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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복음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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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만찬 성목요일(복음: 요한 1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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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4-14 08:49 조회163회 댓글0건

본문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 식사였던 아가페


“과월절을 하루 앞두고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요한 13,1).

 

오늘은 ‘주님 만찬 성목요일’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때가 다 된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나누신 날이다. 교회는 매년 주님 만찬 성목요일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나누신 마지막 만찬의 의미를 묵상하면서 요한 복음 사가가 전하는 그날의 모습을 상기한다. 복음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과월절을 하루 앞두고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저녁을 잡수실 때 악마는 이미 가리웃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요한 13,1-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나누신 만찬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양식인 성체성사의 원형이 된다. 금년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성체성사인 ‘성찬’에서 나눈 ‘공동 식사’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과월절 음식(가해-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 참조)은 하느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역사 안에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을 찬양하며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린 음식이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은 매년 과월절 음식을 나누면서 하느님의 업적을 찬양하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메시아가 하루 빨리 오셔서 고통스러운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시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그런데 메시아는 이미 세상에 오셨고 제자들과 함께 과월절 음식을 나누고 계셨던 것이다. 세상에 오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과월절 음식을 나누시면서 과월절 음식에 새로운 의미를 주시고 가르치셨는데 그 가르침이 주의 만찬인 ‘성찬’이며, 오늘날 새로운 파스카 음식인 성체성사이다.

따라서 초대교회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세우신 성체성사의 원형이며 주의 만찬인 ‘성찬’을 성실하게 거행하였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준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음을 선포하고 이것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십시오”(1고린 11,23-26).

제자들에게 새로운 파스카의 의미를 주신 주의 만찬인 ‘성찬’(나해-성체 성혈 대축일 참조)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날마다 성실하게 거행한 예배였다. 사도행전은 주님께서 거행하신 주의 만찬을 초대교회가 그대로 전해 받아 거행하였음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갔다”(사도 2,46-47).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거행한 주의 만찬인 ‘성찬’은 지금의 성체성사인 ‘미사’와는 다소 다른 모습이었던 것 같다. 주의 만찬인 ‘성찬’을 어떤 형식으로 지켰는가는 확실치 않으나 당시에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성찬식’과 더불어 ‘공동 식사’를 함께 나눈 것으로 전해진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혹독한 박해가 일어나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을 더욱 굳게 믿었으며 곧 오시리라는 희망과 기다림 속에서 날마다 모여 기도하고 ‘성찬’을 거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만찬인 ‘성찬’에서 ‘성찬식’과 함께 거행한 ‘공동 식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성찬식’과 함께 거행한 ‘공동 식사’를 단순하게 신도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바오로 사도는 고린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공동 식사에 대해서 이렇게 충고하고 있다.

“여러분이 한 자리에 모여서 나누는 식사는 주님의 성찬을 나누는 것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여서 음식을 먹을 때에 각각 자기가 가져 온 것을 먼저 먹어 치우고 따라서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술에 만취하는 사람도 생기니 말입니다. 각각 자기 집이 없어서 거기에서 먹고 마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내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이래도 여러분을 칭찬해야 하겠습니까? 이 일만은 칭찬할 수 없습니다”(1고린 11,20-22).

