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7주일(복음: 루카 6,2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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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2-17 09:11 조회27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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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본받아 원수를 사랑하라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오늘은 연중 제7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원수를 사랑하라: 보복하지 마라. 남을 비판하지 마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에 대한 말씀을 하신 후에 율법의 한 법령인 복수법에 대해서 새로운 가르침을 주신다. 율법에는 고대 유목민들이 사용했던 복수법이 있는데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한다해서 ‘동태 복수법’(가해-연중 제7주일 참조)이라고 부르는 법조문이다. 이 법령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새롭게 가르쳐주신다.
그러면 먼저 예수님께서 하신 복음 말씀을 들어 보자.
“그러나 이제 내 말을 듣는 사람들아, 잘 들어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주어라. 그리고 너희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라. 누가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 주고 누가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마저 내어주어라.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빼앗는 사람에게는 되받으려고 하지 마라.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너희가 만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한다. 너희가 만일 자기한테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잘해 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그만큼은 한다. 너희가 만일 되받을 가망이 있는 사람에게만 꾸어 준다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것을 알면 서로 꾸어 준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남에게 좋은 일을 해 주어라. 그리고 되받을 생각을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며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다. 그러니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27-36).
예수님의 말씀처럼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축복해줄 수 있을까? 사실상 이 법을 인위적으로 실천하고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오직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본받음으로써 실천할 수 있는 것이며 사실상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비에 대한 성서적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자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첫째 단어는 ‘라하밈’(Rahamim)이다. 이는 본능적 애착과 사랑을 표현하는 말이다. 셈족들은 이런 자비가 어머니의 품 안에, 또는 내면에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즉 부모나 형제의 심장 안에 있는 깊은 애정이나 사랑이다. 이런 자비는 불쌍히 여기는 내적 마음으로서 조건 없이 곧 행위로 나타난다. 이런 마음은 비극적인 사건이나 불행한 사건에 대해서 즉시 동정심을 나타내고, 죄에 대해서는 용서를 나타낸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베푸는 본능적인 애정이나 사랑과 같은 것이다.
자비를 나타내는 둘째 단어는 ‘헤세드’(Hesed)이다. 이는 의식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자비를 뜻한다. 이 자비는 본능적 애착이나 사랑이 아니라 의식적 의지에서 나오는 실천적 사랑이다. 의무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충실성에서 나오는 책임 있는 행위인데 연민의 정, 자비심, 동정심, 너그러움, 선, 심지어는 아주 방대한 의미로 사용되는 은총 등을 의지를 가지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이 하느님에게서 나타나는데, 구원의 역사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계약에 의한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당신의 연민의 정을 보여 주시며 자비를 베풀어주셨다.
이스라엘의 경건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비에 대하여 확고부동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피조물이면서 선택된 백성이고, 계약에 의한 당신의 백성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느님의 자비는 시나이 산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당신 존재의 신비를 드러내시는 동안 백성들이 산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하느님을 배반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용서하셨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당신과 계약을 맺은 백성이기에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 그리고 당신의 거룩하심이 손상되지 않는 범위에서 연민의 정으로 모든 죄를 용서한다고 선언하셨다.
“나는 야훼다. 야훼다. 자비와 은총의 신이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아니하고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신이다.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베푸는 신, 거슬러 반항하고 실수하는 죄를 용서해 주는 신이다”(출애 34,6-7).
하느님께서는 거룩한 구원의 역사 전반에 걸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어 벌을 받아야 할 때도 그들이 용서를 청하고 당신께 외치기만 하면 즉시 동정심에 사로잡히셨다. 하느님께서는 판관기에서 불충실한 자에 대하여 분노를 터뜨리시다가도 곧 그들에게 구원자를 보내시는 자비를 보여주시고, 호세아서에서는 하느님께서 이제는 더 이상 이스라엘에게 자비를 베푸시지 않고 그들을 벌하기로 마음먹으셨다가도 마음을 돌리셨다. 호세아서는 하느님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네가 너무 불쌍해서 간장이 녹는구나. 아무리 노여운들 내가 다시 분을 터뜨리겠느냐”(호세 11,8-9).
예언자들 역시 항상 하느님의 마음속에 있는 자비를 알아보고 있었다. 미가서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 같은 신이 어디 있겠습니까? 남에게 넘겨줄 수 없어 남기신 이 적은 무리, 아무리 못할 짓을 했어도 용서해 주시고, 아무리 거스르는 짓을 했어도 눈감아주시는 하느님, 하느님의 기쁨이야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시는 일 아니십니까?”(미가 7,18)
죄를 지은 인간에 대해 하느님께서 이토록 마음 아파하시는 것은 당신의 백성들이기에 당신께 돌아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마음속 깊은 곳에 항상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자비 자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창조주를 본받아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도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하심을 본받으라고 가르치신다. 즉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축복해 주라고 가르치신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에 대해서 특별히 당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자 하셨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주님의 제자들이 지녀야 할 신앙 덕목이기 때문이다. 이 가르침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실천적 계명이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계명을 말씀하신다.
“남을 비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비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남에게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말에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하게 담아서 너희에게 안겨주실 것이다. 너희가 남에게 되어주는 분량만큼 너희도 받을 것이다”(루카 6,37-38).
원수를 사랑하고 보복하지 않는 것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본받는 형제에 대한 사랑의 행위라면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은 벌과 응보에 대한 말씀이다. 하느님 나라는 생명과 행복이 가득한 곳이지만 성서는 하느님의 벌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죄는 필연적으로 벌을 초래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시지만 또한 심판하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따라서 남을 비판하면 자기도 비판을 받을 것이고, 남을 단죄하면 자기도 단죄받을 것이므로 남을 비판하고 단죄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보상과 같은 보수는 종교 생활의 목표는 아니지만(영원한 생명이 종교 생활의 목표이기 때문임) 종교에서 하나의 기본적인 요소이다. 구세사의 초기부터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약속하셨고 성서의 마지막 장에서도 다시 자기 행적대로 갚아주기 위한 상을 제시하고 계신다. 하느님께서는 공정하고 정의로우신 주인이시므로 맡겨진 일과 남에게 베푼 행위에 대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주신다.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신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본받아 형제를 진심으로 사랑하도록 가르치시며 형제에게 한없는 자비를 베풀 것을 요구하신다. 이는 하느님의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사랑의 교육이다.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