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실프란치스코 교황 추모미사 강론[전주교구장 김선태 사도 요한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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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5-04-25 17:54 조회29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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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교회를 원하셨던 사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지난 21일 선종하셨습니다. 교황님은 지난 2월 심각한 기관지염 증세로 한 달 넘게 입원하여 큰 위기를 넘기시고 퇴원하셨습니다. 그 후 서서히 몸 상태가 좋아져 조금씩 활동을 재개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건강을 회복하여 이전처럼 활동하실 것이라고 크게 기대했었습니다.
하지만 끝내 고비를 넘지 못하시고, 그만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것도 마치 부활절을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신앙인에게 가장 의미 깊은 날인 부활대축일을 보내고, 이제 막 부활의 큰 기쁨을 누리기 시작하는 그 월요일에 선종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교황님의 선종은 우리의 마음을 매우 무겁게 내리누르고 있지만, 이 지상에서 힘겨운 여정을 마치신 교황님이 곧바로 부활의 영광을 누리실 것이라는 확신 때문에 조금은 위로를 받습니다.
제가 따로 설명드리지 않아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셨는지, 우리 교우들은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도 저는 교황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가장 중요한 신앙의 업적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교황님이 많은 신앙의 업적을 남기셨지만,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업적을 꼽으라면 저는 ‘가난의 업적’을 들고 싶습니다. 교황님은 ‘가난’을 신조로 삼아 교황 직무를 수행하셨습니다.
교황님은 교황으로 선출되자마자 당신의 이름이, 가난의 덕행을 빼어나게 보여주셨던 성인 ‘프란치스코’로 불러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난한 삶을 사셨습니다. 교황님은 오랫동안 지켜오던 관행을 깨시고, 화려한 교황궁이 아니라 순례자들이 머무는 집을 당신 숙소로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숙소에서 집무실까지 도보로 출퇴근하셨습니다. 자동차도 고급스런 전용차를 마다하시고, 허름한 소형차를 선택하셨고, 해외에 방문하실 때마다 고급 리무진을 사양하시고, 대중들이 선호하는 소형 차량을 이용하셨습니다. 신발도 아르헨티나에서 신으셨던 낡은 구두를 그대로 이용하셨고, 가방도 예전에 사용하던 낡은 가방을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통장을 살펴보니, 남은 재산이 고작 14만 원이었다고 합니다. 당신의 장례식에 대해서도 간소하게 치르고, 특히 무덤은 특별한 장식없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만 새겨져 있어야 한다고 유언하셨습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가난하게 사셨던 교황님은, 직무 수행에서도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시는 행보를 보이셨습니다. 많은 난민이 목숨을 잃었던 람페두사 섬에 직접 방문하셨고, 난민 33명을 로마에 데려오시는 등, 이주민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셨습니다. 노숙인들을 자주 초대하여 함께 식사를 나누고, 교도소에 방문하여 수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고통을 겪는 사람이 어디에 있든지 개의치 않으시고, 그들과 연대하시고, 그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우리는 그 실례로 124위 시복식 때 세월호 유가족들과 함께하시는 모습을 들 수 있습니다. 교황님은 차량으로 이동하시다가 세월호 유가족이 있는 곳에 이르러 차를 세우게 하신 다음, 차에서 내려 유가족들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그리고 “고통 앞에서는 중립이 없다.”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나아가 교황님은 전쟁이나 테러로 목숨을 잃은 유족들, 희생자들과 아픔을 함께하시고, 재앙이나 사고로 피해입은 자들과도 함께 하셨습니다. 교황님은, 교회가 상처입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야전병원이 되기를 바라셨던 것처럼, 당신 자신이 이미 야전병원이 되셨습니다.
교황님은 실제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우리 신자들에게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셨습니다.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 198항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바라는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입니다.” 이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히십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들은 뛰어난 신앙 감각을 지녔을 뿐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통해 고통받는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우리는 모두 가난한 이들에 의해 복음화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복음화는 그들의 실존에서 구원의 힘을 재발견하고 그들을 교회 여정의 중심에 세우라는 초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갖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도움을 필요하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는,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그들의 뛰어난 신앙 감각, 고통을 받으시는 그리스도에 대한 감각과 연민을 배울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점, 그러니까 신앙 감각, 고통에 대한 감각이 저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고통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지면, 우리는 그 반대편인 영광과 환희에 대한 감각이 더 예민하게 되어, 맹목적인 발전과 성공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 발전과 성공에 다다르지 못한 사람들을 도외시하고, 나아가 실패자로 규정하고 배척하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위험천만한 성공 이데올로기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면에서 교황님은, ‘우리는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복음화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하십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외시하면, 우리는 건강한 신앙인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우리의 신앙을 올바로 세워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교우 여러분, 직접 가난한 삶을 사시고, 또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까이 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그리고 이 지상에서 당신의 달릴 길을 다 달리시고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시라고 주님께 기도드립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우리에게 남겨주신 신앙의 유산 곧 가난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관심이 우리의 삶에 큰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구합시다.
2025년 4월 25일
전주교구장 김선태 사도 요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