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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주보성인

교구 주보성인 축일 : 9월 26일

정문호 바르틀로메오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1801~1866

St. Chung, Mun-ho Bartholomeus

정문호 바르톨로메오는 충청도에서 양반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글공부를 많이 하여 고을 원님까지 지냈고, 학식과 교양을 겸비한 분으로 영세를 받은 뒤부터는 모든 관직을 버렸다.
박해를 피해 고향을 버리고 여러 지방을 유랑하며 살다가 병인박해 때 전주 지방의 교우촌인 신리골에 살고 있었다.
12월 3일 한재권, 손선지 등과 함께 체포되어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조화서 베드로

조화서 베드로, 1815~1866

St. Cho, Hwa-seo Petrus

조화서 베드로는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기해박해 때 부친 조 안드레아가 순교하자 충청도 신창으로 이사하여 한 막달레나와 결혼, 아들 윤호를 두었다. 최양업 신부의 복사로 신부를 보필하였는데 1864년에 아내가 사망하자 김수산나와 재혼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지방으로 확산되자 그해 12월 5일 이명서, 정원지, 아들 윤호와 함께 체포되었고 모든 배교의 유혹과 고문을 이겨내고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순교하였다.

손선지 베드로

손선지 베드로, 1820~1866

St. Son, Sun-ji Petrus

손선지 베드로는 충청도에서 태어나 어려서 입교한 후로 열심히 수계했고, 샤스탕 신부에 의해 회장으로 임명되어 순교할 때까지 회장의 직무를 수행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전주지방의 교우촌인 대성동 신리골에 살며 자신의 집을 공소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해 12월 3일 대성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정문호, 한재권 등과 함께 체포되어 회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더욱 잔혹한 형벌과 고문을 당했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옥중에서도 회장의 직무를 다하였으며 갇힌 교우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명서 베드로

이명서 베드로, 1821~1866

St. Lee, Myeng-se Petrus

이명서 베드로는 충청도의 어느 열심한 신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박해를 피하여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고향을 등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완주군 구이면 고소대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고소대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는 1866년에 다시 전주 성지동으로 이사하여 살았는데, 온순한 성품과 착한 마음씨를 지녔고 예의범절이 깍듯하며 착하고 어진 사람으로도 널리 알려졌으나 가슴앓이로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조화서, 정원지와 함꼐 체포되었고 배교의 유혹을 이겨내고 숲정이 형장에서 1866년 12월 13일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한재권 요셉

한재권 요셉, 1836~1866

St. Han, Jae-kwon Joseph

한재권 요셉은 세례명이 베드로라고도 전해지고 있으며 일명 원서로 충청도 진잠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의 모범을 따라 착실히 살았으며 진잠 지방의 회장으로도 활동했다. 박해를 피해 전주 대성동으로 이사한 후에는 아무런 직책없이 헌신적으로 교회일을 도우면서 모든 이의 모범이 되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전라도 지방에까지 미치게 되어 그해 12월 대성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정문호, 손선지 등과 함께 체포되어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정원지 베드로

정원지 베드로, 1846~1866

St. Chung, Won-Ji Petrus

정원지 베드로는 충청도 진잠에서 태중교우로 태어났고 병인박해 당시에는 전주 성지동 조화서의 집에 셋방을 얻어 노모, 형,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다.
12월 5일 포졸들이 조화서 집을 습격할 때 산에 피신해 있었지만 동정을 살피러 내려왔다가 포졸에게 붙잡혀 전주감영으로 끌려갔고 12월 13일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지동과 대성동에서 체포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조윤호 요셉

조윤호 요셉, 1848~1866

St. Cho, Yun-ho Josepe

조윤호 요셉은 성인 조화서의 아들로 충청도 신창에서 태중교우로 태어났으며 1864년 부친을 따라 전주 근처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한 후 교우 처녀 이 루시아와 결혼하였다. 1866년 12월 4일 포졸들이 아버지 조 베드로를 체포하여 집에서 심문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의 부친 베드로는 아들에게 멀리 피하라고 당부하자 요셉은 “아버지, 저더러 이제 어디로 가란 말씀이십니까? 저도 같이 묶여 가기가 소원입니다. 이제껏 믿어온 믿음이 결코 헛되지 아니하게 저도 잡혀가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이렇게 되는 날을 그 얼마나 기다렸는지요.” 하며 아버지와 함께 잡혀 압송되었다. 성지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전주감영에서 형벌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켜 12월 23일 전주에서 최후로 곤장 16대를 맞은 후 거의 죽게 되었을 때 형리들의 교살로 순교하여 3대로 이어지는 순교자 가문이 되는 영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