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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부활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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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4-01 00:00 조회2,71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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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1.“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삶에 무언가 고장이 나고 뒤틀려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흔히 이런 생각을 하지요. 성서에서는 그런 소망을 간단히 줄여서 ‘새 생명’ 혹은 ‘새로운 삶’이라고 합니다. “새로 난다”는 말을 그대로 쓰기도 하지요(이사 65,18. 요한 3,3.5.7.참조). 니고데모가 생각한 대로 “어머니의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방식이 아니라, 성령의 빛과 힘으로 정신과 마음이 온전히 바뀌어 새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새로 태어나는 일이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거기에 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새로 솟아납니다.”(복음의 기쁨, 1항). 교황님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 이런 경험을 한 이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니, 우리는 누구나 나름대로, 혹은 크고 작고 간에, 이런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2.문제는 예수님을 얼마나 깊게 만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만나는 일에는 사다리를 오르듯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예수님 스스로도 당신 자신을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에 비유하셨지요(요한 1,50-51 참조). 복음서에 보면 사람들이 주님을 제대로 알아보고 만나기 위해서 여러 단계를 거쳤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 시대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분을 가까이에서 접촉하고 늘 스쳐 지나가면서도 그분을 참으로 만나지는 못했지요. 오늘 미사에서 소개된 요한복음 장면만 해도 결국 그분을 참으로 만난 사람들조차 여러 단계를 거쳤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줍니다. 특히 열 두 사도의 대표였던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까지 어떤 단계를  거쳤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안식일 다음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 무덤을 찾아간 이는 사도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생전에 예수님을 만나 새 사람이 되기 시작한 막달라 여자 마리아였습니다. 그가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보고 돌아와 사도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을 때, 대부분은 믿지 않았는데 베드로와 요한만 벌떡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무덤에서 예수의 수의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같이 보고도 요한은 믿었지만, 베드로는 아직도 의심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3.사도들이 돌아가고 난 다음, 마리아 막달레나는 계속 무덤을 떠나지 않고  밖에 서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속을 들여다보니 뜻밖에도 두 천사가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자기 뒤에 어떤 이가 또 보였습니다. 마리아는 그를 동산지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을 주님으로 알아본 것은 “마리아야!” 하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실 때였습니다. 마리아는 다시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만났다는 것과 그분께서 당부하신 말씀을 전해주었습니다. 사도들의 사도가 된 것입니다.
루가복음 5장과 요한복음 21장을 합쳐 놓고 보면, 베드로는 본래의 직업인 고기잡이에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시작하고 역시 고기잡이로 그분의 정체를 알아보는 과정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잡이 일로 잔뼈가 굵은 베드로가 두 번 다, 밤새도록 애썼으나 “한 마리도 못 잡은”(루가 5,5; 요한 21,5)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 주님의 말씀을 따른 결과,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게 된 일이 그분의 정체를 깨닫게 하고 그 자신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했던 것입니다.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 마리아 막달레나, 사울이라 불리던 바오로, 베드로 등 어느 누구를 보아도, 각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자신의 무능력을 절감하거나, 마음속의 고민을 심각하게 느끼며 구원의 손길을 간절히 찾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그들의 삶에 한 걸음씩 다가오시어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삶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우울증에서 기쁨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되돌아보니,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계단은 자신이 밟아 오른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신을 업고 오르신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높이 세워진 십자가는 그분께서 우리 모두를 업고 오르신 사다리였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 높이 들리게 될 때에는 모든 사람을 이끌어 나에게 오게 할 것이다”(요한 12,32).
  
4.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삶의 모든 순간, 특히 어려운 터널들은 그분이 우리의 손을 잡고 참 생명을 향해 이끌어주시는 계단들입니다. 그 과정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마리아!” 하고 부르셨듯이, 그분이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이름으로 불러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그분을 깊이 만나, 삶이 온전히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 때까지 우리에게는 수많은 터널을 통과한 후 깨달은 베드로 사도의 권고가 빛이 되어줄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동이 트고 샛별이 떠오를 때까지는 어둠 속을 밝혀주는 등불을 바라보듯이 그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2베드 1,19). 이 말의 뜻을 따라 옮기면 “뚫어지게 쳐다 본다”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우리말 표현입니다.
하느님 구원의 역사,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를 위해 뻗치신 구원의 손길. 이 모든 것 이 지금은 하얀 종이에 까만 글자로 적혀 성서라는 책으로 우리 앞에 있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수많은 다른 책들과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겉모습을 뚫고 속을 들여다보면, 처음에는 빈 무덤만 보이다가, 차츰 수의, 천사, 동산지기를 거쳐 부활하신 주님이 보였던 것과 같은 일이 지금 내게도 일어날 것입니다.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것이며 생명이다”(요한 6, 63). 영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습니다. 옛날에 일어난 일이 지금 일어나고, 그들에게 생긴 일이 나에게도 그대로 생기게  하는 힘인 것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 우리도 사도들과 똑같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요한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