바오로 사도는 ‘공동 식사’가 주의 만찬인 ‘성찬’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초대 그리스도인들 역시 주의 만찬인 ‘성찬’에서 ‘성찬식’과 함께 거행한 ‘공동 식사’를 성찬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고린토인들에게 성찬을 경건하고 엄숙하게 수행해야 함을 말하면서 공동 식사를 성사적이고 엄숙한 종교적인 의미로 가르쳤는데, 특히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는 데 있어서 무절제한 잔치를 즐기려는 것을 배격하면서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는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을 강조하였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성사적이고 종교적인 이 ‘공동 식사’를 ‘아가페’라고 불렀다. 즉 ‘아가페’라는 새로운 단어로 이 ‘공동 식사’를 불렀던 것이다. 왜 ‘아가페’라는 말로 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공동 식사를 종교적인 단어로서 특별한 사랑의 의미를 나타내고자 했던 것 같다. 사실 ‘아가페’라는 단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부여된 ‘사랑’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명사이다. 오늘날 ‘아가페’의 뜻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신을 송두리째 내어주신 십자가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처럼 ‘공동 식사’란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실천하는 친교적이고 자선적이며, 성사적인 성격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거행한 ‘성찬’에서 ‘성찬식’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에, 그리고 ‘공동 식사’인 아가페에 대해서는 ‘부활 제5주일’에 좀 더 알아보기로 하고 오늘은 ‘공동 식사’의 유래와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자.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성찬’에서 왜 ‘공동 식사’를 포함시켜 ‘성찬식’과 함께 주의 만찬 의식으로 나누었는지 그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자.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공동 식사’를 하게 된 관습은 유다인들의 가정과 공동체의 식사 의식, 즉 유다인의 정식 만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유다인들은 안식일이나 축제일과 같은 뜻 있는 날에 함께 모여 만찬(공동 식사)을 나누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때 유다인들은 그날의 의미를 새기면서 기도하고 친교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들이 행한 정식 만찬의 순서와 과정에 있어서는 일부 율법학자들의 논란도 있지만 A.D. 1세기에 행해졌던 관습은 이러했다. 그들은 가족끼리 또는 몇몇 친구끼리 가정이나 정해진 집에 모여 식사를 함께하였다. 식전에 술과 같은 간단한 음식을 나눈 후에 사람들은 형식을 갖춘 식사를 위해 식탁에 편하게 기대어 앉았고, 모인 사람들 가운데 주빈이 빵을 놓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림으로써 식사는 정식으로 시작되었으며 그런 후에 빵을 떼어 나누어 먹었다. 식사하는 동안의 대화는 잔치의 즐거운 분위기에 알맞은 유쾌한 이야기들이었지만 주로 종교적인 주제를 지닌 것이어야 했다. 밤이 깊어짐에 따라 방안에는 등불이 켜지고 이때에 빛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축복에 감사하는 감사 기도를 암송했다. 식사를 다 마치면 다 같이 손을 씻고 주빈은 음식에 대한 마지막 감사 기도, 즉 식후 기도를 올렸다. 다만 안식일이나 축제일, 다른 특별한 절기의 식사일 경우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조속히 성취되기를 기원하는 충만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이때 기도는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특별한 기억(하느님의 업적)을 상기하면서 물을 섞은 포도주 잔, 이른바 축복의 잔을 놓고 행해졌다고 한다.

이러한 관습은 후대에 접어들면서 회당의 집회가 끝난 후, 대체로 일몰 후에 집에서 식사를 함께하였는데 유다인 중에서도 더욱 높은 목적을 위해 엄격하게 조직된 단체에서는 이러한 공동 식사를 자기들의 공동 생활의 발전을 위해 중요하게 지켰다고 한다. 특히 에세네파에서는 이 공동 식사가 그들 생활의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사해 부근의 키르벳 쿰란에서 발견된 두루마리에 있는 훈련 교법서에도 이에 대한 기록이 전해진다. 유다인의 공동 식사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와 비슷하게 말하고 있다.

따라서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 식사’ 역시 사도행전이나 바오로의 서신에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유다교 종파의 모임과 유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조금 다른 점으로 이때 사도들은 특히 ‘공동 식사’가 진행하는 동안에 시간을 마련하여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를 가르치는 설교, 예언, 방언, 가르침, 권면, 성시, 찬송, 신령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골로 3,16-17 참조). 그리고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공동 식사가 유다인의 것과 다른 점이 또 있었는데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함으로써 그들과 음식을 나누는 사랑의 실천이었고, 종교적 자선과 사귐이었다는 점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느님의 인류에 대한 사랑과 이에 대한 보답으로 이루어지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사랑, 그리고 이러한 사랑 안에서 인간 서로간에 사랑을 실천하는 자선과 나눔이었다.

공동 식사에 대한 가장 상세한 기록은 A.D. 2세기 말경 교부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의 변증론(Apology)과 힙폴리투스의 사도적 전승에 잘 나타나는데, 거기에 나타난 기록들로 보아도 의식에 대한 유다교적인 기원이었음을 볼 수 있다. 식사 전과 식사 후에 간단한 예배 형식, 식사하면서 함께 나누는 종교적인 대화, 손을 씻는 일, 등불을 켜는 일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A.D. 2세기 중엽에 주의 만찬인 ‘성찬’에서 ‘공동 식사’가 분리되고 성사적이고 전례적인 ‘성찬식’만 남게 되었다. 이는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면서 그리스도교가 이방인 지역에 널리 전파되고 그리스도인들의 수가 점점 많아짐에 따라 자연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나눈 공동 식사, 즉 아가페가 주의 만찬인 ‘성찬’에서 분리되었지만 이는 우리 그리스도교의 사랑의 정신이며, 실천적 가르침으로 그리스도인들 마음속에 항상 남아 있어야 한다. 즉 성사적이고 사랑의 정신인 아가페 정신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성체성사(미사)를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깊이 간직해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감사를 드리면서 그 축복의 잔을 마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우리가 그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1고린 10,16-17).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숭고한 사랑과 나눔의 정신인 ‘공동 식사’, 즉 아가페 정신은 오늘날 ‘주의 만찬’인 성체성사 안에 항상 남아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체성사에서 공동 식사인 아가페의 정신을 항상 마음속에 담아 두어 실천해야 한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우러러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