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하시면,

많은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

2024.06
17
메뉴 더보기

자료실

좋은 영상 정보 목록

SNS 공유하기

[영화소개]오아시스

페이지 정보

작성일03-10-30 00:00 조회1,287회

본문

 

1.영화내용

보통사람인 우리가 다가가서 말을 붙이기엔 왠지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심하게 몸을 뒤틀어야만 겨우 몇마디를 던질 수 있는 증증 뇌성마비 장애인 공주_모습에 걸맞지 않은_라는 이름의 여자, 심하게 뒤틀린 모습에서 그 어떤 아름다움도 예쁨도 느낄 수 없는 여인, 어쩌면 그런 자신의 모습을 수긍하며 낡은 아파트에서 지내던 그녀가 어느날 가눌 수 없는 몸을 움직이며 거울 앞에 선 이유는 뭘까? 그리고 떨리는 손에 립스틱을 들고 그녀의 입술에 갖대 댄 까닭은?
얼마 전에 개봉된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는 이렇게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었던 한 여인에게 찾아 온 예기치 않은 사랑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는 그녀의 삶이 사막에서 홀로 걸어가는 삭막하고도 외로운 삶일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그녀의 방안엔 오아시스 그림이 걸려있지만, 그 그림을 언제나 나무 그림자가 덮고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는데…..
겉은 멀쩡하지만 늘상 어눌하고 덜떨어진 행동으로 가족으로부터도 철저히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는 종두라는 남자, 그러면서도 자신을 홍경래 장군의 후손이라고 소개하는 남자, 하지만 알고 보면 뺑소니차 사고를 낸 형을 대신해서 감옥에 가기도 하고, 출소해서는 사고를 낸 가족에게 미안해서 찾아가 용서를 청하는 착한 양심의 남자, 바로 그 곳에서 종두가 만난 중증마비환자 공주라는 여인은 그야말로 그에게는 공주님이었고, 유일하게 그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철저히 무시당하는 삭막한 사막과도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그에게 공주는 또하나의 오아시스였음을 영화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2.영화감상

이렇게 영화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름이 불리기는 고사하고 ”하나의 움직임”으로 밖에 보여질 수 없었던 소외받고 버림받은 이 두 사람이 서로를 “장군님”이라고 부르고, “공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소박한 사랑을 엮어나가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리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영화는 그런 그들의 사랑을 오해하고 곡해하며 편견으로 바라보는 영화 속에 인물들을 통해 우리 모두를 “현대판 바리사이요 율법학자”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중증마비환자인 공주나 어눌한 사람인 종두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사막과도 같은지도 모릅니다. 철저히 버려려저 더 이상 “나는 아무 것도 아닌 하나의 움직임일 뿐이다”라는 자기 체험이야말로 사막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그 사막 같은 곳에서 누군가를 만나 서로의 손가락은 가리키며 상대방을 오아시스임을 발견했을 때, 그들의 삶에 생명이 꿈틀거리고 새희망이 솟아오르게 되는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이 영화 “오아시스”가 주는 감동이 아닐까를 생각해봅니다.

3.복음묵상

성서에 보면 세상 안에서 사람들의 물결 속에 살면서도 늘상 사막의 상태에서 산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름은 커녕 하나의 움직임일 뿐이며 그렇게 살다가 사라져야 할 운명에 처했음을 스스로 수긍하는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콸콸 쏟는 오아시스를 발견한 생명의 체험이었습니다. 에수께서 그들에게 이름을 부르시며 다가갔을 때, 그들의 삶은 생명력을 얻고, 의미를얻기 시작했으며, 영원한 샘명수가 주는 그 깊은 맛에 감격하고 감동했으며 그들 존재를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냥 그대로의 움직임으로 사라져야 할 인물들이 오늘도 새생명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들려지고 있습니다. 유다 각 지방과 예루살렘과 해인지방에 걸쳐 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사막과도 같은 삶의 한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_ 오아시스를 찾아습니다. 그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들은 귀한 족속, 장군이요 공주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인물들 뿐 아니라 인류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류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 그것은 곧 생명의 체험, 오아시스의 체험입니다. 그분의 옷자락만 만질 수 있어도 우리가 오아시스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자 우리에게는 희망입니다.
때때로 밋밋하게 느껴지는 현실, 때로는 사막과도 같은 삭막함이 느껴지는 이 현실 속에서 우리는 결코 멀지 않은 곳에 서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만나게 됩니다.