜에 귀를 기울이고, 생명을 찾아내며 실천하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주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한마디로 의인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최고의 행복은 하느님 안에 있음을 가르친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행복을 부인하고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성서에 보면 야훼를 하느님으로 섬기는 백성들의 행복에 대해서 말하는데, 훌륭한 아들과 아름다운 딸을 둔다든지, 가득한 식량과 수많은 가축, 세상의 즐거움과 기쁨을 갖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성서는 행복을 누리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데 부정한 일을 하지 않고 재산을 모으는 것,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것 등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행복은 인간이 탐욕을 부리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맞는 합당한 자세를 가지고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써 모든 행복이 예수님 안에서 실제로 주어진다. 예수님께서 사신 삶이 곧 행복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성서가 제시하는 행복을 완전히 가지고 사셨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오늘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행복론은 예수님 마음에 내재되어 있는 행복 그 자체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행복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에 대해서 구체적이면서 대조적으로 말씀하신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덕행의 생활 형태를 찬양하면서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들을 극단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상호 보완적이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의 의미를 알아들음으로써 행복의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사람의 아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내어 쫓기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럴 때에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루카 6,20-23).
가난한 사람들이란 궁핍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말한다. 세상에 마음을 비우고 탐욕이나 명예, 권력이나 이기심에서 벗어난 빈 마음을 말한다. 그리고 굶주린 사람들이란 부정직하게 착취하거나 부정을 저지르면서까지 배부르게 살지 않고 열심히 땀 흘리며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을 말하며, 세상의 고통과 아픔으로 우는 사람들이란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면서 아픔과 고통을 당하는 의인들을 말한다. 하느님 나라와 주님을 위해 일하다가 박해를 당하는 의인들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한 사람들은 모두가 하느님을 마음 안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이 세상에서는 일시적으로 가난이나 굶주림, 아픔과 슬픔, 고통과 박해를 당하지만 훗날 하느님께로부터 보상을 받게 될 것이며 이들이야말로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불행한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루카 6,25-26).
배불리 먹는 사람들이란 부정직하게 벌어들이고, 형제들의 굶주림을 외면하면서 자신의 생활만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을 말하며, 웃고 지내는 사람들이란 세상에서 부정직하게 살면서 이기적인 만족을 누리고 온갖 세속적인 기쁨을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다. 진실한 웃음과 기쁨은 정직과 희생과 양보에서 온다. 하느님을 마음에 두고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위해서만 살아야 한다. 자신의 칭찬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따라서 자신의 칭찬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불행하다.
행복은 하느님을 마음속에 두는 것이며, 불행은 세상 것을 마음에 두고 집착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탐욕적인 재물이나 만족, 이기심이나 명예욕, 그리고 세속적인 것은 인간적인 즐거움이나 기쁨은 되지만 참 행복은 아니다. 그것은 불행을 자초할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행복을 누리시며 사신 분이셨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행복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을 마음속에 담고 하느님의 말씀 안에서 주님의 삶을 따라 살아야 한다.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