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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소개]길(La Str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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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03-10-25 00:00 조회1,40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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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소개

오! 젤소미나…”라는 구슬픈 멜러디의 주제가와 함께 시정 넘치는 흑백화면으로 기억되어지는 영화 “길”, 원제목 “La Strada”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마음씨는 천사같이 순수하고 착하지만, 어딘가 머리가 약간 부족한 젤소미나라는 여자는 마을 사람들에게 이색적인 존재로 취급되다가 어느 날 오토바이로 순회하는 곡예사 잠파노에게 팔려 곡예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야수 같은 성질에 덩치까지 큰 잠파노는 오토바이에 젤소미나를 태우고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며 가슴으로 쇠사슬을 끊는 등 광대놀음을 합니다. 그리고 그의 포악한 성질을 부려가며 젤소미나에게 광대 재주를  가르치지만, 젤소미나는 그의 욕설과 매질이 무서워 순순히 따르며 재주를 익히려고 무던히 애를 씁니다.. 그녀는 여러 번 도망치려 했으나 아무래도 그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얼마 후 어느 서커스단에 입단했는데, 거기에는 줄타기 곡예사라고 불리는 청년이 있는데, 그는 젤소미나에게 자상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면서 젤소미나에게 아주 중요한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세상엔 하찮은 돌멩이 같은 것이라도 쓸데없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지. 네가 아무리 머리가 모자란다해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을 거야”라면서 ‘어쩌면 잠바노와 같이 있는 게 너의 운명(=길)일지 모른다”는 얘기를 해줍니다.  그러나 잠파노는 바로 그 곡예사와 다투게 되고, 그 때문에 감옥에 들어갔다가, 다시 출감하여  두 사람의 정처없는 여행(=길)이 계속됩니다. 그러다 길에서 우연히 예전에 다퉜던 곡예사를 만난 잠파노는 화가 나서 그를 죽입니다. 그러나 젤소미나는 곡예사의 죽음을 슬퍼하며 밤낮 울기만 하여 잠파노에게는 결국 귀찮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눈 내리는 밤, 잠파노는 젤소미나를 버리고 떠나게 됩니다.
그로부터 수년 후, 늙은 잠파노는 젤소미나를 버리고 떠난 해변 마을에 곡예단의 일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어느 마을 여자가 자신에게 귀에 익은 젤소미나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는 마을여자로부터 그 노래를 가르쳐준 사람은 병들어 떠도는 짚시 여인인데, 그녀는 벌써 죽었다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그날 밤 술이 잔뜩 취한 잠바노는 홀로 비틀거리며 해변가로 갑니다. 그는 힘없이 모래사장을서성이다가 털썩 주저 앉습니다. 그러자 어디에선가 젤소미나의 노래 소리가 들려옵니다. 잠바노의 얼굴에 처음으로 두 줄기 눈물이 흐릅니다. 그리고 흐느끼면서 “나는 혼자야…”라는 모습 속에서 이 영화는 페이드 아웃이 됩니다.

2.감상

어쩌면 이 영화는 “길”이라는 제목과도 같이, 그 길을 따라 인생의 종착에 도달한 한 인간의 허무와 고독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그 길을 따라갔지만, 그 길 끝에서 자신에게 정작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것도 자신이 그렇게 가치없이 여기고, 무시하고 천대했던 존재였다는 것을 깨닫는 잠파노의 절망 끝에 선 고독이 우리의 고독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기에 이 영화는 오랫동안 남습니다. 정작 눈을 뜨고 있지만 소중한 것을 못보고, 실제로 보더라도 애써 무시하고, 가치 없다고 여기면서 없어져 주길 바라고, 동시에 교묘한 폭력을 행사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눈뜬 소경과도 같은 모습 속에 잠바노의 실체가 야박하게 웅크리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본 품바공연에서 품바노래를 부르는 거지가  “나 같은 놈이 있기에 니들이 돋보인다”라고 항변하는 것처럼 실제로 돋보인다는 자기기분에 취해, 돋보이게 만드는 슬픈 존재, 항변조차 할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해서 우리는 제대로 보고 있는가? “옳은 것이란 정의” 안에 애정 없는 폭력을 교묘하게 행사하고 있지 않는가? 그 존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항변할 수 없는 가족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고, 나아가 우리 눈엔 “호구”즉 “타이거 마우스”나 “희생양”이나 “왕따 당하는 존재”요, “제발 사라져 줘야 할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이들은 눈을 잘 뜨고 보면 존재하고 있습니다. 상대의 어려운 처지를 이용해서 자신의 몫을 챙기는 잠바노 같은 인간들과 그들을 돋보이게 하면서도 늘 구박받는 불우한 처지의 존재들.

3.복음묵상

마태 9장 27절에서 31절을 보면 두 사람의 소경이 눈을 뜨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의사가 없었던 시절에나 있었던 ‘전설 따라 삼천리”로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제대로 보게 되었다거나 똑바로 알게 되었다’라는 의미보다는, 그래서 어떻게 대처하고 어떻게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냉정한 재판관의 지혜로운 눈보다는, 그러기 전에 먼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순수하게, 너그럽고 따스한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라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현재 자신의 처지부터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이웃의 모습을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그 시선, 복음에 나오는 소경처럼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개 자비를 베풀어주소서”라는 그 간절한 자비를 갈망하는 눈빛과 “너희가 믿는 대로 될 것이다.”란 자비를 베푸는 시선으로 이 길을 갈 수 있기를 주님께 도우심을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