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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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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4주일(복음: 루카 15,1-3.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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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3-24 08:55 조회264회 댓글0건

본문

 

잃었던 아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루카 15,31-32).

 

오늘은 사순절 제4주일이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잃었던 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의 회개와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생생하고도 극적인 비유로 들려주고 계신다. 회개한 아들이 밝은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언제나 열려있는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이 참으로 감동적이며, 죄에 대해서 진심으로 참회하고 아버지께 돌아가는 아들의 모습은 새로운 삶과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갈망을 핵심적이고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잃었던 아들’의 비유는 방황하는 당신 자녀들을 끝끝내 버리지 못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하심을 보여준 것이다.

복음은 오늘 이야기의 배경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고 있구나!’ 하며 못마땅해 하였다”(루카 15,1-3).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과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도중에 여러 마을과 동네에 들르시어 가르치셨는데 그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거기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여들자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대단히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잃었던 양 한 마리’와 ‘잃었던 은전’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오늘의 복음인 ‘잃었던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 이야기를 통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같은 사람들을 항상 기다리시며 받아들이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하심을 가르쳐주고자 하셨다.

잃었던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과연 작은 아들의 입장인지, 아니면 큰아들의 입장인지를 생각케 하는 딜레마(Dilemma)에 빠지게 한다. 우리 자신은 ‘작은 아들일까? 아니면 큰아들일까?’

그러면 먼저 작은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제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재산을 갈라 두 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자기 재산을 다 거두어 가지고 먼 고장으로 떠나갔다. 거기서 재산을 마구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마침 그 고장에 심한 흉년까지 들어서 그는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그 고장에 사는 어떤 사람의 집에 가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주인은 그를 농장으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하도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워 보려고 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서 그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 어서 아버지께 돌아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으니 저를 품꾼으로라도 써주십시오 하고 사정해 보리라.’ 마침내 그는 거기를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 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 ‘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먹고 즐기자!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루카 15,11-24).

작은 아들은 떠나본 후에야 평화스러운 삶이란 아버지 곁을 떠난 삶이 아니라 아버지의 품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것은 탕자가 된 작은 아들의 귀환을 못내 기다리다가 멀리서 그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맞아주는 아버지의 모습이다. 아버지는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 왔다” 하면서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주었다. 작은 아들에게 잃었던 품위를 다시 찾게 해주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실로 감동적이다. 이는 죄인에 대한 하느님 아버지의 뜨거운 사랑과 자비로우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문제는 큰아들의 태도이다. 복음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밭에 나가 있던 큰아들이 돌아오다가 집 가까이에서 음악 소리와 춤추며 떠드는 소리를 듣고 하인 하나를 불러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하인이 ‘아우님이 돌아왔습니다. 그분이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주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서 달랬으나 그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 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그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 주시다니요!’ 하고 투덜거렸다. 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하고 말하였다”(루카 15,25-32).

우리는 큰아들의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의 태도는 아버지의 집에 살면서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큰아들은 돌아온 동생을 아버지처럼 반갑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돌아온 동생에게 창녀들한테 빠져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 버렸다고 불평하면서 동생을 용서하지 않는다. 오히려 동생을 용서하는 아버지의 자비심에 큰 불만을 가진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의 잘못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아량이 부족할 때가 많다. 큰아들의 태도를 보면서 이웃의 조그마한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고 죄인 취급하는 우리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시기에 작은 아들의 모습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무엇인지,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가 얼마나 위대하고 깊은지 묵상해 봐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께 돌아와 잘못을 뉘우치고 당신과 화해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 하시면서 돌아오는 탕아를 받아들이고 계신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한없이 기다리신다.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