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재공소 신축복원 기공식_최진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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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06-13 조회 2,435회본문
지난 12일 오후3시 되재공소 신축복원 기공식이 거행 되었다. 이병호 교구장, 유장훈 몬시뇰신부, 최규성 국회의원, 소병래 전북도의원, 김학용 완주부군수, 이재만 군의원, 국용호 화산면장, 국영석 고산농협조합장 등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 200년 전통신앙의 얼이 기린곳에서 영욕으로 얼룩졌던 전국의 두번째 성당을 되찾기 위해 첫 삽을 들었다. 천호산과 대둔산 자락에 위치한 되재성당은 1895년 프랑스 비에모신부가 프랑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한국민의 정서에 맞고 친환경적으로 지은 팔작지붕을 한 한옥성당으로 서울중림동소재의 약현성당에 이어 세웠졌으며, 한옥성당으로는 첫번째이다. 400명을 수용할 수있는 한강 이남의 유일한 성당이였고, 줄을 서서 미사를 보았는데 도시화로 신자들이 나가고 또 교세의 약화로 지금은 고산성당(주임=권순호신부) 소속의 공소가 되었다 6.25동란으로 빨치산의 아지트가 될것을 우려해 우리군이 불을질러 전소되어 1954년에 다시 스레이트 건물로 지어 50여명의 신자들이 모여 공소예절을 드려왔던 것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민, 교회관계자들이 전라북도지정문화재 신청을해 고증을 받아 2004년7월30일에 "되재성당지"라는 명칭으로 전라북도 문화재기념물 119로 지정 되어 총 공사비4억3천만원을 지원 받아 43평의 규모로 전라북도 완주군 또 천주교인 모두가 힘을 합해 성지순례지를 포함한 테마 관광지로 개발하자는 여론이다. 우리나라 교우촌이 대개 1801년로 시작된 신유박해를 피해 심산유곡에 자리를 틀었듯이 이 곳 되재도 삼면이 산이고 "되지게 험 하네"란 말이 변해 그렇게 불리게 되었으며, 윤치충, 윤지헌 등 많은 분이 순교를 하셨다. 박해로 인해 우리 신앙이 민중신앙으로 되었고 남종삼요한 중재로 이루어진 1866년 한, 불조약이 신앙의 자유를 얻게되기 까지 천주교사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