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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al] Les Miserables(쟝발쟝의 원제목)중 자베르의 아리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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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3-10-25 00:00 조회1,511회

본문

1.뮤지컬 아리아 "별" 소개

한번 물었다하면 끝가지 놓지않고 늘어지는 충견과도 같은 사람들.
한번 방향을 잡으면 궤도를 수정함이 없이 빈틈없이 그 끝까지 가는 사람들,
한번 맞다라고 생각하면 좀처럼 흔들리지 않고 끝가지 그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들,
상대방의 헛점을 잡으면 그 끝을 보고 상대가 완전히 무너져야 손을 터는 사람들...

초지일관, 포기하지 않는 그 불굴의 용기에 우리는 감탄하고, 또한 그렇게 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막상 그를 대하면 왠지 모르게 두려워지고 숨통이 죄여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봅니다. 아니 그가 사람이 아니고 우리가 매일매일 대하게 되는 일상이라고 했을 때, 바로 그 일상이 “반드시 그렇게 되어져야 한다.”는 원칙과 규율로 우리를 대할 때, “마땅히 그래져야 된다”는 그 정의에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왠지 모르게 그 굴레 안에 들어가면 숨이 막히고 벗어나고픈 마음이 되어지는 것은 무엇일가를 생각해봅니다. 바로 거기에는 “이렇게 수도, 저렇게 될 수도 있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아니 변명 자체가 통하지 않는 “냉혹함”이요, 거기에는 따스함과 사랑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프랑스의 문호, 빅톨위고의 원작 “레미제라블”, 이미 소설로, 영화로, 연극으로 뮤지컬로 표현되어지고 수많은 배우의 모습을 통해 표현되어지고 각색되어져서 지금까지도 끈질기게 우리 곁을 맴도는 그 매력은 바로 우리가 고민하는 “정의와 자비의 갈등”을 심도있게 그리고 다양한 장르를 통해 감동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를 생각해봅니다. 먹을 것이 없어 우는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치려다 19년간 옥살이를 한 장발장을 비롯해서, 도둑질한 그를 오히려 감싸는 신부, 그로 인해 새 삶을 걷고 성공하는 장발쟝, 그러나 그가 죄인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끝까지 쫒아다니는 자베르라는 경감, 그리고 계속해서 비참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 와중에서도 그들을 등쳐먹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보이며, 우리에게 정의의 끝과 자비의 끝이 어디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장발장을 쫓는 자베르라는 경감은 아까말한 초지일관의 사람입니다. 그는 그 자신 스스로 정의를 신봉하고 “마땅히 되어져야 한다”는 정의와 규율을 숭배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붙들려서 하느님의 자비를 비는 범죄자 앞에서 “말을 아끼고 눈물을 아껴라, 정직함 만이 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충고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별”이란 아리아를 부르며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위의 영상)

  하늘의  무수한 별들은 셀 수도 없지만  
  어둠을 질서와 빛으로 채우고 있네.
  별들은 파수병 조용해지면 충실하네.
  밤을 지키는 파수꾼 하늘은 제 위치에 있으며 경로와 목적지를 안다네.
  계절 따라 돌고 돈다네. 항상 같은 길로....
  
  *묘하게도 자베르경감의 냉혹한 모습과는 달리 이 뮤지컬 아리아는 내용이 시적이고 곡 또한 명곡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어둠 속에서 질서와 빛을 채우는 별로 묘사하며 반드시 장발장을 잡게 해달라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소명이기에 하느님이 도와주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이 자신에게는 뿌듯한 모습이었겠지만, 비쳐지는 그의 모습은 냉혹하고 잔인하게 보여집니다. 왜 그렇까?  결국 그는 죽을 위험에서 자신을 오히려 구해준 장발쟝의 전혀 예기친 않은 반응에 혼란을 느끼고 세느강에 몸을 던집니다. 사랑과 자비의 힘을 소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는 경직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은 정의로웠지만 죄의 결과에 집착했지 그 죄의 원인을 간과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2. 복음묵상(루가 복음 13장 6절-7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 나무에 열매가 열렸나 하고 가 보았지만 열매가 하나도 없었다.그래서 포도원지기에게 '네가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따 볼까하고 벌써 삼 년째나 여기 왔으나 열매가 달린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 아예 잘라 버려라. 쓸데 없이 땅만 썩일 필요가 어디 있겠느냐?' 하였다. 그러자  포도원지기는 '주인님, 이 나무를 금년 한 해만 더 그냥 두십시오. 그 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다음 철에 열매를 맺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그 때 가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면 베어 버리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복음의 비유에서 보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라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나무입니다. 주인의 생각이 하나도 틀릴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과정은 안봐도 뻔한 것이고, 그런 나무가 더 이상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정의이고 질서입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난 그 결과에도 불구하고 포도원지기는 원인을 찾습니다. 결과가 정의라면 원인과 그 여지를 찾는 것은 자비입니다.

가끔 묻게 됩니다. 오랫동안의 신앙생활이나 수도생활을 하면 할수록 더 관대해지고 이해심이 많아져야 할텐데 마치도 우리나라 소설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러”에 나오는 사감선생님처럼, 원칙과 법에는 충실하면서도 타인에 대해선 관용과 이해가 없어지고 왜 히스테리컬해지는 것인지.... 저 자신도 살면 살수록 자비와 이해심이 충만해져가고 더더욱 후덕해져야 하는데, 자꾸만 줏어들은 원칙과 정의로 남을 단죄하면서 경직되어 가는지…  원칙과 마땅히 그래져야 한다는 질서라는 명분으로 왜 정치인들은 썩은 고기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희생양들을 찾아 물고 늘어지는지....자꾸만 편하게 여겨야 할 대상들이 대하기가 두려워져 가는지.....
이 영상을 묵상하면서, 주님께 이해와 관용의 삶을 청합니다. 따끔한 충고 안에서도 넘쳐나는 애정이 있고, 무조건 적인 이해와 사랑 안에서도 질서를 세울 수 있는 지혜의 삶을 청합니다. 결국 자베르 경감은 자신의 신념때문에 자살을 하게 됩니다. 쟝발장의 자비에 혼란을 느낀거죠. 정의와 자비....우리 인생의 "뜨거운 감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