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일(복음: 루카 9,28b-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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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3-10 08:59 조회30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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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볼 산에서의 신비적 체험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그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빛났다”(루카 9,28-29).
오늘은 사순절 제2주일이다.
매년 사순 제2주일에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올해는 루카 복음 사가가 전하는 이야기이다. 루카 복음 사가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는 여정에 있었던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와 함께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을 전하고 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의 배경을 보면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있고 난 후 제자들에게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를 하신 뒤의 일이었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 사가는 수난에 대한 첫 번째 말씀을 하신 뒤 엿새 후에 있었던 일로 전하는데 루카 복음 사가는 팔 일 후의 일로 전하고 있다. 날짜에 대해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 사건은 예루살렘의 마지막 여행이 시작되기 직전 예수님께서 북쪽으로 가시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제자들이 잠들었다가 깨어난 것으로 보아 변모 사건이 일어난 것은 밤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에는 ‘높은 산’으로, 베드로 후서에는 “거룩한 산”(2베드 1,18)으로 나온다. 성서에서는 이 산의 이름을 정확하게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일부 학자들은 변모 사건이 있기 바로 전에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가이사리아 필립보 지방에서 일어났고, 변모 사건 후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갈릴래아를 지나가셨다고 해서 이 거룩한 산을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북쪽에 있는 헤르몬 산의 남쪽 언덕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4세기에는 예루살렘의 시릴과 제롬이 이 거룩한 산을 다볼 산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교회는 6세기 이후 다볼 산에 교회를 세웠고 이 사건을 기념하는 순례가 이루어졌다. 1924년에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이곳에 있었던 교회를 보수하고 재건하여 새 교회를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변모 기념 성당’이다.
다볼 산은 갈릴래아에서 남서쪽으로 약 16km 떨어진 지점의 언덕으로 이즈르엘 평야 가운데 있는 해발 570m의 산이다. 고대로부터 이 산은 북방 민족들과 경계를 이루고 있었으며 예언자 드보라의 예언대로 바락이 가나안 군대와 싸워서 승리했던 하느님 영광의 산 증거로서 이스라엘인들에게는 성스러운 산이었다. 하느님께서 바락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납달리 지파와 즈블른 지파에서 만 명을 뽑아 다볼 산으로 이끌고 가거라. 그러면 나는 야빈의 군대 지휘관 시스라를 키손강으로 유인해 내겠다. 내가 그의 전군을 병거대까지 유인해 내다가 네 손에 붙이리라”(판관 4,6a-7).
시편에서도 다볼 산과 헤르몬 산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북녘과 남녘을 만드신 이도 당신이오니 다볼 산도 헤르몬 산도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옵니다”(시편 89,12).
다볼 산은 그 아름다움이 빼어나며 약간 가파르면서도 균형이 잡혔고 산봉우리가 둥그스름하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어느 방향으로든 아름다운 풍경이 보이는데, 북쪽으로는 나자렛의 높은 지대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멀리 갈멜의 갑이 보인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갈릴래아 호수와 더 멀리 산지를 끼고 도는 요르단 강이 보이며, 남쪽 산기슭에는 이즈르엘 평야가 보인다. 신약에서는 다볼 산이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이 바로 이 산에서 일어났다는 전승과 더욱이 A.D. 32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가 이 산 꼭대기에 성당을 세웠기에 중요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당신 소명의 실현을 위하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세 제자들을 데리고 거룩한 산으로 올라가시어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게 하셨다. 따라서 이 거룩한 변모 사건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체험한 중요한 사건이 된다. 베드로는 훗날 이 사건을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알려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강림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꾸며 낸 신화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신지를 우리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분은 분명히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영예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최고의 영광을 지니신 하느님께서 그분을 가리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고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려왔을 때의 일입니다. 우리는 그 거룩한 산에서 그분과 함께 있었으므로 하늘에서 들려오는 그 음성을 직접 들었습니다. 이것으로 예언의 말씀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2베드 1,16-18).
베드로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을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한 사건으로 깊이 간직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체험을 증언했다.
그러면 루카 복음 사가가 전하는 예수님의 변모 사건 이야기를 살펴보자.
“이 말씀을 하신 뒤 여드레쯤 지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그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빛났다. 그러자 난데없이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께서 멀지 않아 예루살렘에서 이루시려고 하시는 일 곧 그의 죽음에 관하여 예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나 예수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거기 함께 서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루카 9,28-32).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빛난 것은 하느님의 현시로서 신적인 영광스러움이었다. 그러나 이 영광스러움은 최후의 영광은 아니라 먼 옛날 모세의 얼굴을 빛나게 한 것처럼 잠시 예수님의 옷과 얼굴을 비추었을 뿐이었다. 최후의 영광스러움은 십자가를 짊어지심으로써 비로소 주어짐을 암시하고 있다. 이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머지 않아 예루살렘에서 이루시려는 일, 수난에 대해서 예수님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는 예수님께서 골고타에 오르시기에 앞서 죽음과 부활의 신비가 하느님께서 이루고자 하신 뜻임을 분명하게 하신 것이었다. 제자들은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이를 목격함으로써 하느님의 현시 앞에서 예수님께서 당하시게 될 죽음과 부활을 다시 듣게 되고 하느님 나라를 체험했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 면전에서 가지는 종교적인 두려움을 가졌다.
“그 두 사람이 떠나려 할 때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 하고 예수께 말하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자기도 모르고 한 말이었다.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사이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뒤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사라져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에 질려 버렸다”(루카 9,33-34).
이는 하느님의 현시와 신비스러운 하느님 나라를 체험한 의미심장한 내적 변화였다. 하느님과 함께 지내고 싶은 인간의 본성을 나타낸 경외심이었다. 그래서 복음서는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자기도 모르게 한 말이었다”라고 전하고 있으며 이때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 왔음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이때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아들, 내가 택한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그친 뒤에 보니 예수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제자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자기들이 본 것을 얼마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루카 9,35-36).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동안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구름 속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느님의 음성은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시며, 예수님께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하느님의 뜻임을 확신시켜 주었다. 이때 제자들은 하느님의 무서운 현존을 느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변모 사건은 가이사리아에서 있던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함께 사람의 아들의 수난과 영광에 들어가실 계시를 확고하게 해준 것이었다. 또한 하느님의 가장 사랑받는 아들이시며, 초월적이시고, 하느님의 영광 자체를 향유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위격을 계시해준 위대한 사건이었다. 따라서 변모 사건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하느님의 아드님로서의 존엄성을 충만히 나타내주실 영광, 즉 파스카의 사건을 미리 보여준 전표였다.
“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